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을 학원에 들여보내고 아이들의 책가방을 양쪽 어깨에 짊어지고 들어왔다. 손에는 아이가 먹다 만 우유와 간식 등을 고이 들고 말이다. 땀이 흥건하게 흐르고 정신까지 몽롱해진다. 이럴 땐 아이스커피가 필요하다.
캡슐 커피 머신을 켠다. 유리잔에 얼음을 담고 커피 머신 버튼을 누른다.
'가만. 내가 캡슐을 넣었던가?'
설마 캡슐을 안 넣는 초보적인 실수를 했을 리 없다고 믿는다.
'으음, 커피 향기!'
커피 향이 평소보다 약한 것 같지만 커피 색깔은 나쁘지 않다. 물을 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완성한다.
빨리 마시자. 그토록 기다렸던 첫 한 모금. 그런데 이게 무슨 맛이지? 커피 우린 물 맛?
그렇다. 나는 캡슐을 안 넣는 초보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다. 벌써 두 번째다. 얼마 전에도 캡슐을 안 넣고 카페라떼를 만들었던 적이 있다. 이미 사용한 캡슐을 한 번 더 우린 물이 나온 터라 맛이 매우 구리구리했다. 우유가 아까워서 참고 먹으려 했지만 도저히 먹을 수 없어 버렸던 슬픈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늘은 '아이스 커피 우린 물'을 제작하였다.
캡슐 커피를 내리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1. 커피 머신을 켠다. (예열 시간 고려)
2. 컵을 놓는다.
3. 캡슐을 넣는다.
4. 버튼을 누른다.
이 간단한 걸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걸 보니 정신이 빠져도 단단히 빠졌다. 고백하건대 나는 캡슐을 안 넣거나, 캡슐 넣은 걸 까먹어서 또 넣은 적이 있다. 또 컵을 안 받치고 커피를 내린 적도 있다. 서둘러 컵을 갖다 댔지만 이미 흘러 버린 커피를 살릴 수는 없었다. 컵에 든 반만 마실지, 캡슐 하나를 더 쓸지 고민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실수를 되짚어보면 다음에 실수하지 않을 수 있다. 오답노트를 작성하는 것처럼 오늘의 행동을 반추해 본다.
컵에 얼음을 넣고 커피 머신에 올린 후 커피 머신을 켠다.
얼음판에 얼음이 얼마 없으니 얼음을 얼린다. 얼음판에 물을 넣다가 흘렸다. 바닥을 닦는다. 키친타월 다 썼네. 새 키친타월을 꺼낸다.
아 맞다, 키친타월 떨어져서 시켜야 하는구나. 키친타월, 키친타월, 키친타월...
커피 버튼을 누른다. 커피 머신이 예열되는 시간이 있어 바로 나오지 않고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아이들 가방에서 급식 물병과 수저를 꺼낸다. 급식 물병을 씻고 수저는 설거지통에 담근다. 아이들이 먹은 간식 껍데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먹다 만 우유를 버리고 우유갑을 씻어둔다.
인제 진짜 커피 마시며 쉬어야지.
에잇! 커피 맛이 왜 이래?
캡슐을 안 넣었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할 일을 생각하고 순서를 정한다. 어떤 일들 사이에 어떤 일을 끼워 넣어야 시간과 노력이 절약될지 계산한다. 그러나 동시다발적으로 일하다 보면 놓치는 일이 생긴다. 멀티 태스킹의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하다. 커피 캡슐을 넣지 않은 실수는 그리 치명적이지 않으니 이 정도는 가볍게 넘기기로 한다. 자잘한 실수는 멀티 태스킹의 숙명과도 같은 것.
앞으로 모든 일을 중단하고 커피를 내리는 일에만 집중할지, 지금까지처럼 커피를 내리면서 이것저것 할 일을 할지 생각해본다. 아무래도 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때로는 '커피 우린 물' 한 모금을 마시리라. 멀티태스킹의 상처로 잠시나마 정신이 번쩍 들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