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 만에 야구를 했다. 코로나 상황이 잠잠해진 틈을 타서한 때 즐겼던 다양한 운동을 했는데, 몇 개월 만에 축구를 했고, 수년 만에 농구도 했으며, 며칠 전에는 오래간만에 야구까지 할 수 있었다.
운동은 보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게 좋다. 하지만, 코로나와 취향 변화 그리고 세월의 영향을 받으면서 오랜 시간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축구나 농구는 가끔 했지만 야구는 캐치볼 말고 제대로 해 볼 기회가 없었다. 유년시절동네야구를 즐기다가 서른 즈음에 고양시 소재 사회인 야구단에 가입하여 2년 정도 취미로 활동했다. 당시 팀 막내였기 때문에 체력과 스피드를 담당했었는데, 무려 십오 년 전 일이다.
세월이 흐른 탓과 급하게 나간 핑계로 복장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후줄근한 추리닝 차림으로 그라운드에 섰다. 청백전 연습경기라는 말에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대부분 프로 선수를 방불케 하는 멋진 유니폼과 선글라스 그리고 각종 장비까지 장착하고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등장했다.
아마추어 운동은 장비빨이라는 진리를 잠시 잊었다. 최근 구기 종목은 멀리하고 매일 달리다 보니 감이 떨어진 것이다. 풋살화에 반바지 차림으로 바람막이 상의 하나만 걸치고 라인업 했는데, 패기 넘치는 이삼십 대 사이에 늙은 뒷방 노인네가 마실 나온 듯한 초라한 형색이었다.
운동만 잘하면 된다고합리화하면서1회 초 수비를 시작했는데, 경험 없던 1루를 담당했다. 사실, 예전 포지션은 3루수였는데, 핫 코너에 섰다가 안면 골절상 등 사고 가능성이 다분하며 오랜만이고 더 이상 3루에서 1루까지 던질 힘도 없었다. 당연히 실력도 형편없었기 때문에 외야수 중에도 공이 거의 오지 않는 우익수를 희망했지만, 주장은 1루수를 맡아달라고 했다.
경기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재미있는 상황이 발생했다. 투아웃에 주자가 가득 찬 상황에서 타자가 친 공이 3루로 향했다. 땅볼을 잡은 3루수는 가까운 3루 베이스를 두고 1루를 향해 공을 던졌다. 먼 거리로 날아가던 공은 1루수 키를 훌쩍 넘겼고, 루상 모든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3점을 헌납했다.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이지만 규칙이 복잡한 야구는 집중하지 않으면 결과가 바로 드러난다. 아웃카운트 또는 볼카운트를 착각하거나 규칙에 따라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할 경우 순간 머릿속은 하얗게 지워진다.
프로경기에서도 자주 일어나며 세계 최고 권위 MLB에서도 간혹 발생한다. 당연히 아마추어 경기에서는비일비재한데, 한 경기 서너 개는 기본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본 헤드 플레이(Bone head play)라고 한다. 정확한 정의는 두뇌의 회전이 기민하지 못한행위라고하는데, 단어를 그대로 놓고 본다면 뇌를 감싸고 있는 뼈, 즉 두개골만 남았다며 조롱하는 말이다.본 헤드 플레이는 착각이나 무지에 의해서 발생한다. 각종 상황을 오감으로 수집한 정보가 뇌에서 다르게 자각하는 경우가 착각이며 수집한 정보를 자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무지라고 할 수 있다.
본 헤드 플레이 없이 잘하는 선수가 대부분이고 가끔은 감탄을 자아내는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 운동 지능이 높다고 평가하는데,기초가 되는 순발력 또는 센스는타고나야 한다.상황인식과 판단능력이재빨라서 뇌에서부터손과 발끝까지 찰나에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천부적인 재능이 없더라도 운동 지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부단한 연습뿐인데, 운동학습이론처럼 동일한 상황에 대해 이미지 트레이닝과 실제 행동 연습을 꾸준하게 반복하면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착각하지 않고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수만 번 연습으로 익힌 능력은 조건 반사적으로 반응하며 결국 복잡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춤을 출 수 있게 해 준다.다만, 개인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수십, 수백 배 이상 연습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프로선수도 아니고 아마추어마저도 아닌 가끔 좋아서 참여하는 운동을 할 때 창의적인 플레이는 고사하고 본 헤드 플레이만 안 했으면 좋겠다. 남들보다 조금 큰 내 머리는 두개골 속 뇌가 지워졌거나뼈로 만 가득 찬 게 아니고 말랑말랑한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된다.내가 세상을 살아내는 기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