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고 있다면 보이는 것이겠지요.
19년 전, 2001년에 한 분을 만났습니다.
녹내장으로 인하여 7년 전(1994년)에 양쪽 눈 수술까지 받으시고
그래도 오른쪽 눈은 안압 조절이 되지 않아 1년 전(2000년)에 수술을 또 받으셨던 분입니다.
수술까지 해야 할 정도였으니, 그보다 한참 전부터 녹내장 치료를 받기 시작하신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압이 높았습니다.
안압 조절이 안되면 시신경이 계속 손상되어 언제 실명할지 모르는 것이 녹내장인지라
안타까운 마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착잡했습니다.
최대한 길게 시력을 유지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수술까지 할 정도가 된 경우에는 참으로 난감합니다.
안압이 잘 조절되다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고 시신경 상태가 더 나빠져서
그 이후로 대학병원에서 오른쪽 눈 한번, 왼쪽 눈 두 번 수술을 더 받으셨습니다.
그러한 노력으로 2011년까지 시력이 0.8 정도로 잘 유지되었었는데,
2012년부터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중심 시야까지 영향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기에 나머지는 안약으로 어떻게든지 버텨보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2012년에 0.2였는데 다행히 이 시력은 2017년까지 잘 유지되었습니다.
2013년에는 오른쪽 눈 각막에 문제가 생겨 각막 이식 수술까지 받으셨지요.
그렇게 잘 버텼었는데 작년 말에 결국 양안 모두 시력을 잃어버리시고 말았습니다.
74세이시고, 건강하시고, 너무나 좋으신 분인데...
후천적으로 실명하신 분에게는 어떠한 말로도 위로할 수가 없습니다.
섣불리 잘못 말했다가는 큰 상처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실명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그 심정을 알 수가 없습니다.
간접적으로라도 알 수 있는 방법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공간에 아주 깜깜한 상태로 놓여져서 걸어가 보는 것입니다.
한 발짝도 제대로 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 한발 떼었다가 무슨 소리가 들리거나 무언가가 느껴진다면 더 이상 발을 옮길 수 없습니다.
가슴은 철렁하고 모든 감각은 예민해집니다.
눈을 떠도 어차피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실명하신 분의 심정은 조금밖에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밝은 곳에 가면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위로를 너무 쉽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로의 말은 아주 아주 심사숙고한 후에 정말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일 년 동안 어떠한 위로의 말씀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실명하신 지 일 년이 지났습니다.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제 앞에서는 평온한 상태를 보여주십니다.
여전히 힘드실 텐데도...
그리고 저에게 항상 감사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겨우 18년밖에 시력을 지켜드리지 못했는데도...
한두 달에 한 번 오시는데, 뵐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픈데,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면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조금의 소리도 낼 수가 없습니다. 제가 그런 줄 아시면 마음 아파하실 것이 뻔하니까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불편하시면 언제든지 오세요" 밖에 없습니다.
"잘 이겨내고 계셔서 참 보기 좋습니다."
누구나 쉽게 하는, 아주 듣기 좋은, 아주 적절한 말처럼 여겨질 수 있는 이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잘 이기고 계신 지 알 수도 없고,
이겨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시고 계실 텐데 '잘 이기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큰 실례이고,
버티기가 힘드신데 이겨내야 한다고 강요하는 말이 될 수도 있고,
보이지 않으신 분에게 '나는 보인다'라고 자랑하는 것이며,
본인의 상태가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분에게 '좋다'라고 말하는 것은 욕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실명한 것으로 고생이 끝났다면 그나마 마음이 덜 아플 것입니다.
여러 번의 눈 수술로 인하여 각막 상태가 좋지 않으셔서, 자꾸 벗겨지고 통증이 심합니다.
통증을 경감시켜드리기 위해 온갖 조치를 취하지만,
완전히 없애드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통증이 심해지다 보면 언젠가는 눈을 제거해야만 할 때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답답해지고,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가 아닌지라 제 눈 앞에서 안 보이면 저는 또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합니다.
이것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랑하는 사람의 본모습입니다.
오늘도 다녀가셨습니다.
각막 이식 수술 후 봉합해 놓은 실이 하나가 끊어져서 이물감이 더 심하셔서.
실은 빼드렸지만,
오늘도 제대로 된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 곳에라도 쓰면 조금 나아질 줄 알았는데,
글이 끝나가는데 나아지지 않네요.
Tip) 녹내장은 조용히 실명할 수 있는 질환입니다.
가족력이 있는지 꼭 알아보시고, 있다면 정기적인 안과 검사를 받으세요.
없어도 40이 넘으면 한 번 정도는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전과 달리 많은 치료 방법이 있어서 최대한 시력을 지킬 수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신 분 중에 본인이나 지인 중 녹내장이 있으시다면,
수술은 신중하게 결정하셔야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안압 조절이 안될 때 수술을 권유하게 되지만,
수술이 시력을 확실하게 지켜준다는 보장이 없고,
자칫 수술로 인하여 다른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수술로 안압 조절이 잘 된다면, 실명을 많이 늦출 수 있다는 것은 예상할 수 있으나
같은 사람을 두고, 수술을 했을 때와 그냥 안약만 넣었을 때를 비교할 수 없기에,
얼마나 늦출 수 있는지, 끝까지 시력을 지켜줄 수 있는지에 대하여
그 누구도 명확한 답변을 할 수가 없습니다.
최대한 예측 가능한 모든 상황을 점검하고 확실한 이득이 있는 지를 꼭 따져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