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핏빛 각인
어둠은 언제나 칼끝에서 시작되었다.
중원의 강호는 피로 물든 그림자를 안고 있었다. 이름 없는 무덤들이 끝없이 늘어선 황량한 벌판, 그곳의 흙은 핏빛으로 굳어 있었다. 태양은 차가웠고, 바람은 시신들의 울음소리를 실어 날랐다.
주인공 **류원(柳遠)**은 스무 해를 넘기지 못한 청년이었다. 그의 얼굴은 세파에 찌들지 않은 듯 말쑥했지만, 눈빛만큼은 깊은 호수처럼 고요하고 서늘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잃은 자의 눈동자처럼.
그의 허리에는 녹슨 듯 검은빛을 띠는 평범한 철검이 매달려 있었다. 이름 없는 검. 그러나 류원에게는 그것이 세상 전부였다.
그날은 류원이 세상으로 나선 지 3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는 거친 산맥을 넘어 황량한 사막의 초입에 다다랐다. 그의 목적은 오직 하나, 10년 전 풍비박산 난 **벽산문(碧山門)**의 유산을 찾는 것이었다.
벽산문은 한때 중원 정파의 한 축이었으나, 10년 전, 의문의 '무영(無影)'이라 불리는 자들의 습격으로 하룻밤 사이에 지도에서 사라졌다. 그날, 류원은 아직 어린 소년이었다. 숨겨진 밀실에서 문주이자 그의 스승이 피를 토하며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을 보았다.
"원아... 네 안에... 칼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절대로 잊지 마라... 그 칼의 혼을 깨워야 한다..."
스승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자신의 검집을 열어 보였다. 검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텅 빈 검집 안쪽에 붉은 피로 그린듯한 알 수 없는 문양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류원의 가슴에 새겨진 핏빛 각인이었다.
류원은 기억한다. 10년 전, 벽산문이 불타던 밤,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처럼 강력했던 검기가 온 문파를 휩쓸던 것을. 그 검기에 스승을 포함한 수많은 사형, 사제들이 스러져갔다. 그 검의 이름은 '무명검(無名劍)'. 그리고 그 검을 휘두른 자는...
류원은 사막의 입구에 있는 작은 주막에 들렀다. 그는 먼지를 털어내고 구석 자리에 앉아 묵묵히 차를 마셨다.
"이봐, 청년. 당신처럼 깨끗한 옷차림의 손님은 이 동네에서 흔치 않은데. 혹시 길을 잃었소?"
주막 주인이 넉살 좋게 말을 걸었다. 류원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벽산문의 옛 터를 찾고 있습니다."
순간, 주막 안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술을 마시던 건달풍의 사내들이 일제히 류원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벽산문은 강호의 금기어 중 하나였다.
주인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벽산문이라니? 이 근처에 그런 곳은 없소. 잘못 찾아오셨으니 어서 가시오!"
류원은 차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막을 나서려던 찰나, 가장 덩치 큰 사내가 길을 막아섰다.
"어이, 애송이. 벽산문이라고? 그놈들 유산이라도 찾으러 왔냐? 너 혹시... 벽산문의 잔당이냐?"
사내의 손에는 날카로운 도끼가 들려 있었다.
류원은 천천히 허리춤의 검은 검에 손을 올렸다. 그의 고요했던 눈빛에 일순 살기가 번졌다.
"길을 비켜라. 나는 시비를 걸고 싶지 않다."
"하하! 이봐, 겁도 없는 놈이군! 벽산문 잔당이라면 우리가 잡아 바치면 큰 상금을 받겠지!"
사내가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쉬이이익!
도끼가 류원의 머리 위를 가르며 지나갔다. 류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단지 검집에서 검을 단 1촌만 뽑아냈을 뿐이었다.
쨍그랑!
사내의 도끼날이 두 동강 나 땅에 떨어졌다. 사내의 목에 붉은 실처럼 가느다란 선이 새겨졌다. 류원은 검을 완전히 뽑지 않고 다시 검집에 밀어 넣었다. 모든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너무나 빨라서 아무도 그의 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지 못했다.
사내는 뒤늦게 목을 부여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크... 커헉..."
사내는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주막은 정적에 휩싸였다.
류원은 한 걸음 내디디며 주막 문을 향했다.
"다음에 다시 벽산문을 입에 올리는 자는...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라."
그가 문을 나서자, 황량한 사막의 먼지바람이 그의 뒤를 쓸고 지나갔다.
벽산문(碧山門).
칼의 기억(劍之記憶).
류원은 이제부터 그 잊힌 칼의 혼을 깨우기 위한 피의 여정을 시작하려 했다. 그의 심장에는 복수와 잃어버린 문파에 대한 슬픔, 그리고 '무명검'을 향한 불타는 집념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