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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Jul 22. 2022

지금 당신의 뇌를 꺼내 볼 수 있는 방법

개성 있는 당신의 집에 초대해주세요.


저는 당신의 뇌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당신도 자신의 뇌를 들여다보고 싶으신가요?


이게 무슨 황당한 말이냐고요?


그저 <좌뇌 우뇌 밸런스 육아>라는 ‘육아서’를 써 놓고 뇌과학자 흉내를 낸다고 코웃음을 칠 수도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이 지금 무슨 걱정이 있는지 무얼 궁금해하는지, 또 취미와 관심사가 어떤 것인지 순식간에 맞춰버릴 수 있습니다.


병원에 가서 각종 설문지나 검사를 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심하세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당신의 뇌 안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봐드리겠습니다.


못 믿으시겠어요?


그렇다면 제가 특별히 여기서 제 능력의 비밀을 공개하겠습니다.


듣고 싶으시다면 잠시 당신의 집으로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그런 다음 차 한잔을 제게 내어주시겠어요?


아주 뜨거워서 천천히 식혀야 마실 수 있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 차를 당신의 서재, 그러니까 책이 있는 공간에서 마시고 싶습니다. 거기서 저는 당신 뇌 안의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사진찍고 글쓰는 그녀의 집에 초대된 날


최근 초대받은 한 친구의 집에서 저는 그녀의 투명한 뇌를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식탁 위에 올려진 몇 권의 지금 보는 책들을 살짝 엿보고 서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미니멀리스트로 최소한의 것만을 놓고 사는 그녀지만 책은 어쩔 수 없었는지, 책꽂이에 책을 두 겹씩 겹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서재방은 자신이 현재 가장 설레는 책들로 완벽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책장을 더 늘이고 싶지 않았던 미니멀리스트인 집주인은 서재방 바닥에 돌탑을 쌓듯 여러 군데에 책들을 쌓아 올리고 있었는데 마치 책들의 작은 신전을 세운 것 같은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그날 저 외에 함께 초대받았던 분들은 모두 책과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꽃을 좋아하시는 아름다운 시인님, 글방과 책방을 운영하시는 서점 주인장과 얼마 전 책을 내신 캘리그래피 선생님이 함께 였습니다. 초대해준 집주인은 얼마 전 독립출판으로 사진집을 내었고, 이제 글과 함께 만날 사진이 기대되는 글방 친구입니다. 범접할 수 없는 다정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며 글을 쓰고 있는 친구이지요. 모두 저와 함께 매일 글을 쓰고 나누고 있는 글방의 친구들입니다.


그날 우리는 누군가의 집 서재에서 그 사람을 발견하기를 즐기는 똑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그릇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릇장에서 접시 하나씩 만져보듯 그렇게 조심스럽게 눈으로 책등을 읽어갔습니다. 그러다 반가운 제목을 만나고 탄성을 지르며 꺼내보고는 서로가 함께 본 책들의 취향을 공유하곤 했지요.


그러는 동안 죽은 식빵도 살린다는 토스터기에서 되살아난 빵이 제발 맛 좀 봐달라며 다시 죽기 직전의 상태로 천천히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금방 내려준 커피는 마음에 드는 앤틱 잔에 담긴 채로 아쉽게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빈 거실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재방에 옹기종기 모여 취향과 관심사가 차곡차곡 정리된 그 사람의 '책윈도' 앞에 서있었습니다. 어느 유명 샵의 쇼윈도를 보는 것보다 즐거워하며 시간을 잠시 잊은 듯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시작된 후 점점 더 서재 구경이 즐거워졌습니다. 이제 정말 누군가의 집에 간다면 저는 당신의 뇌를 들여다보고 정확히 그의 취향과 고민을 알아맞혀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 서가의 볼륨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제 능력이 힘을 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아래와 같은 집에 초대받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말씀드리려 합니다.(하지만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초대해주시면…갑니다.)


집사부일체 213회/정재승 교수 편 캡처


바로 책의 양이 너무 방대할 때는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뇌공학자 정재승 교수님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서재를 공개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좌뇌와 우뇌의 구조처럼 책이 정리돼있어서 서재의 책들이 자신의 모든 관심사를 보여준다고 공간을 소개했었지요.


 지적인 호기심이 넘치던 어린 시절부터 문학서적을 읽고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겠다고 마음먹은 그의 이야기에 천재들의 모습은 닮은꼴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습니다.


집을 자신만의 도서관으로 만든 그의 서재 모습에 집집마다 다시 서재 열풍이 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집을 모두 새로 지을 수는 없을 테니 어떡할까요? 아무튼 이런 공간감을 가진 서재를 갖기 위해서 일단 돈을 벌자!라고 하며 돈 걱정으로 넘어갔으려나요?  


칼 라거펠트의 서재 / 토드 셀비 사진


저는 그의 서재를 보았을 때 바로 떠올랐던 집이 있었습니다. 바로 패션계의 거장이자 샤넬, 펜디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서재입니다. 집 6채에 있는 자신의 서재에 25만 권의 장서가 보관되어있었고 실제로 서점의 소유주이기까지 했던 그는 유명한 책 중독자였습니다. 책을 통한 방대한 지적 토대 위에 세워진 자신만의 영감으로 디자이너로서 성공을 거두었던 그의 감각만큼이나 서재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독창적인 디테일이 중요한 그의 패션처럼 서재의 책이 모두 가로로 눕혀진 것이 이곳의 포인트입니다.


그의 서재 사진을 처음 보게 된 것은 2017년 딱 5년 전 7월 대림미술관의 토드 셀비(Todd Selby)의 ‘즐거운 나의 집’ 전시에서였습니다.


대림미술관 토드 셀비 전시 (2017)


작가는 2008년 우연히 블로그에 친구들의 집을 찍은 사진을 업로드하면서 세계적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찍은 개성이 가득 담겨있는 집과 사람들의 사진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과 한 분야의 장인들, 틀에 박혀있지 않은 사상가들이 사는 집은 그의 카메라의 주된 피사체였습니다.


아울러 전시에서 만난 그의 컬러감 넘치는 귀여운 그림들은 그때 당시 6세였던 딸의 마음에 쏙 들었었나 봅니다. 화가가 꿈인 아이는 미술관 바닥에 앉아 자신의 그림으로 느낌을 표현하며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작가의 방을 그대로 대림미술관으로 가져왔던 전시 공간을 보았을 때 그는 상당한 맥시멀 리스트로 보였습니다. 방과 옷, 사진과 그림에서 컬러풀한 자유로움이 느껴졌고 역시 ‘사는 공간은 그 사람과 아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작가의 말을 실감했습니다. 그 집에 가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의 뇌 속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게 알려진 사진이 바로 패션계의 거장 칼 라거펠트의 서재 사진이었습니다. 그는 일반인들 집도 찍고, 스타들의 집도 찍지만 단지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서 찍지는 않았습니다. 집주인이 독특한 개성이 있는 경우 그의 집에는 그 특별함이 녹아있습니다. 그것을 알아본 작가의 사진에 사람들은 큰 반응 보였습니다. 오랫동안 사진전공을 한 전문가가 아닌데도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자신도 개성이 강하기에 타인의 특별한 면을 더 잘 이해하는 눈을 작가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저도 토드 셀비처럼 누군가의 서재에서 그의 머릿속에 숨겨진 취향과 고민, 즐거움을 조심스레 발견해 내는 눈을 더 크게 떠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 보글보글 매거진의 주제는 “요즘 내 뇌는 왜 이럴까?”인데 말입니다.

자기 뇌를 보라는데 나는 남의 뇌를 볼 수 있다는 소리만 해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왜 자기 뇌를 들여다보지 않고 남을 자꾸만 보려고 하는 것일까요?


제 서가에 꽂힌 책들은 과연 저의 어떤 고민과 생각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저를 잘 들여다보고 있는 걸까요?


그 생각을 품고 책장 앞에 서니 제 책들에게도 저에게도 무척 부끄러워졌습니다.


책을 설레는 마음으로 구입하고 다 읽지 못한 채 예쁘게 꽂아둔 책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책꽂이 앞에 서면, 꽂힌 책들만큼 제 고민들과 생각은 분명히 보입니다. 하지만 대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으려 하는 저를 보게 됩니다.


마음속에 분주한 작은 일들로 정신이 흩어져 있어서 인지. 깊이 들어가 헤매어야 하는 핵심 책들의 문을 열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손만 올려둬도 두근두근하게 하는 책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종 방법들과 지식들의 자리만 뇌에 내어주고 진짜로 필요한 제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뇌의 빈자리를 남겨두지 않으려 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머리와 마음을 비우듯 제 서재를 비우고 싶습니다.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지혜를 얻은 채 놓아주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핵심만 남기고 좌뇌 우뇌로 나누듯 몇 권의 책으로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책상과 책꽂이에는 현재 수많은 책들로   채워져 있기만 합니다. 제 머릿속과 똑같이 말입니다.


 언젠가 제 책꽂이 앞에 서신다면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그 책들을 안 읽었거나, 읽었지만 아직 진짜 알고 있지 못합니다. 알아서 꽂혀있는 책이 아니라 알고 싶어서 곁에 두는 책도 있다는 것.


그것은 여러 가지 방으로 만들어져 있는 저의 뇌의 모습입니다. 그 수많은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다는 영원한 호기심을 품는 것으로도 삶에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제 책들을 보며 깨닫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제 뇌 속의 작은 방들의 문이 하나로 열릴 때, 저는 수많은 제 책들을 드디어 치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빈손으로 떠나며 느끼게 되는 깨달음의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못 정리한다는 말?)


그렇다면 이제 자신의 뇌를 들여다볼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서재 앞에 한번 서 보시겠어요?

당신의 뇌 속의 책의 방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나요? 오늘 문을 열고 일단 들어가 볼까요?





+) 덧

초4학년의 뇌는 서가에서 알아보기 힘들군요.

엄마의 뇌 욕구에 따라 꽂혀있을 책꽂이일 확률도 큽니다. 그래서 아이는 말과 글로 소통하며 뇌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살짝 뇌 속을 볼 수 있도록 아이들은 또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네요.

 

엄마의 글을 도와주고 싶다며 옆에서 뚝딱 만든 영상입니다. 이제 종이책으로 누군가의 머릿속을 슬며시 상상해보는 능력은 앞으로 써먹을 일이 없어지게 될까요? 화면 속으로 들어가버린 이야기들. 그래도 다음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재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보글보글 객원 크리에이터 딸의 지원사격




7월 3주 보글보글 글놀이
 “ 내 뇌는 왜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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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의 이전 글, JOO 작가님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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