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작세 Nov 11. 2021

아버지답지 못한 사람을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 힘듦 4

아버지 품에 안겼던 사람이 부럽다

저는 소문난 효자였습니다.^^

자화자찬하려니 부끄럽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선행상을 꽤 받았습니다.

중학교 때는 도지사가 주는 선행상도 받았었네요.

어떻게 해서 제가 받게 되었는지는 솔직히 지금도 모릅니다.

제가 정말로 착하게 보여서 줬는지, 공부를 잘했다고 그냥 줬는지...

이것과 관계없이 저는 부모 말씀을 어긴 적이 없는 아주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가출을 결심했습니다.

제가 대학교 졸업하기 전에 집이 완전히 망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거든요.

아버지가 집에 딱 붙어서 장사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사람은 바뀌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60이 넘으신 분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말씀을 드려봤자 말 꺼내자마자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고 제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이 자명하였기에

장문의 편지를 써서 이불 밑에 넣어 놓았습니다.


가진 돈이 별로 없었기에, 도보로 가는 데까지 갔다가 며칠 후에 집에 올 생각이었습니다.

여름이라 샌들을 신고 나갔네요. 바보같이. 이것은 나중에 자세히 쓸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출발하면서 시집 가 있는 누나에게 전화했습니다.

누나는 말렸지요. 그런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그래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엄마 안심시켜드리고, 편지를 꼭 아버지께 전해 달라고 엄마께 말씀드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3일이면 충분할 듯싶었습니다. 

아버지가 편지를 읽고 나서 집이 난리가 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더 나가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일단 누나 집으로 갔습니다.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고요.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 있었습니다.

엄마는 아버지께서 난리를 치실까 봐 아예 제 편지를 전해주지 않았고,

누나는 공부를 해야 하는 동생이 마음이 힘들다는 생각을 해서 나름대로 방안을 생각한다는 것이

결혼을 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저를 결혼시키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아버지는 노발대발했고요.


저는 정말 속이 터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장문의 편지를 쓸 때 제 마음은 정말 힘들었고, 쓰는 손은 벌벌 떨렸었습니다.

그래도 꼭 해야만 했었는데, 그 편지가 전해지지조차 않았고 

저는 결혼하고 싶어서 가출을 감행한 나쁜 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왕 노발대발하신 것, 편지라도 전해줬으면 좋으련만, 

편지는 전해지지도 않고 불태워져 버렸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중이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더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여자한테 빠져서 결혼할라고 집을 나가는 쑈를 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제가 왜 이 말을 들어야 하는지 너무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편지를 전해주지 않았고, 결혼 얘기는 누나가 만들어 낸 것이라는 얘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다가는 엄마와 누나가 못 당할 꼴을 당하게 되니까요.

그냥 제가 뒤집어쓰는 것 외에 아무런 방법이 없었습니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잘못했습니다'라는 말만 되뇌었습니다.

'에이 못된 놈' 

기나긴 비난 후 마지막 저에게 던 지 아버지의 말입니다.

이 말을 듣고서야 저린 발을 일으켜서 제 방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저의 감정은 얽힐 대로 얽혀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 날은 너무 슬펐습니다.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저만 바라보고 모든 것을 견디며 살고 계시는 엄마 때문에.

제가 없어지면 엄마의 희망도 사라지는 것임을 알기에.

어떻게든지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가출했을 당시 도보여행기를 썼었습니다.

비록 3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여행인지 고행인지 모르겠지만.

비록 아버지께 편지를 남기고, 그 편지를 읽고 생각하실 생각을 드리고자 나선 것이지만,

제 자신도 돌아봐야 하겠기에 썼었죠.

작년에 실로 오랜만에 꺼내어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쓴 것인데도, 제가 당시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놀랐고,

제가 세운 자녀에 대한 계획이 그대로 지금 이루어졌다는 것에 더욱더 놀랐었습니다.

14페이지에 쓰여 있는 내용 중 발췌한 내용입니다.

(굳이 올리지 않아도 되는 내용을 올리는 이유는 제 마음 어디엔가 숨어 있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다 끄집어내어 태워 버리기 위함입니다. 제발 다 타버렸으면 좋겠습니다.)



편집하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나와버렸습니다.

반백년을 훨씬 넘게 살았는데 아직도 흘러나올 눈물이 있었네요. 이런.


그래도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엄마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해 드렸고,

정확히 2남 1녀를 낳아 잘 키웠으니

이제 그만 다 잊혀져버려도 될 터인데...


이 글을 시작한 이유가,

돌아가신 지 4년이나 지났는데도, 지금도 아버지가 꿈에 나와서 저를 괴롭히시기 때문이어서,

(꿈인지 모르기에 너무 놀라고, 가슴이 벌렁 거립니다. 꿈을 기억하면 치매가 빨리 온다는데, 저는 꿈이 너무 생생해서...)

어떻게든지 제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들을 해결하고 싶어서였는데,

다시 눈물이 흐르니, 이 방법이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것이고,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것이니 용기 내어 계속 가보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