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는 왜 게임 안에서 더 리더였을까

by 이소소


“나 게임해.”


그 말 한 마디에 따라붙는 이미지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다.
게으름, 무기력, 철없음, 시간낭비…


하지만 지금의 게임은 예전 오락실의 유희와는 많이 다르다.

게임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분들도, 그 변화만큼은 한 번쯤 인지해주셨으면 한다.


맞다.

어른이 되어서도 게임을 한다는 건 누군가에겐 놈팽이 인증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그 ‘놈팽이’들이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매일같이 시간을 쏟아붓고, 지치지 않고, 전략을 짜고, 사람을 조직하며
게임을 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놈팽이일까?



장사를 10년이나 했는데,
리더로서의 내가 더 또렷하게 느껴졌던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게임 안에서였다.


길드장이었던 그때,
사람을 뽑고, 일정을 조율하고, 갈등을 중재하고, 목표를 공유하던 그 모든 과정은
가게 운영보다 더 전략적이었고, 더 인간적이었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가게에서는 매출이 중요했다.
배달시간, 리뷰, 재료비, 단가, 인건비, 모든 게 숫자로 돌아갔다.


하지만 길드에서는
숫자보다 '사람'이 더 중요했다.

이 사람은 단타형일까, 장기형일까

팀 내에서 누가 누구와 잘 어울릴까

실력이 좋아도 태도가 별로면 데려올까 말까

그날 그 사람의 말투는 왜 평소랑 달랐을까


게임 속에서 사람을 보고, 예측하고, 배치하고, 동기부여하는 게 내 일이었다.

놀라운 건 그게 나한테 너무 잘 맞았다는 거다.



예전에 한 TV 다큐에서
게임에 빠진 아들이 엄마에게 외친 말이 아직도 밈으로 남아있다.


“안에 사람들이 있잖아!!!!!!”


웃기지만, 그 말이 정말 맞다.
게임 안에는 진짜 사람들이 있다.


나와 비슷한 자영업자부터, 현실에서는 만나보기도 힘든 교수님도 계시고,

회사 사장님, 서로 다른 나이의 사람들과 다른 시.공간 속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거긴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또 하나의 사회고,
내가 때론 스트레스를 풀고, 때론 책임을 지는 가상의 세계다.


나는 그 안에서 길드장이었다.

그룹을 이끌고, 사람을 뽑고, 전략을 짜고, 갈등을 중재하며
4년간 한 게임에서 리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나는 현실에서
파스타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사장이 됐다.
손님을 맞고, 알바를 뽑고, 스케줄을 짜고, 리뷰를 관리하고, 매출을 신경쓰며
5년간 내 이름을 걸고 버텼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거다.
리더로서의 내가 더 선명하게 느껴졌던 순간은,
현실이 아니라 게임 안에서였다.


길드장 시절엔 내가 말 한마디만 해도 팀이 움직였고,
누굴 언제 넣고 빼야 할지, 누구를 붙잡아야 할지,
사람을 보는 촉과 전략을 다 써가며 살아 있었다.


가게에선 그보다 더 큰 돈이 왔다갔다하고, 진짜 생계가 걸려 있었지만
그 리더십의 감각은 오히려 흐릿했다.


왜일까?


가게는 책임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루만 매출이 떨어져도 압박이 들어왔고,
알바가 안 나오면 내가 모든 걸 감당해야 했다.
배달 리뷰 하나에 멘탈이 나가고,
손님 한 명의 불만이 수십 명의 잠재 고객을 잃게 만들 수 있었다.


반면 게임에선,
사람을 읽고, 동기를 부여하고,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운영의 재미'와 ‘판 짜는 쾌감’이 있었다.

나는 그걸 좋아했고, 꽤 잘했다.


그래서 사장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길드장처럼 가게를 운영했다.
하지만 현실은 로그아웃이 안 되고,
휴식이 없는 레이드였다.
그 안에서 나는 점점 ‘리더’보다는 ‘소방수’가 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길드장이었고, 사장이었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판을 짜고 있는 사람이다.


이 연재는,
그 두 세계 사이를 넘나들며 살아온 나의 리더십 이야기이고,
‘내가 길드장이었던 시간’이 어떻게 현실에 닿았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오늘부터 그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게임의 리더십과 장사의 리더십은 얼마나 닮았고, 또 얼마나 달랐는지.”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