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반 거리, 난 죽고 싶어요. 당신은 참 예쁘군요
위로가 안 되겠지만, 뒤죽박죽 진심 어린 한 마디
‘한 뼘 반을 두고 죽고 싶다는 그녀를 놓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로 돌아갔다.’
병원 진료를 기다리며 읽던 책을 보았다.
메모지를 꺼내는데 앞자리에 앉은 분이
“저도 그거 한 장 받을 수 있을 까요?”하며 말을 건네자 “물론이지요. 쓰다 보면 부족할 수 있으니 몇 장 더 드릴게요.”라며 주섬 주섬 메모지를 챙겨 드렸다. 앞자리에 앉은 그녀를 보며 서체가 예쁜 건 알았지만 뭐라고 썼는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눈이 나쁜 것도 있지만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무얼 그렇게 적으세요?”
“메모를 적어요.
책 읽다 생각난 것을 적어요. 나중에 글로 쓰려고요.”
“신기하다~”
그녀의 말끝이 긴 만큼 누군가에게 나는 신기한 부류. 일 년에 1권 이상 읽는 사람이 47.5%라는 실상에서 당연한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도 드문데, 글을 쓰는 사람은 더욱더 희귀할 것이다.
책을 읽지만, 읽기보다 소유를, 사람과 함께 책 이야기를 하는 걸 더 좋아한다.
“요즘 도서관에 다양한 프로그램이 많더라고요.
한번 배워보세요. 재미있을 거예요.”
“저는…. 죽고 싶어요.” 순간 나는 멈칫했다.
<H 마트에서 울다>를 읽다가 멈춘 이유는 암투병 중인 어머니와 애써 한국 여행을 왔지만 병원에만 있다 긴급 수송을 통해 본국으로 돌아간 부분을 읽으며 엄마의 죽음에 대한 메모를 남겨두려 했다.
책 속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과
내 앞에 죽고 싶다는 여인.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병원을 오시고 대단하세요. 아무거나 적다 보면 마음이 정리가 될 거예요.
저도 많이 우울했는데, 글을 쓰면서 많이 나아졌거든요.”
“저는…. 죽고 싶어요.”
다시 한번 차분히 말이 이어졌다.
“아~ 의사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실 거예요.”
그녀는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기대한 것일까.
공감을 필요로 했을 까.
책을 읽는 사람은 어떻게 말할지 궁금했을 까.
나는 알 길이 없다.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설픈 한 마디는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허공을 떠도는 위로. 여섯 명까지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에 마주 앉은 우리 사이는 한 뼘 반이었다. 눈앞에 죽음을 이야기하는 여인을 남겨둔 채 살고 싶은 여인의 이야기를 알기 위해 한 뼘 반보다 더 가까운 책 속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조금 있다 그녀가 진료실로 들어갔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갑자기 그녀가 떠올랐다. 문득 든 느낌은 날지 않고 둥지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였다.
의사가 그녀에게 메모를 적으라고 했는데 바로 앞에 열심히 적고 있는 나도 같은 과제를 받았다고 생각해 유심히 본 것 같다.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선생님은 참 예쁘시네요.”라는 말 할 것이다.
숨을 쉬고 있는 그녀의 모습 자체가
예쁘다고 말하고 싶다.
거울처럼 그녀를 비쳐주고 싶다.
내가 뭐라고
지나가는 행인 1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