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나요? 눈물겨운 피임의 역사를

우리가 알아야 할것은 피임법만이 아니다.

by 즐거운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다들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한 번쯤 보지 않았을까?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철도 공사 중 발견된 길이 11센티미터 가량의 풍만한 가슴과 배. 엉덩이를 한 여인상! 많은 자식을 낳고 풍요롭게 살기를 바라던 구석기 인들의 소망이 담긴 조각상이다.


정자. 난자가 뭔지, 월경은 왜 하는지, 임신은 왜 되는지 모르던 그 시절 임신과 출산은 여성만이 해내는, 신비하고 위대한 자연 현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차차 '임신 할 때 남성의 정액이 없으면 안된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정액이 태아가 된다고 믿었고, 여성의 자궁은 태아를 키워 낳을 뿐이라고 여겼다.

남성은 씨앗이며 여성은 그 씨앗을 키우는 밭의 역할을 할 뿐이라는 잘못된 개념이 자리 잡은 것이다.


한편, 원치 않는 아기 때문에 골치가 아파지면서 임신을 피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이미 이집트 파피루스에는 악어나 코끼리의 똥, 아교나 꿀을 이용해 임신을 피하려 했다는 피임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고대인들이 부적, 재채기, 뒷걸음질, 레몬 조각, 올리브기름, 성교 직후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어서 정액을 질 밖으로 흘려 보내는 등의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원치않는 임신은 계속된다.


이 시절 성관계는 남성에게는 즐거움이었지만, 여성에게 성관계는신이었다.



드디어 19세기가 되면서 다양한 과학적인 피임법이 개발되기 시작한다.

질에 삽입하는 펫서리, 질 좌약,질 세척기,자궁내 장치 등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염증, 자궁 암 등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효과적이고 안전한 피임법이 개발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먹는 피임약은 지금까지 개발된 피임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꼽히는 피임법이다.


인간 생활이 산업혁명으로 획기적으로 발전했듯, 피임약은 여성을 임신에서 해방시킨 산업혁명과 맞먹는 엄청난 사건이다.


피임약은 사용법만 엄격하게 지키면 이론상 효과가 100%다. 드디어 여성도 남성처러 성이 즐거울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호락호락 여성에게 임신하지 않을 자유가 주어졌을 리가?



여기 눈물겨운 피임의 역사가 있다

나는 피임 교육을 시작할 때마다 '만약에 피임이 없었더라면?'이라는 가정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그리고 짧게라도 피임의 역사에 대해 들려준다.


너무 쉽게 주어져서 권리라고조차 생각해 보지 않는 피임!


이 피임이 앞서 살았던 여성들에게 얼마나 간절한 소원이었는지, 여성들이 이 권리를 얻기 위해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을 했었는지, 누군가는 그 싸움에 자신의 생애 모든 것을 걸었다는 사실을.


피임은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귀찮은 임신을 피하며 성을즐기기 위한 가벼운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앞서간 여성들에게 큰 빚을 졌다.





여전히 지구별 어떤 나라의 여성들은 남편 허락 없이 피임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


피임할 수 없어서 가난과 굶주림, 질병 속에서 끝없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여성에게 임신하지 않을 권리를 달라! 피임을 위해 일생을 바친' 마가렛생어'

다들 성적으로 자유로운 나라로 알고 있는 미국! 그러나 1990년대만 해도 피임이나 성병이란 말을 공식적으로 쓰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입 밖에 낼 수도 없는 야하고 더러운 말이었다. 성관계는 쾌락의 목적이 아닌 출산의 수단이었고, 피임을 한다는 것은 쾌락을 위한 것과 다름없이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그 시대를 살고 있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아이들에게 피임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즉시 연행되었을 것이다.





변변한 피임법이 없고, 피임도 허락되지 않던 시절, 여성에게 성관계는 즐거움이 아닌 두려움이었다.


아기를 낳고 남성에게 즐거움을 주는것이 여자의 의무로 여겨졌다. 게다가 의학도 발달하지 못해서 수많은여성들이 출산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아기를 낳으러 신발을 벗어놓고 산실로 들어설 때마다 '내가 저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는 우리나라의 옛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들도 아기를 낳든,낳다가 죽던 운명이었던 거다. 여자는 목숨 건 출산을 하고, 많은 아이를 돌봐야 했다.





여기 마가릿 생어라는 여성을 소개하려 한다.

그녀의 엄마는 결핵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피임을 할 수 없어서 열아홉 번 임신하고, 열한 명의 아기를 낳아 길렀다. 질병과, 가난, 굶주림 속에서 평생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가 결국 49세에 사망하고 만다.


총명하고 독립심이 강했던 그녀는 간호사가 되어 산부인과에서 일하면서, 엄마처럼 불쌍한 여성을 위해 살기로 마음먹는다. 당시 돈 많은 상류층 여성은 공식적으로 피임이 허락되지 않았던 그 시절에도 이미 쉬쉬하며 몰래 피임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가난에 시달리던 그녀들도 그만 낳고 싶어서 몸부림을 쳤다.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도 안되는방법으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

냎은 곳에서 데굴데굴 구르기,

부른 배를 발로 차기,

수은 비소 등 독극물을 마셔서 태아를 죽이려는 시도,

쭈구리고 앉아서 자궁에 옷걸이를 펴서 넣고 휘두르기...


절박함에 내몰린 수많은 여성들이 원치않는 임신으로 부터 도망치려다 독극물과 출혈과 세균감염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곤 했다.


그녀는 임신 출산을 여성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부르짖었으며, 이를 위해 여성에게 피임할 권리를 달라고 외쳤다. 프랑스, 스코들랜드에서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피임과 산아제한 운동을 벌였다.


그 이유로 고소 당해서 유럽으로 피신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녀의 끈질긴 법정 투쟁은 마침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기에 이른다.

1930년대,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심각한 세계적인 경제불황인 대공황으로 미국 경제도 엄청나게 어려워지면서 마침내 사회적으로 출산 조절의 필요성이 대두되게 된다 .


1937년 의사에게, 환자의 건강을 위해 피임을 허락할 권한이 주어진다.

그리고 2차 대전 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피임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1960년, 세계 최초의 먹는 피임약.에노비스 10 탄생.

이후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가 좋은 약들이 계속 개발되며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1966년, 마침내 미국 법원은 피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녀는 어머니가 될 것인가 되지 않을 것인가를 뜻대로 선택할 수 있기 전에는 어떤 여자도 스스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며 여성의 피임할 권리를 위해 헌신하다가 87세의 나이로 생애를 바쳤다.


그녀는 낙태 수술을 결사 반대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철저한 피임으로 위험한 낙태 수술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만 되면 :여성에게도 생명에게도 얼마나 좋을까?).





만약, 남자가 임신한다면?

혹시 피임을 미적거리는 이기적인 인간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피임 할 수 없어서, 성관계가 그 남자의 임신으로 이어진다면?과연 그 남자도 콘돔쓰면 느낌이 안좋다는 이유로, 피임도구 사러가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피임을 주저 할까?




피임은 성관계의 일부다.

피임!

하면 불편한 게 아니라, 안 하면 불안한거다.

백날 피임법을 배우면 뭐하나?

제대로 실천하지 않을거면...


중요한건 가르치고 배우는 것 뿐 아니라

제대로된 피임법으로을 정확하게 실천하는 거다.


제발 피임을 임신이라는 골치 아픈 문제를 피해면서 성 욕구를 채우는 방법쯤으로 가볍게 여기지 말자.


피임은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며 책임이다.

상대방이 원치 않는 임신,낙태에 내몰리지 않게 하려는 최소한의 예의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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