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카를 손에 넣은 포르투갈은 동아시아로 진출할 발판을 마련했다. 이제 그들이 다음으로 노린 곳은 거대한 제국, 명나라였다.
1513년, 포르투갈 탐험가 조르즈 알바르스가 말라카에서 출항해 명나라 광저우의 한 섬에 도착했다. 주강 삼각주 지역에 있는 섬으로 타망(Tamão)란 이름으로 불렸는데, 안타깝게도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이후 여러 포르투갈 모험가들이 이 지역을 찾았다.
1516년 페르낭 피레스 드 안드라데(Fernão Pires de Andrade)가 명나라와 정식으로 교역을 하기 위해 말라카에서 출항했다. 이때 대사의 역할을 맡기로 한 인물은 투메 피레스(Tomé Pires)였다.
다음해인 1517년, 갖은 고초 끝에 투메 피레스가 베이징에 입경했고, 마침내 타망 섬에 요새를 세울 수 있는 허가를 받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페르낭의 동생 시망 드 안드라데가 타망에 요새를 세우고, 명나라 선박에 공격을 가하자 사태가 급변했다. 결국 투메 피레스는 베이징에서 감금되어 사망했고, 황제는 포르투갈과의 무역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러한 황제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 상인들은 계속해서 밀무역을 했으며, 지방의 관료들에게 뇌물을 줘 산촹 섬에 정착할 수 있었다.
1542년경이 되면 포르투갈인들은 이미 명나라 동해안을 왕래했으며, 리엄포(寧波, 닝보, 저장성 북부의 항구도시)까지 진출한다. 하지만 1545년 관군에 의해 초토화되면서, 친저우(Chin-Cheu)까지 밀리고 이 마저도 1549년에 철거된다.
다시 광둥 지방에 집중하기로 한 포르투갈은 타망, 산촹, 람파카우의 근거지를 중심으로 밀무역을 했고,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호우치앙(現 마카오)의 현지인과 무역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포르투갈령 마카오의 전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