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와 물망초>
땅에 몸을 기대 자라는 물망초와 하늘을 향하는 장미.
부모 없는 리지는 생계유지를 위해 모자 배달한다.
폭풍우에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우산까지 망가졌다.
다행히 모자는 젖지 않았고 간신히 배달을 마치고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려
꽃이 가득한 응접실로 간 리지.
완벽한 장미를 보고 직접 만들고 싶은 욕심에
주머니에 슬쩍한다.
리지가 그대로 집에 돌아왔다면 궂은 하루는
그럭저럭 마무리됐을지도 모른다.
모자 주인 벨은 작은 리지를 보고
도와주고 싶어 장화를 주고 간식도 챙겨준다.
마음이 찔린 리지가 장미 훔친 것을 고백하자
벨은 더 많은 장미를 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행복감에 빠진 리지는
발을 헛디뎌 넘어져 크게 다친다.
겨우 일어나 장미를 챙겨 집에 왔다.
오 년 후 벨은 열여덟 생일 파티인
첫 무도회에 입을 드레스 주문했지만,
모자가 빠져 있었다.
이곳저곳 급하게 수소문하다 전문가를 만났다.
전문가 에스텔은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어 만들어 놓은
물망초 한 송이도 줄 수 없다며
미스 버튼 숍을 가라고 제안했다.
걱정스럽게 찾아간 곳은 리지 작업실이었다.
꿈을 이야기했던 작은 소녀가 도움을 주는 이로 바꿔 있었다.
벨 방에서 리지가 말했던 착한 요정처럼 말이다.
꿈을 향하는 리지는 장미를 찾았고,
벨은 포근한 대지에 몸을 기댄 채 물망초를 바랬다.
자주 볼 수 있는 장미와 달리 눈에 띄지 않는 물망초를
벨처럼 한참을 찾다 요정 같은 친구가 올랐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던 그녀와 함께 걷던 길.
쇼윈도 진열품에 예쁘다고 하면
'내가 나중에 돈을 많이 벌 사줄게.'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소녀.
말의 의미보다 그녀가 있어 좋았다.
뾰족 가시 같던 나를 액체 괴물처럼 감싸주고
묵묵히 곁에 있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안된다고 조언 해주고,
씩씩거릴 때는 '화가 나서 그런가 봐.'라며 이해해 주었다.
그 시절 아픔을 직접 언급한 적도 알지도 못했지만,
서로를 의지해 버티며
“그런 일로 너무 괴로워하지 마.”라며 토닥였다.
한 명은 물망초처럼 작았고 하나는 장미처럼 컸다.
친절한 표정, 다정한 말과 태도가 우리가 가진 전부였다.
우리는 누군가의 장미나 물망초로
또 다른 무언가로 어떻게 만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