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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bbie Dec 15. 2023

<운명> 같은 책이 있다.

피해 갈 수 없는 덫처럼 행복과 불행은 동시에 다가온다.


앞으로만 돌진하다 숨을 고르는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좌절 속 빛처럼 어딘 가에 숨어 있을 답을 찾고 싶었다. 수용소에서 살아온 이라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이라면 삶의 진리를 알려줄 수 있을 꺼라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아이의 눈으로 보는 1인칭 시점은 유대인을 보는 사회 시선, 유대인의 생각, 수용소 생활을 차분히 그린다.


멋지고 세련된 독일 군인을 보니 마음이 가벼워지고 안정감과 평온을 제공한다는 말은 아이가 보여주는 한정된 세상에 의문이 들게 했다.

의문은 점점 커져 서서히 밀어내더니 나를 책 밖 3인칭 관찰자로 만들었다.


책과 나 사이에 1인칭과 3인칭 만큼 틈이 생겼다.

나는 이 공간을 잊을 수 없다.    


2차 세계대전은 14세 소년 죄르지를 아우슈비츠, 부헨발트, 차이츠 수용소를 끌고 다니다, 1년 후 고향으로 돌려보내준다.


소풍처럼 시작한 여행은 아우슈비츠에 잠시 머문다. 죄수옷을 받고 놀라지만, 성실한 일꾼이면 괜찮을 것이라는 그의 마음을 지켜 주기엔 현실은 냉혹했다.       


“나는 포대를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고
오가며 짐을 날랐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결국
그가 옳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이 끝나갈 무렵
내 안에 있는 무언가 가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크게
손상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날부터 나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그날이 마지막 아침일 거라고 생각했고,
걸을 때마다 더 이상 걷지 못할 거라고,
움직일 때마다 더는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여전히 걷고 움직이고 있다.”
<운명> p. 185


시멘트를 떨어뜨려 심한 구타와 괴롭힘을 당한 죄르지는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까지 경험하자 몸과 마음이 무너졌다. 번트 치트롬과 친구는 무릎 종기로 걷기 힘든 그를 저녁식사와 맞바꿔 진료소로 옮겨준다.


그곳에 있던 피에트 하, 보후시, 의사도 먹을 것을 나눠 주고, 치료를 계속 받을 수 있게 배려해 준다.


그를 아프게 했던 것도, 도와준 것도 모두 사람이었다.


독일군으로부터 벗어나 돌아온 마을은 달라졌다.

전차 기장은 차표를 요구했고, 특종에 눈이 먼 기자는 이야기를 독촉했다.

돌아온 그에게 어떤 느낌이 드냐 고 기자가 묻자, 죄르지는 모든 사람을 증오한다고 답한다.


집에 갔지만 노동 봉사로 소집됐던 아빠는 돌아가셨고, 새엄마는 집을 팔고 재혼을 했다. 친하게 지내던 슈테이네르 노인을 만나 지난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 그 일을 잊고 살아가라는 충고를 받고 죄르지는 생각한다.


“나 역시 주어진 하나의 운명을 버텨 냈다.

그것은 나의 운명이 아니었지만
나는 끝까지 살아 냈다.

그들이 왜
내가 지금 그것을 품고 출발해
어딘가로 끼어들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
<운명> p. 281

누군가는 잊으라 하고,

어떤 이는 아직도 극복하지 못했냐 채근하고,

언제 적 이야기를 하냐며 지겨워할 수 있다.


오래전 일이지만 당사자에게는 현재 진행 중인 종기를 거즈로 덮는다고 낫지 않는다. 피고름을 짜내고 진물을 치료하며 아픔을 버티며 살아내야 한다.

암담한 수용소에서도 온기와 희망이 존재했던 것처럼 아픔을 겪었더라도 삶은 불행의 색만 띄지 않는다.


내가 나아갈 길 저만치에 행복이
피해 갈 수 없는
덫처럼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가스실 굴뚝 옆에서의 고통스러운 휴식시간에도 행복과
비슷한 무언가 가 있었기 때문이다.
민음사 <운명> p. 284


삶이 뒤 흔들리는 순간, 피해 갈 수 없는 덧처럼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다가온다.


우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는 방패는 없지만,

함께 하는 이는 늘 우리 곁에 있다.


운명의 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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