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의 왕

붉은 사막, 요르단에서 살아가기 위한 안내서

by Anwar Kim

요르단은 1948년 건국 이래 2011년 현재까지 네 명의 국왕에 의해 통치되어 온 입헌군주국이다.
요르단에서 왕의 지위와 왕위 계승은 하심 왕가(Hashemite Dynasty)의 남계 혈통에 의해 이어지며, 왕은 헌법상 국가원수로서 면책특권을 가진다. 또한 왕은 의회의 선거를 지시하고, 국회를 소집·개회하거나 해산할 권한을 지닌다.


요르단의 국왕은 국민들의 지지 속에 통치하고 있다. `2010년 ‘재스민 혁명’으로 인해 중동 여러 나라에서 대규모 시위와 정권 교체가 이어졌을 당시, 요르단에서도 일시적인 시위가 있었으나 주변국과 달리 체제의 근본적 변화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국민들이 국왕의 통치에 일정 부분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왕정이 사회 통합과 안정을 상징하는 제도로 자리 잡고 있음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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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의 정식 명칭은 요르단 하심 왕국(아랍어: المملكة الأردنيّة الهاشميّة, Al-Mamlakah Al-‘Urduniyyah Al-Hāshimiyyah)이다. 하심 왕가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인 가문으로, 현 국왕 압둘라 2세는 무함마드의 43대 손이다. 하심 왕가는 과거 메카를 중심으로 한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부족 중 하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하심 왕가의 수장이던 샤리프 후세인은 그의 아들 압둘라 빈 후세인을 시리아/요르단/레바논/팔레스타인 지역으로 파견하여 오스만 제국에 맞선 독립운동을 지원하게 했다. 이후 압둘라 빈 후세인(압둘라 1세)은 독립 후 요르단의 초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가 ‘이방인’으로 보였음에도 요르단 지역의 군주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무함마드의 후손이라는 종교적 정통성과 아랍 사회 내 상징적 권위를 지녔기 때문이다. 특히 1차 중동전쟁 당시 요르단이 연합군 내에서 상징적 리더십을 발휘했던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이는 요르단 국왕이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라, 종교적 전통과 정치적 정당성을 동시에 지닌 지도자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재자적 역할은 고(故) 후세인 국왕 시절 더욱 두드러졌으며, 현재 압둘라 2세 국왕 또한 국제무대에서 균형 있는 외교와 온건한 중재자로 평가받고 있다.


요르단은 아랍 국가들 중에서 가장 먼저 서방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나라 중 하나이다. 왕실은 서방의 시각을 이해하고 이를 외교적으로 조율하면서도, 이슬람적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이런 이중적 균형 덕분에 요르단 왕실은 뛰어난 외교 감각으로 국제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중동 내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요르단의 목소리가 주목받는다. 지리적으로 요르단은 서쪽으로 이스라엘, 북쪽으로 시리아와 레바논, 동쪽으로 이라크, 남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에 인접해 있다.


이처럼 주요 분쟁 지역과 맞닿은 위치 때문에 요르단은 종종 중동의 완충지로 불린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 이라크 내전, 시리아 사태 등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도 비교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국왕의 정치적 균형감각과 국제적 신뢰 덕분이다. 이러한 안정성은 서방국가들로부터의 국제 원조, 투자, 세금 감면 등의 지속적인 외부 지원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요르단 왕가의 ‘중재자적 리더십’은 그 조상인 무함마드의 생애에서도 유사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슬람 역사에서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헤지라, Hijra)했을 때, 오랜 부족 분쟁을 겪고 있던 지역을 조정하며 평화를 이루어냈다. 메디나에는 유대족과 아랍족이 함께 거주하며 수자원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무함마드는 중재자이자 통합자로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러한 중재자의 전통은 하심 왕가의 통치 철학에도 이어져, 오늘날 압둘라 2세 국왕은 종종 ‘현대 아랍의 조정자’로 불린다. 요르단은 종교적, 정치적 갈등이 끊이지 않는 중동 한복판에서 전통과 근대, 이슬람과 서구, 왕권과 민주주의가 절묘하게 교차하는 나라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국가의 정통성과 안정을 상징하는 하심 왕가와 요르단의 왕이 있다.


최근 이스라엘-가자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회담이 이집트의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렸고, 여러 국가가 이집트로 모여 중재의 중심에 섰다. 이 과정에서 고전적 맹호였던 이집트가 다시 중동 분쟁의 중재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요르단이 다시 한번 중심 무대를 차지하기 위해선 새로운 전략과 외교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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