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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만나는 얼룩

나태주와 이준관

by debbie



11월

나태주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언제부터 마음이 갈라진 연못처럼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느끼지 못했다.


밑바닥에서 가시가 돋아

튀어나오는 단어에 화들짝 거렸다.

말을 조심했어야 했는데

후회가 11월 이처럼 덮쳐왔다.


어디가 문제지?

책을 읽지 않아

단어가 말라버렸다.


단어와 문장 고르기 위해

시집을 었다.


편안하고 읽기 쉬은 그의 시는

언제 읽어도 정갈하고 마음이 깨끗해진다.

<느릅나무속 잎 피어나듯> 시집에

마음에 쏙 드는

시인을 발견했다.


참 다행이다.


나태주 시가 좋아 시집 코너에 기웃거렸지만

나의 지식은 얇았고 책은 많았다.


한 명을 더 알아서 행이다.


마음이 허할 때, 시간이 없을 때

시가 좋다.


11월이다.








얼룩

이준관


아침에 새 양복으로 갈아입고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면 옷에 얼룩이 묻어 있다.

즐거운 식사 시간에도

국물은 떨어져 무릎에 얼룩을 남긴다.

아내가 새로 깐 식탁보에도

내 몸의 흉터 자국처럼

얼룩이 남는다.

사람들과 말을 할 때에도

말들이 흙탕물로 튀어

마음에 얼룩으로 남는다.

나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룩을 남겼을 까.

길거리에서

만원 버스에서

무심코 떨어뜨린 콧물처럼

남겼을 얼룩.

꽃에 사뿐히 앉았다 날아간

나비처럼

얼룩을 안 남길 수는 진정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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