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는 어릴 때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이후 떨어져 살 때도 있었지만, 근처에 살며 자주 왕래했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은 늘 바빴기 때문에 항상 할머니가 그 빈자리를 대신했다. 옷이나 신발이 해지면 할머니가 대신 나서서 내 손을 붙잡고 곧장 시장으로 향했다.
“옷이 이게 뭐야, 좋은 거만 입고 다녀야지.”
손주라곤 언니와 내가 전부여서 그런지 할머니에게 우리는 늘 1등 관심사나 다름이 없었다. 놀이동산에 갈 때도, 쇼핑을 갈 때도, 산책하러 갈 때도 할머니는 모든 시간을 우리 둘에게 투자했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사진 대부분 나는 항상 할머니와 함께였다.
성인이 되고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도 할머니는 가장 먼저 나서서 축하해주며 온 동네방네 자랑을 다녔다.
“우리 손주가요, 학원 하나 안 다니고 혼자 공부해서 숙명여대에 합격했다니까요. 평소에도 그렇게 착하고 어찌나 할머니를 끔찍하게 생각하는지, 매일 맛있는 거 사주고 전화하고 그래요.”
할머니는 없는 이야기까지 지어내며 손주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성인이 된 나는 20대 초반에 꼭 1년간의 해외 봉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할머니는 아쉬운 내색을 숨기지 못했다. 특히 출국을 앞둔 며칠 전부터 밤만 되면 늘 내 방문 앞을 서성였다.
“이번에 가면 또 언제 보지...”
나는 늘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할머니, 일 년 금방 가. 다음에 한국 왔을 때 보면 되지.”
그렇게 해외로 떠난 지 4개월이 지난 후, 나는 일이 있어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 일주일간 한국에 있다가 다시 출국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역시 할머니는 밤이 되면 어김없이 내 방을 찾아왔다. 그리곤 불안한 눈동자를 숨기지 못한 채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이번에 가면 또 언제 보지...”
나는 또다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할머니, 4개월 금방 갔잖아, 나머지도 눈 깜짝할 새에 금방 간다니까? 괜찮아, 다음에 또 보면 되지.”
출국 전 마지막 날 할머니의 목소리는 유난히 떨렸다.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하얗게 질린 표정은 마치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한 눈치였다. 출국 당일 나는 새벽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곤히 자는 할머니를 굳이 깨우지 않았다. 다음에 또 한국 왔을 때 보면 되니까, 중간에 영상 통화라도 할 수 있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정확히 10일 뒤, 나는 할머니의 비보 소식을 접했다. 내가 해외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 이미 할머니는 의식불명 상태였고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그제서야 나는 밤이 되면 내 방을 찾아오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불안에 떠는 눈동자와 떨리는 목소리, 어둠이 내리는 밤이면 유독 무언가를 두려워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났다.
죽음이 가까운 사람들은 밤을 무서워한다고 한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다음번이, 할머니에겐 어쩌면 약속하기 두려운 고비였을 터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던 내일이, 할머니에겐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는 하루였겠지.
밤이 되면 움직이던 것들은 움직임을 멈춘다. 일하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그토록 화려했던 조명들도 빛을 잃어가고, 시끄럽게 울리던 차의 경적들도 서서히 멈추어 간다. 죽음이 가까운 이들이 밤을 무서워하는 이유도 이 때문인 것 같다. 고요한 적막이 다가올수록 주변의 것들은 서서히 멈추어 가고 어쩌면 자신도 영원히 멈출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
다가온 밤이 자신의 마지막 희망마저 앗아갈 것 같은 두려움, 짙은 어둠이 자신의 운명을 암시함을 느끼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그때의 나는 할머니가 그토록 밤을 무서워했던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내 양말에 난 작은 구멍조차 바로 알아차려 새 양말을 사주던 할머니였는데, 나는 밤처럼 어두워지던 할머니의 낯빛을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 할머니의 밤은 어떨까. 저 높은 하늘은 어둡지만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하겠지. 그 별들이 할머니에게 밝은 밤을 선사하겠지. 부디 그곳에서의 밤은 어둡지 않길, 할머니의 밤이 더는 무섭지 않길 바라본다. 그리고 고요한 밤을 보며 조용히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