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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bbie Sep 30. 2023

생애 첫 단발 펌

중화제에 섞인 모지리 사랑

생애 첫 단발 펌, 기쁘고 설렌 마음으로 미용실을 향했다. 오랜 검색 끝에 찾은 사진을 보여주며 어떤 모습일지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젖은 머리는 익숙한 모습과 냄새로 나타났다. 여섯일곱 살 때 자주 했던 스타일이었다. 바쁜 고모가 머리 손질을 덜 고자 한 것일 수도 있고, 미용사였던 고모가 솜씨 발휘를 했을 수도 있다. 가게에 물건을 사러 손님이 오면 받침대를 든 채 흘러내리는 중화제를  받았다.


머리카락 한 올도 흘러내리는 걸 용납하지 않는 고모는 아침마다 머리 빗어주기 힘들어해  하나로 묶은 머리를 가위로 잘랐다. 그날 6학년 남자 담임 선생님이 머리를 보더니 웃으며 나도 이렇게는 자를 수 있겠다 하자 반 전체가 따라 웃었다.  수학여행 아침, 고대기로 머리를 말아주며 미용사인 걸 보여주겠다는 다짐을 보인 그녀. 식당용 가스레인지 옆에서 빨갛게 달궈진 고데기의 철커덕 소리에 맞춰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고모가 키운 아이는 조카 두 명을 포함한 총 네 명. 살림에, 가게 운영에 작은 몸으로 버티기 힘들었다. 서울 병원 가는 날,  일하던 중 늦어 그대로 버스에 올라탔는데 신발은 짝짝이에 바지에 페인트가 잔뜩 묻어 사람들이 이상하게 수군거렸다고 한다. 내리자마자 가게에 들러 새 옷을 사 입었다는데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한숨 들은 적이 있다. 고모의 표현은 직설적이고 거칠었으며 때로는 냉정했다. 굴곡진 그녀의 삶을 대하는 태도랑 꼭 닮아있다.


그녀를 꽉 당긴 헤어롤에 얼얼한 머리 밑처럼 아픈 기억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나에게 가장 많은 밥을 해준 사람, 도시락을 가장 많이 싸준 그녀, 둘 만의 외식을 20대까지 가장 많이 했던 사람도 그녀였다. (외식이라고 해야 냉면 한 그릇 먹고 곧바로 헤어지는 것이 다였지만 말이다.)


우리 집안 여자 특유의 못된 성격을 지닌 그녀를 닮아 나도 못됐다고 아빠는 말한다. 못 된 사람이 아무런 기대 없이 조카를 10년 이상 키우지 못한다. 그녀는 못된 것이 아니라 모자랐다. 몸이 부서져도 힘들다 말하지 못한 약간은 모자란 아빠의 둘째 누나,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은 여렸던 그녀가 이제 보인다.  


“조카딸이에요. 내가 키웠어요.” 고모가  요양사에게 말했다.


내 소개가 한 문장 늘었다.

난 고모가 키운 조카딸.


추석에 그녀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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