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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위티 Nov 16. 2022

나의 전역을 막은 타로카드

내가 타로카드나 사주에 미친 듯이 돈을 쓰는 때가 주기적으로 있다. 그랬던 시기의 공통점을 보면 내 내면이 굉장히 불안정한 경우가 많았다. 타로카드와 관련된 웃픈 에피소드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타로카드 경험은 홍대 메인 거리에서 본 타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웃긴 이야기이다. 사관학교를 다니고 있을 당시, 매일마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땀을 뻘뻘 흘리는 내 모습이 자괴감이 들었었다. 매일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구보를 뛰면 낙오할까 봐 두려웠고, 선배들과 동기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힘들었던 나날들이었다. 제일 힘들었던 건 내 친구들은 대학교에 나와 머리도 예쁘게 꾸미고 미팅도 하는데, 나는 머리도 빡빡 깎고 화장도 못하는 상태로 학교를 다니다 보니 비교가 되어서 너무 힘들었다. 하계 군사훈련이 끝나고 나니 검게 탄 얼굴과 짧은 머리를 볼 때마다 초라했다. 나와 또 다른 여생도 였던 친구와 함께 외박을 나와서 홍대 거리를 걸어가고 있을 무렵, 어느 한 타로카드를 보는 곳에 눈길이 갔다.


" 학교 때려치우고 싶다. 그냥 확 때려치울까? "

" 그럼 우리 한번 타로 봐볼래? 그래서 학교 때려치워도 된다고 하면 때려치우자"


지금 보면 참 어이없는(?) 광경이지만, 우리는 진지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누군가가 우리에게 "나가! 나가 이 멍충아! 너는 나가서 잘 될 팔자야!"라고 밀어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홀린 듯이 들어갔고, 타로 봐주는 아저씨가 우리에게 타로를 봐주면서 무엇이 고민이냐고 물어보셨다.


"타로 봐주시는 분이면, 저희가 뭐가 고민인지 아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불신)

" 타로 처음 봐요? 내가 그런 사람이면 타로 안 보고 무당하고 있겠지~ "


그때 우리는 타로를 봐달라고 했고, 내 동기는 사실 거기서 바로 이야기를 꺼내기는 민망했는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연애운이 궁금해요."


아저씨는 "연애운이 아주 좋다"는 아주 무난한 ~ 이야기를 해주셨고, 우리는 말발 좋은 아저씨의 입담에 넘어가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저 하나만 봐주세요. 제가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그 학교를 안 다니고 싶은데 그렇게 해도 되는지 타로카드에 물어봐도 되나요?"

"무슨 학교 인디?? 일단 잠시만 기다려봐요" 하고 카드를 쓱쓱 섞고 뽑으시더니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일단 무슨 학교인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다니는 게 좋다고 하네? -- 어쩌고 저쩌고..."

우리는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해 풀이 죽었고, 결국 아저씨에게 솔직하게 사관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아저씨는 갑자기 들으시더니 깜짝 놀라시며,

"내가 사주랑 타로를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건 사주랑 타로랑 별개로 당신들 사관학교 절대 나가면 안 되는데... 뭐 때문에 나가는 건데요"

 

그리고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했고, 아저씨는 본인 아들이 사관학교를 다니고 졸업해서 임관했다며(?) 그 시기는 힘들지만 조금만 지나면 나아질 것이고, 그 시기가 힘들어서 나가면 후회한다고 하셨다. 갑자기 타로에서 아버지 훈계 시간으로 바뀐 우리는 약간은 정신교육(?)을 받은 것처럼 얼떨떨하게 감사하다고 하며 나갔고, 다시 사관학교에 복귀해서 힘들지만 열심히 생도생활을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복채도 안 받으셨다. 정말 진심으로 말씀을 해주신 것 같아 감사하다. )


지금 그 친구와 나는 둘 다 임관해서 아주 멀쩡하게 군생활을 하고 있다. 그때 생각을 하면 킥킥거리면서 말이다.


이후, 또다시 군생활에 회의감이 들 무렵 또다시 고민을 하다가 타로카드가 생각났다.


타로카드를 보면서 무엇이 가장 궁금하냐는 물음에 타로카드를 봐주시는 분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 이직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그대로 있는 것이 좋을까요?"  

몇 가지 카드를 뽑은 후 나온 결론은

"이직하세요. 연초가 좋아요."였다.


그런데 뭔가 찜찜했다.  


'흠... 다른 곳에서도 더 받아볼까?'


또다시 타로카드 상담을 찾아보던 나는 다른 분에게 상담을 받게 되었다. 같은 질문을 여쭤봤고, 그분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왜 나가고 싶은지, 지금 있는 상사와 직장운, 건강운들을 봐주셨고, 나는 주변에 인복이 많아서 조금만 있으면 문제들이 슬기롭게 하나둘씩 해결될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셨다. 그 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무엇이 고민이었는지 말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말씀해주시는 부분들이 용기를 북돋아서 굉장히 힘이 되었다.


 나는 군생활을 전역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진짜 무엇에서 행복감을 느끼는지 잘 모르고 있었고, 그리고 주변에 있는 몇 명의 사람들 때문에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그분에게 상담 아닌 상담들을 하면서, 내가 궁금증을 느끼는 요소들이 현재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이고, 그분이 해주시는 말들은 그 고민에 대한 일종의 위로와 용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느꼈다. 나는 내 고민에 대한 상담, 그리고 편하게 그러한 이야기를 할 사람을 찾는 것이고, 그에 대한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줄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을.  


내 미래에 대한 예지가 아니라, 내가 무엇으로 인해 고민을 하고 있는지 끊임없는 물음과 대답을 통해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타로카드 상담을 받으면서 그러한 생각들이 명확해졌고, 나는 지금 전역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진정으로 보람을 주는 것들, 일상에서의 탈피와 새로운 도전들이 더 시급하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타로카드는 일종의 '답정너'(답이 정해져 있는 너)이다.


사실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은 나 자신에게 있다.

나 자신이 질문과 대답을 통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해결점이 조금이나마 보이는 것이 아닐까.


어찌 되었든, 전역을 막은 타로카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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