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구나 하는 생각이 ‘못 생겨도 이렇게 못 생길 수 있냐, 집에 갈 때 싸줄 테니 가지고 가라’ 던 고모가 떠올랐다. 싫다는 대도 억지로 손에 쥐어주며 집에 가지고 갔던 못난이 송편만큼 나는 부끄러웠다.
고모, 사촌 언니와 오손도손 함께 하는 영광을 누리지 못한 송편 낙오자로 구석에서 티브이만 보고 있던 다른 추석날. 예쁜 딸 못 낳을까 걱정하던 고모에게 언니가 송편을 잘 빚어도 예쁜 딸은 낳지 못하더라고 말했다.
송편에 이어 어김없이 찾아왔던 만두 빚기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집에 보내진 않았지만 못생긴 만두를 쏙쏙 골라내 국그릇에 넣어주었다. 재주 없던 빚기 실력은 시댁으로 옮겨가자 위치가 바뀌었다. 만두피 그룹과 만두를 빚는 그룹이 나눠져 있는 분업화 현장에서 반달이 예쁘지 않아도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말면 됐다. 만두 잘 빚는다는 폭풍 칭찬이 이어졌다. 객관적인 사실보다 노동력 충당에서 나오는 기쁨이 컸으리라는 생각은 지금은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른한 주말, 티이비에 나온 만두 만드는 법을 따라 하니 제법 맛이 났다.이 자신감으로아이 랑 함께 백김치 만두도 만들어 봤다. 아이는 만드는 것에만 관심 있을 뿐 먹는 것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다. 아이 만두는 삐뚤빼뚤해도 맛은 괜찮았다. 가끔 짠맛이 돌 때가 있기는 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에게는 딸이 없다. 사촌 언니도 아들만 둘이다. 딸을 낳았으면 고모 말처럼 못생긴 딸이었을 까, 시댁 말처럼 예쁜 딸이었을 까. 만두처럼 같은 얼굴이지만 다른 선택을 불러오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