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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Nov 30. 2021

아버지답지 못한 사람을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 힘듦 5

자식 앞 날에 재를 뿌리지 않는 아버지를 둔 사람이 부럽다

ㅇ 저보다 네 살 아래 여동생. 우리 집 막내는 일반고에 가지 않고 여자 상업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애초에 대학을 못 갈 것으로 생각했기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지요.

동생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개인 사무실에 취직을 했습니다.

월급 13만 원. 고작 13만 원을 받고 하루 종일 일을 했습니다.


취직 후 몇 달 지나고 나서 동생이 제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월급을 다 주라고 해서 월급을 다 드리고 용돈을 타서 쓰고 있어요'

저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집에 돈을 들여놓아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을 알기에(이때는 어디로 사라지는지는 몰랐었습니다. 이후로 30년이 지난 후에야 알았네요.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저는 정색을 하고 말했지요. 

'안된다'


동생들을 불러 놓고 비밀리에 간직했던 제 통장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아무도 몰래 매달 36000원씩 들어가고 있는 정기예금 통장이었습니다.

'우리 집 빚은 한꺼번에 해결하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몰래 모으고 있다.

너도 아버지의 어떤 핍박도 꼭 참고 돈을 모아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집은 빛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저의 각오를 말해주면 동생도 굳은 각오로 그리 하리라 생각해서 말했는데,

동생은 여자였고, 막내였습니다. 

애초에 아버지를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동생은 열심히 일하면서도 자기가 번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조금의 용돈만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물론 제 비밀은 이후로 2년간은 잘 지켜졌습니다.


ㅇ 본과 1학년 때,  여자 친구가 얼굴이 잔뜩 굳어져서 제게 말했습니다.

'오빠 아버지께서 오빠에게 말하지 말고 우리 부모님께 말해서 돈 좀 빌려 달라고 하라고 하셔서,

아버지께는 말 못 하고 엄마께 말씀드렸는데,

엄마께서 오빠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해서 말하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사귀고 있는 사이이고, 

여자 친구가 생기면 부모에게 꼭 바로 말해야 한다고 교육받았기에 사귀자마자 집에 소개했고,

가끔 집에 와서 아직 아무런 관계도 아닌, 단지 남자 친구 집임에도 불구하고

빨래도 하고 일도 도와주고 있는데,

잘해주지는 못할 망정, 나 몰래 돈을 빌려 오라고 시키다니.

어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여자 친구에게도 미안하고, 여자 친구 엄마께는 너무 면목이 없었습니다.


여자 친구 엄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책임지고 해결하겠습니다.'

여자 친구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했고, 빌려 달라 했는데 빌려주지 않아서 자신의 딸이 눈 밖에 나면 어떻게 하나 라는 걱정을 하신 것이지요. 

어찌 이런 걱정이 안 되겠습니까.

'제가 따님에게 아무런 영향이 끼치지 않게 잘 해결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여자 친구는 겁을 잔뜩 먹은 상태였습니다. 

정말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 화를 낼 수는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아버지는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는 사실을 저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여자 친구에게 말했기에 제가 아는 척도 할 수 없었습니다.

화를 내거나 아는 척을 했다가는, 

제 여자 친구와 여자 친구 부모님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마치 잘못한 사람 취급을 받고 말 테니까요.

그래서 찾아낸 방법은 여자 친구 집의 폭망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밥 먹으면서 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여자 친구 집이 이번에 사업이 잘 안되어서 많이 어려워졌나 봐요.'

이 말로서 이 일은 그대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이 일을 알고 있다는 것을 돌아가시는 날까지 모르셨지요.


초등학교 때 친구가 저금통에 10만 원이나 있다는 자랑을 하길래

아버지께 그 말씀을 드렸다가

아버지께서 제게 친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해보라고 하여 그대로 했다가 친구를 잃어버리고,

그 이후로 친구 사귀는 것을 포기하여 고등학교 때까지 학창 시절 친구라고는

고 1 때 친구 달랑 세 명뿐입니다.


하마터면, 여자 친구마저도 잃어버릴 뻔했습니다.

다행히 여자 친구는 이런 일로 저를 버리지(?) 않았고,

여자 친구 어머님도 제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 주셨었지요.

어찌 보면, 제가 짠해 보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김서방은 불쌍하게 자랐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이니 잘해줘라'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이 상황을 잘 넘겨서 다행히 여자 친구와는 지금도 같이 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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