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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당 Mar 12. 2022

제주의 바람

무서록

제주를 떠나올 때가 되면 으레 그 섬의 바람을 담아오고 싶어지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병 안에 바람을 담자니 금세 잠잠해지고, 소리를 담아 가려니 필요한 장비가 없기에. 그래도 다행히 내게는 믿음직한 카메라가 한 대 있어, 바람이 세차게 불어 주기만 한다면 필름에는 담아 갈 수 있다. 


강풍주의보라나. 이번 여행에서는 그런 바람을 만났다. 흑백 필름이 들어있다는 걸 깜빡 잊는 바람에 색을 함께 담아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날 귓가를 가득 채우던 제주의 바람을 기억하는 데에는 충분하다. 


같은 시간, 동해의 숲에는 큰 불이 났다. 그곳에서의 바람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바람일 텐데. 뒤늦게 걱정과 얕디 얕은 미안함이 마음 한구석에서 고개를 든다. 다행히 이제는 거칠었던 바람도 잠잠해지고, 간절했던 비도 내린다니 부디 성난 산불을 무사히 잠재울 수 있기를 바라본다. 역시 얕디얕은 바람이다.  


* 아래 두 사진의 영감은 모두 김영갑 작가로부터 비롯되었다.


제주의 바람(2022), Pentax MX/Kodak triX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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