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천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몸에서 눈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크다는 말이지요.
모든 장애가 다 불편하고, 손톱 밑에 낀 작은 가시 하나가 엄청난 아픔을 만들어내지만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답답함과 고통을 주게 됩니다.
제가 안과의사이기 때문에 더욱더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실명한 분들을 많이 봐온 사람으로서
내가 만약 실명한다면 어떨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세상을 다 잃은 듯한 슬픔이 몰려옵니다.
실명의 장애를 극복하신 분들은 최고의 마음 치유자이시고 존경받아 마땅한 멋진 분들이십니다.
팔이나 다리가 불편하거나,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거나, 심지어 뇌성마비라 할지라도
눈을 통해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것인지 시력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수 있습니다.
시력을 잃으면 나머지 건강한 내 몸을 마음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걸어가도 방향을 잡을 수 없으니 제대로 걸을 수가 없고, 음식을 먹거나 무언가 잡고자 해도 팔은 그저 허공을
가를 뿐입니다. 들리지 않는 것도 답답하지만 글로 혹은 수화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어떤 것에 대해 들어도 그것에 대한 정확한 것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아름다운 모든 것을 볼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아이가 어릴 때 실명하신 젊은 분이 있었습니다.
당뇨병성 망막병증에 의해 실명하셨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정기적인 안과 검진을 받으셨다면 결코 실명하지 않으니까요.
선천적으로 실명하신 분들에 비해 후천적으로 실명하신 분들은 생활이 훨씬 힘들고 정신적인 충격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합니다.
이 분은 먼저 실명하신 분과 친분이 있으셨고, 그 분과의 교감을 통해 잘 극복하셨습니다.
하지만, 극복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분의 머릿속에는 어릴 때 봤던 모습만이 존재합니다. 생각만 해도 너무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점차 굵어져 가는데, 모습을 볼 수가 없으니 시시때때로 갑갑함이 몰려옵니다.
이분의 소원은 빨리 의학이 발달되어 형체라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모습을 형체라도 볼 수 있다면 전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눈을 고치고 싶다는 것이 이 분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며
선물이며 모든 것을 다 가진 것과 같을 만큼의 축복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직경 2.4센티 밖에 안 되는 작은 구슬 같은 눈, 우리의 몸에서 비록 아주 작은 범위만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 눈이 가져다주는 선물과 신비는 실로 엄청납니다.
이것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서 눈 건강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자
처음으로 이러한 공간에 저의 마음을 풀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