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사막, 요르단에서 살아가기 위한 안내서
타지에서의 삶은 언제나 낯설다.
언어도, 문화도, 사람도 처음이라 하루하루가 작은 모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는 건, 이 낯섦 속에서 진짜 힘든 것은 환경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라는 사실이다. 상처도, 위로도, 그리고 그리움도 결국은 사람으로부터 온다.
얼마 전, 10년 동안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던 한 가정이 요르단을 떠났다.
그들과의 이별은 마치 내 삶의 한 챕터가 닫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동안 큰 선물을 해준 것도 아닌데, 마지막 순간엔 오래된 방식의 인사를 택했다. 오랜만에 꺼낸 편지지 위에 손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마음 그 가족의 새로운 여정과, 남겨진 우리 가족의 평안을 빌며.
돌이켜보면, 그들은 단순한 이웃이 아니었다. 같은 회사에 다녔고, 같은 공간에서 일했고, 같은 나라에서 살아갔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이곳에서, 나는 그들이 먼저 걸어간 길을 따라 배우며 버텼다.
처음 청소기를 빌리러 우리 집 문을 두드렸던 날부터,
아이들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고, 낯선 도시의 작은 사건들 속에서 서로를 챙겨주던 순간들까지
그 모든 시간이 쌓여 관계는 어느새 가족처럼 깊어졌다.
그들의 존재는 늘 진심이었다. 무언가를 물으면 늘 성심껏 대답해주었고, 힘든 날이면 말보다 따뜻한 눈빛으로 위로를 건넸다.
그렇게 서로의 하루가 익숙해질 무렵, 시간은 어김없이 이별의 시점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 속도만큼,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처음 만났을 때 아기였던 그 집의 딸은 어느새 숙녀가 되었고, 우리 아이들도 초등학생이 되어 함께 학교를 다녔다. 유일한 한국인 선배로서 그 아이는 우리 아이들에게 든든한 존재였고, 학부모 상담 자리에서 마주칠 때마다 서로의 아이 이야기에 웃음을 나누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이제는 그 모든 장면이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았다.
냉장고에 붙어 있던 그림 한 장이 문득 생각난다. ‘Super Hero Family’라는 제목이 적혀 있던, 그들의 아이가 그린 가족 그림이었다. 세상을 구하는 영웅은 아니더라도, 서로를 위해 싸우고,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는 그들의 모습이 참 닮아 있었다.
나에게도, 그들은 그런 슈퍼히어로 가족이었다.
이별은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설국의 첫 문장을 떠올린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그들 앞에 펼쳐질 새로운 땅도 그러할 것이다. 낯설지만 아름답고, 외롭지만 경이로운 세계.
그곳에서도 분명 그들은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이다.
이제 남은 건, 그들의 안녕을 기도하며 나 또한 이 자리에서 내 시간을 살아가는 일이다.
타지에서의 삶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그들 같은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 길이 덜 외롭고, 더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