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서서히 이 증상들이 신체적으로 발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그때 정신과에서 다시 상담을 받았고, 정신과에서 진단하는 내 우울감은 '극단적인 선택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우울감'이었다. 입맛도 없고, 그저 지나가다가 누군가 나를 툭 쳐서 쓰러지면 병원에 입원하고 싶은,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그 시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은, 다른 어떤 이유보다 나를 사랑하는 가족이 생각나서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이 시기를 버티지 못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마감보고를 들어가는데, 나는 나름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 보고가 턱턱 막히는 거다.
"00 과장, 이러면 곤란해. 내가 너한테 기대하는 만큼 자네는 못해내고 있네. 좀만 신경 쓰면 가능한 부분 아닌가?"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평소에 누군가에게 한 소리를 들을때도 그다지 큰 타격이 없던 나다. 눈물을 멈추려고 했는데 눈물이 안 멈췄다. 눈물이 끊임없이 나왔다. 나도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항상 잘 웃고, 문제없는 장교가 그렇게 우는 것이 놀라셨는지 보고를 받으시고 아무 말 없이 나가보라고 하셨다.
나가면서 화가 났다. 거기서 울어버린 나 자신한테. 그리고 내 고생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방에게.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왜 못 알아주는 걸까. 서러웠다. 그 길로 퇴근하고 집에 가서 침대에 쓰러졌다. 한번 시작된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나는 나의 윗사람들에게는 철저히 숨겼다. 왜 그렇게 울었냐는 질문에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가족이 편찮으셔서, 신경이 많이 쓰여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유를 듣자, 처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들었겠다고 하셨다. 졸지에 나는 우리 가족을 아픈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죄책감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이런 거짓말로 언제까지 버틸 것인가.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나고 있었고, 우울감은 커져만 갔다. 이때 많은 방황을 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했고, 파티도 가기도 했고, 아무도 안 만나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때도 내 자신이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고는 인지하고 있지 않았고, 여전히 자연적으로 치유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업무를 꾸역꾸역 쳐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가끔 엄마한테 전화 오면 힘들다고 말해볼까 고민하다가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삼켰다.
"딸, 항상 엄마는 너 편인거 알지? 언제든 힘든 것 있으면 말해라. 사랑해~~"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때 때마침 동기를 힘든 시기에 만났고, 난 그에게 상처만 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