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글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작세 Jul 19. 2022

도대체 내 뇌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보글보글' 글놀이

"요즘 내 뇌는 왜 이럴까?"


'내일 꼭 가지고 출근해야 하니 잊어버리지 않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그래. 신발 속에 넣어두면 되겠다'

현관에서 내일 아침에야 발이 들어올 것으로 생각하고 방심하고 있던 신발에 발이 아닌 물건을 집어넣습니다. 신발은 좀 황당했겠지만,

그래도 잊어버리면 안 되니 할 수 없죠.

출근해서 보니, 없네요.

신발을 신으면서 옆으로 빼놓았다가 그대로 와버린 거죠.

이런.

퇴근 후에 다시 신발에 넣습니다.

다음날 아침 신발을 신으면서 눈은 물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절대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드디어 가져오기 성공.

건망증은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이니

놀랍지도 않습니다.

아내는 말합니다. 

"그렇게 똑똑하던 당신도..."

뇌세포가 저를 버리는데 제가 무슨 수로 잡겠습니까.


볼 것이 없어 TV 채널을 돌리다가,

날씬하고 예쁜 아이돌들이 춤을 추고 있는 장면에서 손이 멈춥니다.

또 돌리다가,

예쁘고 착하게 보이는 골프 선수가 레슨을 하고 있는 장면에서 넋을 놓습니다.

예전 같으면 심장이 난리가 났을 텐데 조용합니다.

뇌만 작동을 합니다.

어릴 때부터 봐오던 아이들 중에 착하고 아름답게 자란 아이들을 볼 때도 머리가 바쁘게 움직입니다.

"내 며느리 삼으면 좋겠다."

"딱 내 사윗감인데"

뇌도 나이를 먹어가는 게 확실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날마다 낄낄대면서 살고 있다가

어느 날은 세수를 하다가 느닷없이 눈물이 뚝뚝.

맛있는 것을 먹다가 갑자기 눈물이 주룩주룩.

멋진 풍경을 보다가 깊은 한숨이 후우~~~~.

엄마들이 좋아하던 노래가 나올 때는 가슴이 울컥.

"사랑하네"

돌아가시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 임종 전 날,

기운이 없으실 텐데도 힘을 내어 전화기 너머로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고백하신 장모님의 목소리가 떠오를 때는

머리는 정지되고 마음은 답답해지면서 눈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니.

이를 어이할꼬.


잘 지내다가도,

아내가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을 할 때(서로 가끔은 그럴 때가 있죠),

자식들이 서운하게 할 때,

순간 확 올라오는 못된 성질은

뇌의 어느 한 구석에 고이 자리하고 있는 추억에 의해

누그러지니

지난날의 기억이 남아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어제 꿈에, 엄마와 장모님을 봤습니다.

엄마는 장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다녀오시라고 보내드렸더니, 

하루 만에 돌아오셔서 다시 장사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엄마 장사 그만하고 쉬시라고요"라고 말씀을 드렸으나 들은 척도 안 하셨어요.

너무 오랫 세월 고생을 하신 엄마를 쉬게 해드리고 싶었는데.(실제로는 돌아가시기 18년 전에 장사를 접고 손자들을 키우며 사셨습니다)

너무 속이 상해서, 잡곡이 담겨 있는 대야들을 들고 잡곡을 땅에 다 쏟아버리며 울면서 말했습니다.

"제발 장사 좀 그만하세요" 

실제로도 큰 소리로 울었나 봅니다. 

옆에서 자던 아내가 깜짝 놀라 일어나서 울고 있는 저를 깨웠다네요.

얼굴은 흐르는 눈물에 이미 적셔 있었습니다.


장모님께서 어디를 다녀오시면서 쭈쭈바 두 개를 사 오셨어요.

제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서 처가에 가면 항상 아이스크림을 사놓으셨었거든요.

이미 다 녹아있었습니다.

"다 녹았는데요?"

"그래도 맛있어"

한 개는 막내 처남에게 주고, 저는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어제 꿈의 출연진은 아주 다양했습니다.

낚시도 가고, 포커도 치고, 공중 화장실에 갔는데 소변기가 꽉 차서 애 먹고.

기억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입니다.


저는 매일 최소한 일곱 종류 이상의 꿈을 꿉니다.

그중 최소 두세 가지는 기억을 합니다.

이것은 치매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꿈을 꾸지 않고 푹 자는 것이 소원인데 뜻대로 되질 않습니다.

락티움, 멜라토닌을 먹어도 해결이 되지 않아요.


도대체 제 머릿속에는 무엇이 얼마나 들어있기에,

엄마가 출연할 때는 어김없이 울고,

아버지가 출연할 때는 분노가 생겨 악을 쓰거나 분노의 발길질을 해대는지.

그래도 다행히 요즘에는 시험을 보지는 않습니다.

항상 시험에 떨어지는 꿈을 꿨거든요. 그것도 한 문제 차이로.


왜 나의 뇌는 잘 때도 쉬지 않는 걸까요?


망각은 삶에 있어 필요충분조건이 아닐까요?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면 인간은 평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것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누가 건들기만 하면 쾅 터져 버리는 아픈 기억들.(일종의 '방아쇠 효과'죠)

꿈이라는 것으로 형상화되어 잠을 설치게 만드는 것들이 저장되어 있는 뇌의 일부를 잘라낼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러고 싶습니다.


이와 반대로,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우리는 그 기억 덕분에 관계를 유지하고 삶을 이어갈 수가 있죠.

헤어지고 나면 또 보고 싶었던 시절, 힘들었지만 함께였기에 견딜 수 있었던 날들,

보면 방긋 웃어주던 갓난아이, '아빠'라는 말을 그 예쁜 입으로 처음 했던 날, 자라면서 했던 예쁜 짓들,

기대에 부응하며 잘 성장했던 자식들을 생각하며,

매일, 내일도 살아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지금까지 제 뇌에는 온갖 것들이 저장되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좋은 것들만 저장해보려 합니다.

나쁜 것들은 빨리 흘려보내버리고, 좋은 것들은 두고두고 되새겨서.


여러분의 뇌에도 아름다운 기억들만 남아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대문 사진 : 자체 제작^^



아래는 '보글보글 매거진' 로운 님의 글입니다.

https://brunch.co.kr/@psa0508/658




매거진의 이전글 2022년 7월 3주 [글놀이 소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