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브런치 알람이 울렸다, 나의 글 중 하나가 조회수 20만을 달성했다는 알람이었다. 나의 '군인은 처음이라' 매거진 시리즈가 우연히 브런치 알고리즘의 픽을 받아 많이 읽히다 보니 많은 분들이 댓글로도 피드백을 주셨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주는 광경이 너무 신기하고 신이 났다. 이래서, 글을 브런치에 쓰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브런치 댓글 알람이 울릴 때마다 댓글이 너무 궁금하고 기대가 되었다.
나는 나름대로 멘털이 세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사관학교를 거쳐 군에 있으며 늘어 든 것은 '깡과 단단해진 멘털'이다. 나는 댓글 또한 개인의 생각이 담긴 글이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들을 존중해주려고 하는데, 어느 날 나의 <군대 시리즈> 글에 댓글이 달렸다. (특정 제목을 언급하면 많은 분들이 찾아볼 것 같아 밝히지 않았습니다.)
" 사병 근무도 안 해본 초급 여장교가 과연 사병 출신 남자보다 군대에 대해 얼마나 더 잘 알까?"
이 말이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고 브런치 앱 알림을 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그래,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다면 이 정도의 악플은 감수할 줄 알아야지. 침착하자. 별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자꾸 그런 생각들이 드는 것이다.
' 그러는 당신은, 당신은 얼마나 경험했다고 군에 대해 다 아는 척이지? 내가 받은 훈련만 해도 당신보다 훨씬 많을 건데. 나도 사관학교에 들어가서 당신들이 받은 '부조리함'도 겪어봤고, 나도 곱게만 자란 건 아닌데... 여군 장교라고 무시하는 건가?'
'그럼 참모총장이랑 사관학교 출신, 학사 출신 장교들도 군대에 대해 잘 모르겠네? 그럼 당신이 아는 군대는 만기 병장들만 알겠네?'
' 여군은 사병 근무도 못 하는데, 당신이 뭘 알아. 나도 열심히 일했어. 그리고 당신이 뭔데 나한테 초급장교라는 거야? 몇 년 동안 이 직업에 헌신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건가?'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이 교차했다. 그리고 본인의 한정된 경험으로 나와, 군이라는 집단을 평가하는 것이 화가 났다. 필터링되지 않은 나의 글을 읽어보니, 너무 감정적인 것 같았다. 내 나름의 마인트 컨트롤을 하고, 찬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 --- (중략) 사병 입장에서 경험한 군대와 간부 입장에서 바라본 군대는 다를 수 있겠죠. 당연히 간부 입장에서 사병의 입장을 완전히 알 수 없듯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일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간부의 입장에서 사병들의 고충들을 이해하고,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들이 간부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그에게서 답글은 없었다. 하지만 댓글을 작성하면서 내 마음속에 그 '악플'은 각인이 되었다. 그리고 출근하는 길, 그 댓글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시간이 지나고 화가 풀리고, 그 댓글을 다시 읽어보니 내 발작 버튼이었던 '초급 여장교' 단어를 지나 '사병 출신 남자보다 군대에 대해 얼마나 더 잘 알까?'라는 글이 보였다.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때 나는 내 모습이 생각났다.
나는 과연 나의 삶과 업무에 찌들어, 내가 신경 써야 하는 병들의 마음은 그만큼 신경 써준 것이 있을까.
분명히 그 조직 내부에도 부조리가 있을 것이고, 힘들어하는 애로사항이 있을 텐데 나는 그만큼 신경을 쓰고 바꾸려고 했을까? 부대에서 나는 징계 담당 장교로, 나의 예하에 있는 부대에서 징계사항이 있으면 징계위원회를 개최해서 양정기준에 따라 징계 결과를 내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 친구들을 진정으로 신경 써준 적이 있나? 나 또한 그들을 그저 내 예하에 있는 수병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어느샌가 나에게 쏟아지는 행정업무에 지쳐서 기계적으로 양정 기준에 맞춰서 진행하지는 않았는가?
분명히 나도 처음엔 그러지 않았는데. 퇴근 하기 직전에는 피자와 치킨도 사서 애들과 나눠먹고, 고충도 들어주고, 여자 친구와의 연애상담도 도와주었다. 연말 12월 31일에는 취침시간도 늘려주고 같이 타종 소리를 듣기 위해 방 한 곳에 모여서 시끄럽게 떠들기도 했었다. 그때 같이 시간을 보냈던 수병들과는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은 업무와 현생에 찌들어서, 행정적인 처리만 하는 장교가 되어버렸다. 윗사람들의 지시만 따르기에도 허덕거려서, 그 지시를 따르느라 정작 내가 신경을 썼어야 하는 인원들에게 조금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볼 수 있었는데 외면한 것은 아닐까.
그 이후로 수병들에게 핸드폰 관련 교육을 하게 되었을 때가 되었다. 수병들에게 그저 양정 기준만 알려줄 수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이 맞을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그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너희가 핸드폰을 일과 이외의 시간에 쓰고 싶은 마음을 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장교가 되어서 전역을 앞둔 너희들, 혹은 근무를 열심히 서고 있는 인원들에게 협박조로 교육하는 것이 맞는지 개인적인 가치관과 생각으로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20살 이상 나이 먹고 생각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저 내가 협박조로 말하는 것이 의미가 크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이전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아이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존중을 바랐던 것이 아닐까. 내가 이 친구들에 비해 잘난것은 계급을 제외하고 무엇이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쓰였을 그 '악플'로 인해 한번 더 군생활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내가 그렇게 그 댓글에 화가 났던 건, 부끄러운 감정도 교차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
덧붙여서, 악플과 관련된 후일담. 그 댓글 이후에는 수많은 분들이 (감사합니다 ㅠㅠ) 그분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댓글과 응원해주는 댓글을 작성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나는 그렇게 댓글을 작성해주신 분들의 댓글을 일일이 스크린샷 해서 앨범에 모아 두고 있다. 힘들 때 그런 댓글을 읽으면 너무 힘이 나고, 행복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를 모르는 많은 분들이 나의 고민에 진심으로 공감을 해주실 때 뿌듯함을 느낀다. (댓글 달아주시고 공감 눌러주시는 분들 사랑합니다...ㅠ)
그런 분들에게 내가 받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너무 커서, 나는 악플이 달려도 계속 브런치를 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