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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l 20. 2022

일단 제 뇌를 믿어보렵니다.

7월 3주 보글보글 매거진 글놀이
"요즘 내 뇌는 왜 이럴까"

산적해있는 할 일과 숱한 고민들로 인해, '머릿속에 지진이 나는듯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무엇을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하는지, 꼬인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하는지 몰라 멍해졌던 적은 없으신가요? 

도대체 내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있길래 이런 사소한 일 하나도 제대로 해결을 못하나 싶어 스스로를 원망한 적은요? 


"으이구. 대가리에 똥만 찬 인간 같으니라고."

어렸을 적, TV에 나오는 범죄자나 생각 없이 사는듯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어머니가 거침없이 던지던 말입니다. 그 기억이 너무 강렬했던 걸까요? 하던 일을 그르쳤거나 머릿속이 멍해질 때면 그 말은 저를 향해 휘두르는 채찍이 되곤 했습니다.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었길래 제대로 된 생각을 못하는 거야? 똥만 들어찬 거야?"

머릿속이 똥으로 가득 차는 상상을 하며 고개를 격하게 저어 보아도 자신을 향한 더러운 책망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나의 뇌는 무엇으로 가득 차 있을까?

진짜 똥일까? 똥만큼이나 더러운 무엇일까? 쓸데없고 무가치한 것들로 뇌를 채우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래서 20대부터의 저를 돌아보며 뇌구조를 그려보았습니다. 

스무 살부터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한 저의 뇌는 온통 '오빠'였습니다. 그 사람과의 사랑, 결혼이 중요한 화두였지요. 간혹 내 인생의 꿈과 진로를 고민하기도 했으나 결혼, 출산과 동시에 뇌의 중심은 온통 가족으로 채워졌습니다. 



30대도 다르지 않습니다. 가족, 돈, 살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었고 20대 때 느꼈던 우울함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삶이 고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남편과의 갈등, 해본 적 없는 장사에서 오는 스트레스, 어느 것 하나 내 선택과 결정에 따르지 않은 것이 없었기에 누구를 탓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만 치열한 만큼 힘들었던 시절로 기억됩니다. 

40대로 들어서며 제 뇌구조는 지각변동을 일으켰습니다.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며 조금씩 '나'에 집중하기 시작했지요. 여전히 '가족'이 삶의 중심에 있습니다만 저를 행복하게 할 다른 것들이 제 뇌를 채워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우울할 틈이 없는 것이지요.


몇 년 치를 통으로 묶어 뇌구조를 그릴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오늘'에 한정해 그려보면 보입니다. 

많은 고민과 할 일들이 뇌에 가득하지만 행복한 비명처럼 보입니다. 염려했던 것처럼 똥은 보이지 않습니다. 걱정과 분노, 슬픔과 괴로움보다는 오늘 하루, 이번 달, 남은 2022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건설적인 고민들로 가득 찬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읽었던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이라는 책에서, 우리의 뇌는 생각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진화했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한정된 신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경제적 선택의 결과이며 그 경제적 선택을 하는 것이 뇌라고 말이지요.

"뇌의 핵심 임무는 이성이 아니다. 감정도 아니다. 상상도 아니다. 창의성이나 공감도 아니다.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언제 얼마나 필요할지 예측함으로써 가치 있는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해내도록 신체를 제어하는 것, 곧 알로스타시스(몸에서 뭔가 필요할 때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자동으로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를 해내는 것이다."   -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리사 펠트먼 배럿)


매일매일 지진이 나는 것 같던 20,30대의 제 뇌는... 똥만 가득 찬 게 아닌가 싶었던 제 뇌는....

똥을 연료 삼아 가치 있는 움직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었습니다. 송유정이라는 사람의 생존을 위해, 잘 살게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던 것이죠. 건설적인 고민과 행복한 비명으로 가득 찬 매일의 뇌가 모여 굳건히 생존해있는 오늘의 저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쭉... 저는 제 뇌를 믿고 가보렵니다. 


여러분의 뇌는 무엇으로 가득 차 있나요? 




* 매거진의 이전 글, 김장훈 작가님의 < 도대체 내 뇌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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