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어디까지 보다 어떻게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교실은 소위 페드립, 섹드립으로 골머리를 앓는다.
성희롱. 성폭력 사안으로 발전해서 학폭위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열리는 경우까지 있음은 물론이다.
섹드립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는 단연코 sex, 성관계 또는 이를 지칭하는 은어들이다.
초등학생들이 말하는 성관계란 어떤 의미일까?
어디서 처음으로 듣고 배운 것일까?
다들 짐작이 갈 것이다.
어른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차마 성관계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못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결국 다른 경로로 이 단어를 만난다.
나는 섹드립이 난무해서 당황스럽다는 초등 교실을 가면, 대놓고 성관계에 대해 말한다.
한 번도 성관계라는 단어를 들어보지 못한 아이는 강사인 내 입을 통해 오늘 그 단어를 처음 듣기를, 이미 들은 아이는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었네'라고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부디 친구나 음란물을 통해 아이들이 성관계의 의미를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교사)의 입을 통해 성관계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으면 좋겠다.
많은 부모들이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냐는 질문에 당황한다. 성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아기나 초등 저학년 시기는 좀 낫다.
아기씨가 어쩌고 하면서 두리뭉실 넘어가면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히 이럴 때 읽히라고 아기의 탄생을 다룬 그림책도 꽤 많이 나와 있다.
대체 왜 이것만 쏙 빼고 안 알려주냐며 중학생들이 제일 불만스러워하는 부분이다.
아기가 성관계로 태어난다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을 입에 담는 것이 불편하다 못해 두렵다니... 그 말을 공포영화처럼 두려워하는 게 그야말로 웃플지경이다.
그러니 정작 믈어볼 때 알려주지 않고, 이상한 경로를 통해 잘못 알고 떠들어 댄다고 한탄하지 말자. 이건 결코 아이들 탓이 아니다.
하도 학부모님들이 성관계에 대한 설명을 불편해하시기에 어느 날 삼십 대 딸에게 물었다.
나: 00아
너는 아기가 성관계로 태어난다는 걸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어?
딸:ㅎㅎㅎ 글쎄?
초등학교 때?
엄마랑 이야기하다가 알았지.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자주 들려줬잖아.
나:그래?
혹시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놀라거나 충격받거나 그런 거 없었어?
딸:아니
전~혀
아무 감정 없었어.
그냥 그렇구나 했어.
중학교에서만 32년을 보낸 나는 초등학교 교실에 서는 것이 처음에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어느 정도 수위가 적당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찮다.
4. 5. 6학년 교실에서 공공연하게 성관계라는 단어를 꺼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어른만 성관계라는 단어에 왜곡된 가치관과 경험, 보고들은 온갖 스토리를 들이대며 민망해한다. 제발 어른들끼리 감정이입하며 그 장면을 상상하고 오버하지 말자.
아이들에게 성관계라는 말은 하늘이 푸르다, 바람이 분다는 것처럼 그저 어떤 과정을 정의하는 단어일 뿐이다.
교실 분위기가 얼마나 진지하고 해맑은지 걱정했던 내가 괜히 미안할 지경이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말한다.
담백한 느낌의 삽화도 함께 준비한다. 정확한 질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여성의 외생식기 해부도와 발기된 남성의 외생식기 해부도를 제시하며 설명한다.
우선 남성의 정자가 여성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남성의 음경이 크고 단단해지는 발기 현상이 일어나요.
발기 현상은? 임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남성의 아기씨인 정자를 여성의 질 안쪽까지 효과적으로 전달해 주기 위한 건강한 현상이죠. 그러니까 발기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성관계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즉 정자와 난자는 남성의 발기된 음경이 여성의 질에 정자를 전해주는 방법으로 만나는 겁니다.
* 아이들 앞에서 발기현상을 이토록 진지모드로 정성껏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 또 다른 글에서 이야기하겠다.
이어서 ppt 화면의 단어를 아주 천천히 힘주어 읽는다. 이걸 사람들은 sex 또는 성. 관. 계라고들 불러요.
아이들이 이해했다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성관계는 남. 녀 생식기가 만나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질문은 계속된다.
* 남성의 발기된 음경이 여성의 질에 정자를 전해주는 것이 성관계의 전부일까요?
그렇다면 강간도 성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요?
* 강간과 성관계의 같고 다른 점은 뭘까요?
*음란물에 나오는 장면도 성관계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 성이라는 글자에 왜 관계라는 단어를 붙였을까요?
성관계 외에도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 관계라는 말이 붙은 단어는 무엇이 있나요?
여기서 관계라는 말은 어떻게 쓰였나요?
* 정자를 생산하고 월경을 하는 건강한 남녀가 성관계를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 먼 훗날 만약 내가 성관계를 한다면...
언제, 누구와 어디서 할 수 있을까요?
(중학생 이상의 나이에서는 어디서도 꼭 생각해 볼 부분이다. 무엇보다 안전하고 위생적인 장소여야 하기 때문이다).
성관계란 무엇인가?
진지하게 그 의미를 생각하게끔 유도하기 위한 질문들이다.
그럴 때 즐겨 쓰는 작전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아이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진짜 재미있는 현상이 관찰된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잔소리라며 고개를 흔들지만, 또래 친구들 입을 통해 나오면 다들 눈을 빛내며 듣는다.
심지어 그 뻔한 답변에 스스로들 감탄한다.
게다가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을 남들 앞에서 설명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납득당한다.
너무도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