0. 다채로웠던 엄마의 아들이 범인이었다
이런 말을 하거나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나중에 부모님이 알게 된다면
속상하고 기분 상하실 것이 분명하지만
어릴 적 우리 집안의 형편은
분명히 가난했다
허름하고 낡고 오래된 집
쥐 와 벌레들이 함께 살았던 그 집
보일러를 아무리 틀어도
바닥은 뜨겁지만 코가 시리며 입김이 나던 그 집
어렵고 모자라며 불편했던 그 집
그 집에서의 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었다
내가 다섯 살 정도였을까
봄과 여름 어느 사이였고
하늘은 진하게 푸르고 맑아 보였다
엄마가 혼수로 가져오신 피아노 옆에
엄마는 나를 앉혀두고 피아노를 쳐 주셨다
어려움 속에 감사한 일도 행복한 일도
정말 많았지만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는 그날이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여성스럽고 눈물이 많았으며
험한 말을 하지 못하고
혼자 기도하며 화를 다스리는 그런 사람
국어와 사회 그리고 역사를 좋아하던
엄마의 언어는 정말 다채로웠다
예쁘고 따뜻한 표현을 했었던
엄마의 언어를 내가 닮았다
그렇게 믿었다
어느 순간 엄마의 언어는 색을 잃었다
다채로웠던 엄마의 언어가 빛을 바란 것일까
다채로움을 잃어버려 단조로워진 것일까
엄마의 언어는 따듯함도 다양함도 잃었다
힘들다
짜증 난다
못 살겠다
여리여리 했던 엄마의 손에
굳은살이 잔뜩 베이고
일은 일대로 해서
나보다 굵어진 손가락 마디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엄마는 잃어버린 것일까 변해버린 것일까
무엇이 엄마를 변하게 만들었을까
내가 범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