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단풍의 진실

수필

by 이로작가

붉은 단풍의 진실

-첫 도서관의 기억-



우리 학교 정문에 들어서면 본관까지 이어진 기다란 도보 양옆으로 해마다 같은 모습을 한 은행나무가 등교하는 학생들을 반기며 의연하게 줄지어 있었다. 학교 교목이자 상징인 은행나무는 교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등굣길에 보이는 이 나무들은 계절마다 색을 바꾸며 우리에게 새로운 계절의 시작을 알렸다.특히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나무의 초록빛이 서서히 생기를 잃었는데, 이내 시작된 추위에 나무는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붉은 겉옷을 꺼내 입고 추위에 맞설 태세를 갖추곤 했다.



소수의 총학생회 임원에게는 임명장과 함께 초록 은행잎 모양 배찌를 달아 주었다. 그리고 학생회와 같이 은행잎 모양 배찌를 달 수 있는 부서가 딱한 곳 더 있었는데, ‘이문회우(以文會友)’라고 불리는 도서부 동아리였다. 사실 도서부는 그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도, 도서관 규모가 타 학교에 비해 그렇게 큰 편도 아니었다. 도서관은 본관과 떨어진 별관 꼭대기 층에 있었고, 몇 안 되는 책들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서로에게 기대 힘겹게 서 있었다. 도서부 역할은 이 허름한 장서를 관리하고 몇 없는 이용자의 대출 내역을 정리하는 것, 그뿐이었다. 사실 그저 많은 동아리 중 하나에 불과한 도서부가 학생 자치활동의 꽃인 총학생회와 같은 모양 배찌를, 그것도 가을의 중심을 연상케 하는 붉은색 배찌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항상 왠지 모를 이질성을 느끼곤 했다.



붉게 물든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야간 자율학습을 하며 얼마 뒤 있을 전국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회는 ‘나의 꿈’을 주제로 포트폴리오를 제작하고 심사위원 앞에서 이를 발표해 채점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게 ‘꿈’이라는 단어는(나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또래 친구들에게 이 단어는), 그저 맹목적인 것에 불과했다. 10개 남짓 되는 단어 중 그나마 관심 있는 직업 하나를 골라 장황하고 억지스럽게 내 것인 양 행세해야만 하는 보여주기식의 목표일 뿐이었다. 이 대회는 누가 가장 그럴듯하게 꿈을 행세하고 잘 포장했는지에 대한 우열을 가리는 행사였던 것이다.



다행히도 당시 나는 이런 대회 내막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단어를 그들의 장단에 맞추어 잘 포장하고 뽐내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 나는 입학 후 처음 학교 도서관을 찾았다. 포트폴리오에 넣을 신문 스크랩 자료를 얻기 위해서였다. 도서관 책들은 예상대로 서로의 몸에 기대 힘겹게 몸을 세우고 있었고 낡을 대로 낡아 일부가 잘린 채 붙어 있는 청구 기호는 마치 중환자실 병상에 붙은 환자 차트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따사로운 햇살이 큰 통창을 통과해 낡은 서가를 힘껏 비추고 있었고 일부 책장에서 튀어나온 책들이 그 빛들을 반사하며 이상하게 책 사이를 걷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찬찬히 손으로 장서를 훑으며 책 사이를 걸어갔다. 그러던 중 도서관 모퉁이 구석 자리에서 눈에 띄게 익숙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책등에는 ‘존 아저씨의 꿈의 목록’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다.



그 책은 5년 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칠 무렵 담임 선생님께서 내게 선물해 주신 책과 같았다. 그때 절반만 읽고 그만 책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결말을 보지 못한 채로 잊고 살아왔는데 바로 그 책을 5년 만에 이 허름한 도서관 서가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무의식에 이끌려 본능적으로 이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책의 저자인 존 고다드(John Goddard)는 15살의 나이에 127가지의 꿈 목록을 적었다고 한다. 꿈 앞에 좌절했을 때도, 심지어 암에 걸렸을 때도 그는 꿈 적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꿈 목록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부터 크고 원대한 것들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나중에 그의 꿈은 500개로 늘어 있었고 ‘암을 이기고 건강해지기’라는 꿈도 이뤄 완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 마지막에 독자에게 던진 질문 한 마디, “네 꿈은 뭐니?”, 이 질문을 보고 내가 느낀 건 작가에 대한 존경심도,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고찰도 아니었다. 진짜 하고 싶은 내 ‘꿈’이 과연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고민과,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나’라는 한 사람, 그 내면의 외침을 한 번쯤은 들어보고 싶다는 갈망의 힘찬 용솟음이었다.



나는 곧바로 도서관 귀퉁이 나무 책상에 앉아 하고 싶은 것들을 물 붓는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내용들은 그동안 어른들이 보여주던 [보기] 항목들과는 멀리 동떨어진 것들이었다. 대회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나는 나의 꿈 대본을 완전히 갈아엎었다. ‘공무원’이나 ‘좋은 대학’이 아닌, 그저 철없던 어린 시절 품었던 크고 작은 꿈들을 적었다. 나는 그렇게 나의 꿈 목록을 다시 만들었다.



대회를 마치고 나는 다시 도서관을 찾았다.



책들은 전에 봤던 그대로 낡은 표지에 환자 차트 같은 번호표를 붙이고 있었지만, 그 안의 내용은 분명 시간이 흘러도 낡지 않는 것들이었다. 마치 은행나무처럼 말이다. 붉은 단풍은 끝내 낙엽이 되어 땅에 떨어지고 발가벗은 나무는 그렇게 홀로 외로운 겨울을 견딘다. 하지만 떨어진 나뭇잎은 그대로 땅속에서 거름이 되고 다시 봄의 꽃으로 피어난다. 그 일이 있고 몇 년이 흐른 지금, 나는 누구보다 책과 도서관을 사랑하는 애서가가 되었다. 여전히 크고 작은 꿈들을 적어내며 그것들을 도전하고, 이뤄내고, 새롭게 만들어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의 중심에는 항상 낡지 않는 책들이 의연하게 꽂힌 도서관이 있다.



어쩌면 도서부 친구들이 붉은 은행 나뭇잎 배찌를 찼던 이유도, 추위에 무너지고 짓밟혀도 끝내 다시 꽃을 피워내는 도서관의 근본적 역할을 상기시켜 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내가 5년간 잊고 있던 꿈을 도서관에서 다시 발견한 것처럼 도서관은 누군가의 잊힌 꿈이자, 현재이며, 미래의 내 모습이다. 사회가 변할수록 함께 변화하고 성장하는 국가의 자원이자 시공간을 넘어 세계를 잇는 매개체이다. 그런 도서관이 늘 주변에 있고 도서관 발전을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력하는 사회에 살 수 있다는 점이 참 기쁜 일임을 다시 한 번 느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