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어디까지 보다 어떻게
제목
음란물 시청 후 생긴 궁금증을 적어낸 아이의 쪽지 질문이다.
질문지를 읽다가 생각했다.
음란물 장면을 성관계라고 말하는 거.
이 아이뿐 아니라 많은 어른들도 그렇잖아?
글을 읽어 내려가기 전에 잠깐!
성관계란 무엇인지 한 줄로 정의를 내리는 문장을 머릿속으로 완성해 보자.
내가 생각하기에 성관계란 다.
어떤 말을 써넣었는가?
혹시 ’성관계란 남성의 음경이 여성의 질에 삽입되는 것’이라는 맥락의 문장을 완성했다면?
나는 성관계를 ‘오직 성기만 중심으로 하는 성기 중심적인 성관계’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성관계를 이렇게 정의 내리는 경우 성폭행(강간), 음란물 배우들의 연출된 연기 심지어 성매매까지 성관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강간을‘폭력’이라고 부른다.
왜 그럴까?
아이들에게 성관계와 강간의 차이를 묻곤 한다.
그러면 약속이나 한 듯 어느 반, 어느 학교에 가든 똑같이 답한다.
강간은 한쪽만 원하고
한쪽은 원하지 않는 거예요.
성관계는 서로 원해서,
사랑해서 하는 거예요.
와~
명쾌하다.
무의식적으로 애들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뜻이다.
성관계에 꼭 있어야 하는 것!
동의
자발성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마음의 교류
우리 사회는 아주 오랜 세월 성관계를 ‘성기만 중심에 둔 성기 중심적인 성관계’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 결과 ‘강간(성폭행)까지 성관계가 되고 말았음은 물론이다.
이를 증명해 주듯 미디어에서는 강간 사건이 터질 때마다 피해자가 원치 않는 성관계(혹은 강제적인 성관계)를 당했다는 내용으로 기사를 써 내려갔다.
문제의식이 없었던 나를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기사 내용을 사실인양 여기며 살아왔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암암리에 이걸 성관계라고 여기도록 가르친 거다.
어찌나 독하게 세뇌당했는지 82학번인 나는 교사가 되어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면서도 애써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이 잘못된 고정관념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입으로는 교육청에서 내려온 교안대로 '강간은 난폭한 성관계가 아닌 폭력'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쳤지만, 머릿속 한편에는 '그래도 성관계 맞잖아'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저 폭력일 뿐이라고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문제는 어질어질한 속도로 인공지능 시대로 달려가고 있는 요즘에도 이 잘못된 시각이 좀비처럼 여전히 곳곳에 살아남아 있는 것을 만난다는 사실이다.
엊그제도 '경찰관, SNS에서 만난 중학생과 성관계하다 파면'이라는 기사가 인터넷에 버젓하게 올라왔다.
성인이 미성년자와 성관계?
무슨 멍멍이 표현인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미성년자 강간(성폭행) 범죄라고 쓰면 끝인데.
원치 않은 성관계 따위는 없다.
그건 폭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여전히 성폭행을 원치 않는 성관계로 보도하는 기사들을 만날 때마다 화가 치민다.
기자의 시선은 기자 한 사람만의 시선이 아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친구 관계
가족 관계
부부 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
형제 관계
우리는 안다.
이 관계라는 단어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촘촘한 감정과 시간과 마음들이 응축해서 들어가 있는지.
성관계 역시 그렇다.
성관계란 말 그대로' 서로의 몸을 통해 감정과 생각, 즐거움을 나누는 ‘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맺음’인 거다.
폭도처럼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침범이 아니다.
생식기와 생식기를 통한 사람 간의 만남인 거다.
그래서 뒤에 관계라는 말을 붙이는 거다.
아이들은 곧잘 음란물 시청 후 남. 여가 어떻게 성관계를 하는지 그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 말을 내게 한다.
하지만 그곳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없다.
행위만 있을 뿐이다.
성폭행해서라도‘나만 즐거우면 된다’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욕망에 가득 찬 몸뚱이만 보인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성관계를 하기 전에 세트 메뉴처럼 떠올리는 생각들이 있다.
임신하면 어쩌지?
그 생명을 책임지고 키울 수 있을까?
우리가 성관계를 나눌 만큼 진짜 사랑하는 사이인가? 등에 대한 고민 섞인 물음이다.
음란물에 이런 고민 따위는 없다.
한마디로 영혼이 없는 거다.
SEX, 성행위, 성교, 성관계!
많은 사람들이 별생각 없이 일상에서 섞어 쓴다.
얘들아!
아기가 태어나는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게 성관계야.
그러니 이제 혹시라도 음란물에서 본 이야기 함부로 교실에서 떠들면서, 장난처럼 성관계가 어쩌고 저쩌고 떠들지 말자?
‘성관계’라는 단어!
음란물에 들이대기에는 너무 아까운 단어야.
뭐임?
나란 여자.
정말 웃긴다.
이제 하다 하다 못해서 성관계라는 단어를 아껴주는겨?
하지만 어린이들의 마음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
수업하다 보면 안다.
내 마음이 아이들에게 닿고 있다는 걸.
미디어에서 강간이나 성매매에 대해 보도하면서 성관계라는 단어를 생각 없이 쓰는것에 불편함을 느껴주셨으면 좋겠다.
아이가 물어올 때 성관계라는 단어를 편안하게 입 밖에 내면서도, 좀 더 진지하게 사용했으면 좋겠다.
말로 가르치지 않아도 듣고 보면서 배우는 교육이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