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꾸었던 꿈 중에서 기억나는 꿈이 있으세요? 혹시 가족 분들과의 관계 중에 힘든 부분은 없었나요? 부모님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떠세요?” 이어지는 질문 세례에 나는 꿈, 엄마라는 단어에 내 가슴속에 남아있던 응어리를 누군가 버튼을 누른 듯 벌써 오른쪽 눈에서는 눈물 한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시각 상담 방 유리창 창문에도 소나기에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나의 기억은 그날로 돌아간다.
중학교 2학년, 자궁암 말기로 아프던 엄마가 빨리 회복하여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찾아온 호흡곤란과 의식불명으로 엄마는 사경을 헤매었다. 의사 선생님은 암이 전이되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는 말에 마지막은 집에서 보내드리자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집으로 모셔왔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사투를 벌이는 그 시간에 나는 하필 학교에서 박물관 견학을 갔다. 엄마가 위독하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급하게 집으로 향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친척들의 울음소리와 자고 있는 듯한 모습의 엄마의 평온한 얼굴을 마주했다.
아뿔싸, 그렇게 엄마의 마지막 임종을 지키지도 못한 채 그렇게 엄마를 떠나보냈다. 어린 마음에 그저 편안하게 누워 있는 엄마가 다시 일어나 ‘도현아’라고 부르며 나를 안아 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나의 상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나는 상복을 입은 채 칠성사이다가 먹고 싶어서 사이다를 꼭 쥐고 있었다. 그런 외삼촌은 나를 보더니 ”엄마가 죽은 건 아니? “라고 묻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3시간 뒤 술에 잔뜩 취해서 얼굴이 뻘겋게 상기된 얼굴로 돌아오셨다. 그만큼 철도 없었고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아버지의 고종사촌은 집안에 들어오자마자 ”왜 똑순이 형수님이 , 건강하신 형수님이 돌아가셨는교? “ 하면서 아버지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셨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마지막 순간을 보지 못한 채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고 엄마의 옷가지를 태우고 엄마를 가슴에 묻었다. 그날 이후로 길거리에 엄마의 손을 잡고 지나가는 친구를 보거나 친구들이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엄마의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한 미안함에 자책하면서 살아왔다.
다른 사람들은 초여름이 시작되고 장마철이 되면 여름휴가 계획 등을 세우느라 들떠 있지만 나는 항상 30년 전에 그날의 생각들로 내 마음은 멈춰져 있다. 그래, 그날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지금도 창밖의 빗소리가 더욱 나의 무거워진 마음을 처량하게 만들었다. 오늘밤에도 잠이 들 요량으로 라디오에 이어폰을 낀 채 유년시절에 주파수를 맞추고 잠이 들었다.
어두운 방 끝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어린 나를 발견했다. 어리숙해 보이고 부끄러움이 많은지 한참 동안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니, 무엇을 자책하고 있었던 것일까? 15살, 견학활동을 갔던 그날 아침에 갑자기 엄마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그렇게 기다리던 큰아들을 뒤로한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방에 누워계시던~~
내가 가서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어린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시바다 도요의 시 ‘약해지지 마’를 말해주었다.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 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도 한쪽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그러니까 너도 약해지지 마
“괜찮아 “라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어제도 꿈속 어두운 방 끝에서 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어린 나를 보았다. 잠에서 깰 때쯤에는 어린 나의 얼굴이 울고 있었는지 웃고 있었는지 자세히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그것만은 확신한다. 지금은 웃는 얼굴을 하며 있었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엄마의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자책 아닌 자책을 하면서 내면 속에 묻어둔 채 애써 외면하고 잊어버리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의 상황이 달라졌을지라도 답을 알면서도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모른 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도현아 너무 열심히 잘 살아왔고 항상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주변에 엄마가 너와 함께할 사람들과 같이 있을 것이며 언제나 함께 웃고 울고 할 거야. 미래에도 널 위한 세상이 펼쳐질 거야 사랑한다 아들아 “
내가 가진 것의 행복의 비밀은 충분히 받은 것 같다. 답은 이미 내 가슴속에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이런 성향, 성격 등을 주고 떠났으며 그런 엄마를 닮은 아이 그 모든 것이 이미 엄마로 인해 충분히 받아왔던 것들.... 엄마가 남긴 고귀한 선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