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다
지배할 것인가? 지배를 당할 것인가?
”저의 형제는 여동생과 저 둘이며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계시며 지금 결혼을 한지 두 달 된 아내와 신혼을 알콩 달콩 즐기고 있는 38살의 OOO입니다. “ 난데없이 자기소개가 여기저기서 이어진다.”술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맥주 그다음엔 소주 등 다양한 술을 지금까지 마시며 살아왔습니다. 평소 술을 즐겨 마시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한번 마시면 주변에 술이 없어질 때까지 마십니다. 그리곤 종종 필름이 끊어질 때도 있습니다. 직업이 떡을 만드는데 평소 출근 시간이 새벽 3~4시인데도 한번 술을 입에 되면 잠도 자기도 않고 먹다가 그대로 출근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제 생각에는 정말 힘들게 일하고 저녁때 일을 마치면 뭔가 허기가 져서 밥보다는 술을 먼저 먹게 되고,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한 보람의 보상받고 싶은 심정을 술로 채웠던 것 같습니다. “
나 또한 자기 고백을 시작한다.” 저도 아버지가 애주가이고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며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끝나고 학원에서 처음 맥주를 마셨습니다. 처음에 입에 맥주를 먹었을 때는 너무 써서 이런 걸 왜 마시지 생각했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합니다. “
여기는 절주 학교이다. 평소 술을 너무 좋아하고 애주가인 나도 평소 지인들과 술을 마시면 2~3병은 거뜬히 마시고 집에 간다. 그런 내가 최근에 생긴 일로 술을 줄이겠다는 결심을 아내에게 선포한 뒤 절주 학교를 신청했다.
“자, 건배 오늘은 술이 잘 넘어가는 게 달다 달아. 원샷. ”쨍쨍 “ 둔탁한 소리와 함께 컵과 컵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곧이어 단숨에 소주 한잔을 들이켠다. 긴 숨을 내쉬고 나서 술안주로 시킨 족발을 질겅질겅 씹는다.
‘최근 지인과 집에서 술을 마셨는데 3병이 넘어가니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방에 누웠는데 속이 갑자기 메스꺼워 안방 화장실에서 토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계속 속은 안 좋고 변기에 앉아 있다가 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딸이 와서 “아빠 일어나 여기서 자면 입 돌아가, 추워서 죽어” 하면서 깨웠는데 기억도 나질 않고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데가 따뜻했는지 변기를 끌어 앉고 있었고 몸에는 딸아이가 덮어준 담요에 있었으며 발에는 토사물이 묻어 있었습니다.
가끔 주량을 넘어서면 전날 기억도 나질 않고 필름이 가끔 끊깁니다. 이런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술을 줄이고자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술은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은 나에게 묘약 같은 존재였다. 몇 잔 들어가면 서로에게 솔직해지고 평소 하질 못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격 없이 나눌 수 있게 해 주던 신비의 묘약이다.
“사장님 여기 참이슬 1병과 카스 1병이요” 익숙한 듯 맥주잔을 놓고 반 정도를 따른 뒤 소주잔에 소주를 한 컵 붓고 맥주잔으로 다시 옮긴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숟가락은 맥주잔에 넣어 젓가락으로 “퉁”하고 친다. 이내 맥주잔 속에서 내일 아침의 나의 위장 상태를 알리는 듯한 회오리가 쏴 하고 돌면서 이내 가라앉는다.
“팀장님 제가 한잔 말았습니다 한잔 시원하게 드시죠?” 잔을 격하게 “탁” 부딪치며 나는 폭탄주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도현 씨가 폭탄주 비율을 제대로 섞는 걸 보니 앞으로 승진은 문제없겠네” 만족스럽다는 의미의 눈꼬리가 올라간 눈썹, 원석 속에서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잔잔하게 퍼지면서 웃는 입가의 미소 사이로 폭탄주가 담긴 팀장님의 손이 쑥 들어오며 “ 자 마셔, 원샷” 칭찬 아닌 칭찬과 덕담이 오간다.
직장 생활 및 대학 시절, 연애 시절에서도 술은 정말 유용하게 쓰였다. 특히 직장 생활에서는 껄끄러운 직장 상사와 술 한잔을 마시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하는 직장 생활의 방식, 너를 내가 너를 뒤에서 밀어주겠다는 약속, 그 자리가 너의 자리라며 내가 윗분에게 부탁해 보겠다는 약속 등을 철석같이 믿으며 피보다 진한 소주가 우리 사이를 엮어준다고 믿어 왔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보면 그런 진지한 이야기보다 내가 왜 이렇게 마셨는지, 계속 마시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라는 다짐 등, 다시 밀려드는 후회감과 뒤따라오는 숙취 그리고 정작 중요한 이야기와 약속 등을 한 것 같은데 아무 생각도 나지도 않았다.
그 당시에는 내가 가진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저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내고 잘 견디어내 나 자신을 위한 자기만족, 그리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수단 그렇게 시작된 집에서의 혼술 또한 소주 반 병에서 시작해서 점점 더 늘어났다. 한병, 한병 반, 두병 점점 더 술에 의존하게 되면서 더 이상은 이렇게 해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고 지금은 집에서 혼자 소주는 마시지 않는다. 가급적 주중은 술을 마시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슬픔의 방문에서 장일호 작가는 P45”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술은 제2의 따옴표다. 술로만 열리는 마음과 말들이 따로 있다.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뾰족한 연필심은 뚝 부러져 나가거나 깨어지지만, 뭉특한 연필심은 끄떡없듯이, 같이 뭉특해졌을 때에서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말들이 있다 “고 얘기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말들을 나눌 수 있는 술의 적정선이 과연 얼마만큼 인지를 모르겠다. 그리고 항상 술이 나를 이긴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서 절주학교에 나온 사람들은 모두 술로 인해 얻은 것보다 잃은 것들이 많은 사람들이다.
“여러분이 반에서 1등을 하거나, 축구 경기에서 이긴다면 우리 뇌에서는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전두엽 앞에서 쏴 하고 퍼져요, 그 도파민은 승리했을 때의 쾌감이며 사람의 기분 좋게 해 주면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끌어요. 그러나, 우리는 매일 승리하거나 이기는 삶을 살 수는 없어요. 그래서 그것을 대신할 술을 마시고 계속 승리감에 도취하도록 하죠 그래서 술이 중독된 사람은 술을 끊기 어려운 거예요. 여러분도 혼자 있거나 내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 이런 나의 헛헛함을 채울 줄 수 있는 것이 술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찾으셔야 해요”
나 또한 집에 혼자 있을 때나 우울하거나 하면 언제나 이런 헛헛함을 채우기 위해 술을 찾았던 것 같다. 그럼 이 헛헛함은 무엇일까?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버는 것, 직장에서 옆의 동료보다 승진을 빨리하는 것, 남과의 비교에서 뒤처지지 않는 것, 만약 뒤처진다면 나를 자책하고 비난하며 채찍질하는 것... 어쩌면 이런 나를 남과 비교하면서 좀 더 빨리 가려하고 남보다 뒤처지면 안 되고 더 많이 가질 수 없는 헛헛함을... 그런 나는 술로 채웠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은 그 헛헛함을 채울 다른 무언가를 찾고 있다. 여행, 독서, 글쓰기, 그리고 내려놓기, 천천히 가기, 가끔 하늘 보기, 셀프 허그를 하며 오늘 하루도 고생한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하기, 감사 일기 쓰기, 자전거 타기 등 여러 가지 도전 중이다.
그러면 남과 비교하던 나의 마음도 사라지고 이런 헛헛함도 사라져서 더 이상 술을 찾지 않게 될지도...
내가 지배를 할 것인가? 내가 지배를 당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