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아들

1. 동병상련

by 김해난

할아버지는 회복을 하셨고

바깥 활동은 어렵지만

본인 스스로 화장실 다녀오실 정도는 되었다

입 맛도 살아나셔서

마음에 드는 음식

마음에 들지 않는 음식을

잘 골라 드셨다


이 생활이 오래갈 것 같았고

기약이 없어진 탓에

애매했던 나의 서울의 삶도

정리를 고민해야 했다


미련이 많이 남아서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으나

또다시 갈 용기도 없었고

이 상황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나만 생각하며 살 독한 결단력도 없었다


그렇게 자취방은 놔둔 채

본가에서의 삶이 시작되었고 나도 일을 시작했다

옆동네 공장 생산직이었는데

주간근무 할 때는 토요일도 일을 해서

일요일 오전에 교회 가기 전에

야간근무 할 때에는

토요일 오전에 일을 마치고 나서

그렇게 할아버지 목욕을 시켜드렸다


할아버지의 목욕을 시킬 때면

참 낯짝이 두껍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허리가 아픈데

구부정한 자세로 당신 몸 구석구석 씻기고 있는데

조금만 차가워도 조금만 뜨거워도

경기를 하는 수준으로 놀라고

가만히 계신 상태에서 내가 씻겨드리는데

나 위해서 목욕을 하시는 것인지

있는 힘껏 힘들다며 짜증을 내실 때마다

내가 왜 서울에서 여기까지 와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남는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도대체 왜 어쩌다 이러고 있는 것일까 하며

속이 상했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엄마가 할 것이다

아빠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냥 내가 했다


물론 웃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않았다

있는 힘껏 생색내며

불평을 하면서 억지로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토요일 오전에 일을 마치고

평소와 같으면 할아버지 목욕을 했어야 하는데

앓아누웠다


일 안 하고 놀다가 추운 곳에서 일하게 되어

내 몸에 병이 났고

어린 마음으로 살다가 하고 싶은 것 못하고

놀고 싶은 것 못 놀고

쉬고 싶은데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이 삶을 살고 있다며

마음에도 병이 나서

그대로 앓아누웠다


일요일 오전

할아버지 목욕을 씻겨드렸다

반쯤 정신이 없는 상태로

아픈 허리를 붙잡고

불평하는 마음을 다잡고

할아버지를 씻겨드리고 있었다


애정하지는 않았으나

이제는 다시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 애틋했던 마음이 어디 갔을까

당장 나 쉴 시간 빼앗아가는 이 상황이 싫었다


내 마음속 목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할아버지가 내게 고맙단다


아빠를 답답하게 생각했고

답답한 아빠의 아들인 나 또한

본인 마음에 들지 않아

탐탁지 않게 여길 때가 많았고

나도 그 마음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본인 몸에 힘이 있었을 때에는

화내고 소리를 치며

나를 욕하고 한심하게 여길 때가 많았는데

본인 몸에 힘이 빠져

노쇄하여 몸도 스스로 가누기 버거워하는 상태가 되어

가장 못나고 못마땅하던 손자 몸에

씻김을 당하는 저 할아버지의 심정은 어떨까

궁금했었지만

당장 내 마음에 불평한 것들에 집중하게 되어

크게 신경을 쓰지는 못했었다


나에게 고맙다는 저 말에

애잔함을 느꼈지만

있는 그대로 와닿지는 않았다


안 됐고 가엾고 고맙고 애잔한 마음에

나도 미안해서 눈물이 났지만

미운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야 할까


불평 전문가였던 나는

없는 것 모자란 것 부족한 것은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본능적 재능이 있었고

지금 이 상황에도 나의 재능을 사용하고 있었다


단편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나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을 제공한

아빠의 회피와 외면을 원망했고


변했다며 본인 생각만 한다면서

엄마가 놔버린 집안일의 몫을

내가 전담하게 되었다며

할아버지가 누워있는

이 상황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총여선교회 회장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엄마를 원망했다


사실 나도 알고 있다

엄마의 삶은 엄마의 것인데

엄마의 삶에 엄마의 이름이 없었다는 것

엄마의 섬김과 수고를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것


예상치 못한 할아버지의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 노인네가 돌아가시려고 이러나

왜 갑자기 무섭게 안 하던 말을 하는 것일까

정말 돌아가시려나

에이 설마

하나님이 그렇게 편한 삶을 주시겠나

더 고생시키고 어렵게 살아야지

내 인생에 꽃밭은 없어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를 바랐던 것일까

그냥 내가 견뎌야 하는

말 없는 수고의 상황을 벗어나길 바랐던 것일까


이 상황을 원망하고

아빠를 원망하고 엄마를 원망하다 보니

엄마 입장이 되어봤다


결혼을 하게 되어

혼자 이 시골까지 내려와

없는 집에서 없이 살게 되었고

결혼과 거의 동시에 할머니 병 수발을 들었다


내가 어릴 때 엄마에게 동생 가지고 싶다며

왜 내게 형제가 없냐는 질문에 엄마는

어려운 형편에

할머니는 아팠고 나는 태어났는데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한 손에는 짐을 들고

등에는 내가 업혔고

나머지 한 손으로 할머니를 부축했다며

아이가 한 명 더 태어난다면

그 아이를 잡을 손이 없었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날의 엄마의 이야기는 마음에 남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기억 속의 할머니는 대부분 아팠고

쓰러져서 응급실에 가거나

아파서 입원을 했던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할머니의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시기도

몇 번 있었지만

그것 또한 엄마의 몫이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약에 퉁퉁 부어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할머니가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복잡해 보였지만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어 보였던 엄마로 기억이 되고

엄마의 심정을 헤아려 볼 수준이 아니었던

어린 나는 단순하게 아픈 할머니가 불쌍했고

조금은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히 내가 동병상련이라고 해도 될까

글로써 다 표현할 수 없고

글로는 절대 다 담아낼 수 도 없지만

문득 엄마와 내가 닮아있었고

이 상황이 비슷해 보였다


엄마의 삶은 어땠을지 모르나

확실한 것은 외가의 삶이 우리 집의 삶보다

더 풍요로웠던 것은 맞았을 것이다

내게 열등감의 대상이었던 서울

그 시작이 외가 친척들의 삶과 나의 삶의 비교였으니

항상 느꼈던 빈 부의 격차

어려운 서민과 중산층의 삶의 질 과 태도의 다른 점이

어린 내게도 보였는데

훨씬 더 먼저 어른이 되었던 엄마게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렇게 서울에서 살던 엄마가

결혼을 해서 이곳에 내려왔고

본인의 엄마도 아닌 아빠의 엄마 병시중을 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삶을 견뎌내어 왔을 때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너덜너덜했을까

나 임신했을 때도

새벽에 일어나서 밥을 차리고

고모들 주려고 부침개 만들고

당신들의 엄마의 기저귀는

남의 집 딸인 엄마의 몫이었고

당신의 자식들도 있는데

남의 자식에게

불편과 고생을 강요하는 이 집안

또 외면하고 회피하는 남편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어땠을까


어린 나도 생각했었다

가끔 와서 애교 부리며 아프지 말고 오래 살아라

손주가 당신을 사랑한다며 용돈얼마 쥐어주고

돌아가는 것보다


한 집에 같이 살아서

매 순간 지지고 볶고 나쁜 것 불편한 것

맞지 않는 것 보기 싫은 것 들을

모두 마주쳐야 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어린 내 눈에도 괘씸해 보이던 저 어른들

가끔씩 와서 앓는 소리 하고 가는

가끔씩 와서 돈 몇 푼 던져주고 가는

저 고모들 저 삼촌들이

엄마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내가 서울에서 나를 위해 살고자 떠났지만

나를 붙잡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본가로 돌아왔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행위를 반복하며

이 행위를 반복하게 된 이유는

당신의 회피와 외면 때문이었다고

불평하고 있었는데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어보니까

할 말이 없었다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지속적 가해자였던 나는

잠깐 엄마의 삶을 체험해 봤던 것이고

이 짧은 시간 짧은 수고로

엄마의 삶을 전부 헤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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