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하당 Feb 04. 2022

시금치, 달걀, 두부, 우엉, 배춧속, 시래기

무서록

시금치, 달걀, 두부, 우엉, 배춧속, 시래기.


우리 집과 웃집은 큰길에서 외길로 제법 언덕을 오른 곳에 위치한 마지막 두 집이다. 그 언덕에 앞뜰까지 하면 관리해야 하는 면적이 꽤 되는데, 얼마 전 눈이 많이 내린 날 전부를 혼자 쓸어야 할 일이 있었다.


마당과 골목을 치우는   행복이자 특권이라 생각하는 터라, 혼자  긴긴 언덕을 내키는 대로 느릿느릿 치우며 정말 행복했건만 정작 웃집 입장에서는 그게 적잖게 미안했다 보다. 그날도, 그다음 날도 감사 인사를 하시더니만 급기야 며칠 전에는   차려주셨으니.  입장에서야 좋아하는  치우기를 실컷 했을 뿐인데 세상 맛있는 음식을 정월 초하루부터 넙죽 받아먹게  셈이라 민망하고  감사하다.


공동주택에 살지는 않지만 멀찌감치라도 이웃이 있어 든든할 적이 참 많다. 달이 얇은 밤에도 약속처럼 빛나는 창이라던가, 때때로 든든하게 울려 퍼지는 웃집 개 깜돌이의 목소리라던가, 그리고 가끔씩 이렇게 서로 주고받는 작은 마음 덕분에.   


마음이 느껴지는(2022), 아이폰 13 미니


작가의 이전글 섣달그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