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세신사
꿈을 찾으려 떠났다
정확히는
자유롭고 싶어서 도망쳤고
더 솔직히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완전히 혼자 있고 싶었다
내게 서울은 그런 곳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의 나는
있는 그대로 온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단순하게 서울이라는 곳 이 아니라
늘 내게 자격지심과 열등감의 대상이었던 곳의 이름이
서울이었다
혼자 살았다
아플 때 빼고는 다 괜찮았다
좁디좁은 3평짜리 공간에서
다리도 제대로 못 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도
있는 돈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며 걱정되어도
자유의 대가 라며
당장 내 능력에서의 최선이라며
불평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내가 하려던 일들이 연이어 제대로 실패를 겪었다
실패의 경험이 없던 나는
성공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된 시도를 해본 적 이 없었기에
실패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이라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될 리가 있나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을 사는 대로 생각했던 내가
생각대로 살아보려 하니까
쉽지가 않았다
잘 풀리지 않는 것인지
정말 실패인 것인지
분별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정신은 박살이 난 상태였다
죽고 싶지 않은데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무기력의 늪에
우울의 심연에 빠져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시간만 태워가며
죽어가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임종을 지켜야 하니 가족들은 모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며칠이 지나고 할아버지는 회복을 하셨고
다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나도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1주일 정도 지났을까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할아버지의 상태가 좋지 않다면서
지난번 쓰러지신 것도 있고
모두가 놀란 상태라서
워낙 고령에 노쇄하신 어르신이라
이번에는 돌아가실 것 같아
서둘러 본가로 내려갔다
할아버지는 다시 일어나셨다
나도 다시 서울로 왔다
또 며칠이나 지났을까
엄마가 연락을 했다
할아버지와 응급실을 가는 중이라고
내려와 봐야 할 것 같다며
1달 사이에 5번인가
본가를 왔다 갔다 반복했다
병원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노쇄함 이 원인이라
특정한 병명이 있는 것도 아니며
병원에 계셔도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소변기를 달고 계셨고
때때로 섬망 증세를 보이시니
아마 올해를 넘기지 못하실 것 같다
댁으로 모시기 어려울 테니 요양원을 권장하셨다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좋은 기억보다는
괘씸하고 미웠던 기억이 더 많이 떠오르는 관계였지만
곧 있으면 돌아가신다는데
용서라고 하기에는 내가 모자란 사람이고
그냥 미움보다는 애증이나 연민 정도가 맞았던 것 같은데
횡설수설하다가 혼자 소변줄도 뽑고
난동 부릴까 봐 두 손도 묶였는 것을 보니까
마음이 아팠다
노인네 하나 남았는데
가시기 전까지는
원래도 집에 있었는데
집으로 모셨으면 하는 마음에 부모님께 이야기를 했었다
내가 모시겠다
내가 돌보고 챙기겠다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나도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엄마가 할머니 똥기저귀까지 갈았는데
할아버지 똥기저귀까지 갈게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내가 해보겠다 이야기를 했다
늘 어려웠던 우리 집 형편
아빠도 생업이라는 게 있었고
엄마도 허리 수술하지 얼마 되지 않아
사실상 집에서 책임지고 간호를 하는 것은 어려웠다
아빠는 당연히 하지 않을 것이고
내가 하겠다 말은 했지만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나 또한
말없이 엄마에게 떠 넘길 것이니까
엄마의 고생과 희생이 거의 당연시하게 기정사실화 되었다
아빠도 이번에는 엄마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는지
평소에는 본인 동생들 앞에서 이야기를 잘하지 못했던 아빠였는데
상황이 어려우니까 요양원으로 모셔야 하지 않겠냐 이야기를 했고
엄마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나도 처음에는 울며 집으로 모시자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못 이기는 척 입을 닫았다
병원을 나와 본가로 모여
친척들이 잠깐 이야기를 했었다
작은 아빠는 우리 집으로 모셔라
내가 곁을 지키며 보살펴 드린다고 하지 않냐
아빠는 내가 뭘 할 줄 아는 게 있냐 여기 살지도 않는데
엄마도 아픈 상황에 제대로 보살필 여력도 없다
상황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지만
모두 다 각자의 삶이 있기에 돌아갔다
나도 급하게 본가로 갔었기에
정리가 필요해서 서울로 올라왔다
평소 연락도 없었고
연락해도 답장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친척들 즉 아빠의 동생들
명절 때 제대로 오지도 않았던 그분들이
언제부터 할아버지의 안부를 신경 쓰셨는지 모르겠지만
정확한 상황도 모르고
양쪽이야기를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엄마의 이야기를 얼핏 들었을 때에는
30분에 한 번씩 전화를 하며 병원에 있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무슨 상황인지 어떤 마음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엄마는 왜 할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겠다고 했을까
늘 나와 엄마가 아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우선이었던 아빠가
어쩌면 처음으로 엄마를 먼저 생각해서
어쩌면 처음으로 나서서 이야기를 해줬는데
왜 엄마는 할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겠다 했을까
친척들과의 전화를 주고받던 상황에도
내게 집으로 모시겠다 통보했던 상황도
나는 없었다
물어봐도 제대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고
나도 뱉은 말이 있으니
곁을 지키려고 했던 것인지
임종을 지키려고 했던 것인지
모르지만 본가에 내려오게 되었다
이 삶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되었고
앞으로도 본가에서 살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서울의 자취방을 정리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기저귀를 갈았다
4시간 간격으로
기저귀가 의미가 없을 때가 많았다
소변양이 많거나
대변량이 많은데 할아버지가 뒤척거릴 때면
옷과 이불에 흘러나왔기에
하루에도 이불을 몇 번씩 교체할 때가 있었다
엄마가
내가 하겠다 말을 했지만
어린아이의 대소변이 아닌
성인의 대소변의 냄새와 그것을 처치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난 또 뒤로 숨으려 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그 고생의 몫은 또 엄마의 몫이었다
내가 가장 욕했던 아빠의 모습을 내가 닮았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가 챙겼지만
밤 시간의 할아버지는 내가 살폈다
기저귀를 교체하는 것은 참 쉽지가 않았다
내가 하지 않으면 엄마가 해야 하니까
이 생활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했다
밤에는 할아버지 기저귀를 챙기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을 시켜드렸다
가장 미워하던 아들의 아들
손주들 중에 가장 탐탁지 않았던 손주에게
자신의 기저귀를 교체해 주고
자신의 몸을 맡겨야 하는
힘없는 저 할아버지의 심정은 어떨까 싶었다
평일에는 본가에 있다가
주말에는 정리 라는 핑계로 서울로 왔다
올라와서 자취방 정리를 하고
속옷과 우편물만 챙겨 다시 본가로 내려오는 이 삶이
한 두 달 정도는 지났을까
할아버지는 살아나셨다
쓰러지셨을 당시에 의사 선생님은
이제 못 일어나실 것이라며
명절을 넘기지 못할 것이고
길어야 올해를 넘기지 못하실 것이라 이야기하셨지만
할아버지는 일어나셨고
본인 스스로 화장실을 다녀오셨다
나는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담 세신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