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라도 머리를 굴리지 않는 날이 없으니
세상 모든 직업을 속속들이 다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 외에 그 이면에는 수많은 애환과 고충이 들어있으리라는 것쯤은 어느 정도 짐작한다. 은행원들이 셔터 문을 내린 후부터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된다든가 교사가 수업 이외에 하는 여러 가지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장사도 마찬가지다. 내가 일을 하는 편의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사정을 거의 알지 못한다. 먼 옛날 편의점 업계가 최전성기를 구가하며 바닥에 있는 돈을 갈고리로 긁어모으던 시절처럼 풀타임 근무자를 세워 놓고 사장이란 작자는 하루 한 번 금고에 쌓인 돈만 세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지만 그저 상품 보충 잘하고 오는 손님에게 상품만 팔면 끝나는 것으로 아는 분들이 여전히 많은 것으로 안다.
미리 말하지만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할 기본적인 업무일 뿐이고 그 외에 엄청난 강도의 두뇌싸움이 수시로 벌어지는 곳이 편의점이라 말하고 싶다. 편의점 노동을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으로 나누자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육체노동에 할애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신노동이다.
오늘은 그중에서 편의점 업계 정신노동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상품 발주에 대한 얘기를 잠깐 해볼까 한다. 발주라 함은 쉽게 말해 필요한 상품을 주문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게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과 실수는 곧 매출, 더 나아가 수익과 직결되는 거라 매일 아침마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첫 번째, 데이터 분석이다. 물론 본사 프로그램을 통해 웬만한 데이터는 모두 제공을 받고 그걸 참고 삼아 하긴 하지만 그래 봤자 컴퓨터가 계산해서 내놓는 단순한 수치라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2주 평균 데이터를 제공받았을 때 어떤 상품은 한 사람이 어느 날 14개를 한꺼번에 구매했고, 다른 상품은 14명의 고객이 매일 하나씩 구매했다고 치자. 전산상으로는 두 상품 모두 동일하게 일평균 판매 숫자가 1로 잡히고 A군 상품으로 분류되지만 엄밀히 따지면 전자는 A군 상품이 아닐 확률이 높다.
이럴 경우 프로그램에서 권장하는 수치대로 발주를 할 경우에는 악성 재고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게 만약 유통기한이 짧은 신선식품이라면 며칠 만에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쓴맛을 보게 되기도 한다. 상품 발주를 할 때엔 1차적으로 이 점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서 해야 한다.
두 번째, 매익률에 관한 얘기다. 매익률이란 상품 하나를 팔았을 때 내 손에 쥐는 비율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가격이 100원이고 매익률 30% 짜리인 상품이 있다면 그 상품을 팔았을 때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은 30원이 된다는 뜻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비슷한 유형의 상품이 있고 매익률이 차이가 난다면 매익률이 높은 상품을 도입하는 게 이익이다.
사실, 단품으로만 보자면 이게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지만 이런 각각의 상품들이 수천 개 정도 모였다고 가정하고 결과를 산출하면 엄청난 차이가 난다. 세부 조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두 점포의 월 매출이 5천만 원이라 봤을 때 평균 매익률이 29%인 점포와 매익률이 30%인 점포를 비교하면 그 1% 차이가 20만 원 정도의 수익 차이를 가져온다. 우리 점포 같은 경우는 유사 상권, 비슷한 매출의 점포와 비교했을 때 약 4% 정도 높은 편이다. 매일 꾸준히 단품을 관리하는 게 얼마나 큰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 번째는 원가 DC와 장려금, 또는 지원금에 관한 것이다. 주기적으로 본사 물류 센터에서는 같은 상품이라도 원가 할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생산자와의 협의를 통하거나 악성 재고를 없애기 위한 방편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이벤트인데 이 또한 계산을 잘해야 한다. 얼마 만에 재고 소진이 가능할지 철저한 계산을 해서 발주를 해야 하고 장려금이나 지원금이 있는 상품은 우리 상권에서 판매가 가능한 상품인지를 판단하고 도입해야 한다.
네 번째, 신상품의 도입 여부이다. 편의점이란 곳은 한정된 공간에서 효과를 극대화해야 하는 업종이다. 매주 2~300개 정도의 신상품이 쏟아지는 현실에서 옥석을 가려내 주문을 하고 기존에 매대에 진열되어 있던 상품을 철수시키는 일련의 행위들 또한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롱런하는 상품이 드문 최근의 현실에서는 반짝 인기를 끄는 시점에 맞춰 도입을 하고 빠른 시일 내에 모든 재고를 소진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최신 트렌드를 잘 알아야 한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 PPL 상품은 무엇인지 체크도 해야 하고 SNS를 통해 핫한 상품이 뭔지도 알아야 한다.
위에 열거한 업무 외에도 틈나는 대로 본사 전산망을 통해 각종 데이터를 취합하여 연구하고 분석을 해야 하는데 매일 아침마다 이런 일들에 서너 시간 정도 투자하면 한동안 눈앞에는 수많은 숫자와 그래프의 잔상이 남고 머리는 머리대로 새하얗게 백지상태가 되곤 한다.
이렇게 22년이란 세월을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 계산과 판단, 결정에 쏟아붓다 보니 최근 들어 뇌가 많이 망가졌음을 느낄 때가 있다. 젊은 시절이었다면 2시간 정도면 끝날 전산 업무시간이 점점 늘어가는 것도 그렇고 한 번씩 믹스 커피를 탈 때 포장을 뜯어 가루는 쓰레기통에 붓고 포장지는 텀블러에 넣는 횟수가 점점 많아질 때면 머리와 손발이 따로 노는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한 번은 마트에서 장을 본 후 냉동실에 냉동식품과 함께 휴대폰을 넣었다가 휴대폰을 분실했다고 난리를 피운 적도 있고 멀쩡히 휴대폰으로 SNS를 하면서도 전화기를 찾아다닌 적도 있다. 행여 현대판 고려장을 당할 것이 걱정되어 아직까지는 가족에게 비밀로 하고 있지만 언젠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가족들의 충격이 얼마나 클까 싶어 걱정이 앞선다.
나름 총명했던 내가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나이를 먹은 탓도 있겠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뇌를 혹사시킨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 생각한다. 하루 24시간 중 13시간을 근무하고 그중의 1/3 가량을 머리 굴리는 데 쓰는 이 생활은 언제쯤 그만둘 수 있을는지 하루빨리 내 뇌에게 휴식을 주고 싶을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저희 점포는 4개월에 한 번 재고조사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김밥, 샌드위치, 빵, 유제품 등등 신선식품의 폐기 금액이 나옵니다. 4개월 동안 유통기한 내에 미처 팔지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무려 200만 원 가까이 됩니다. 한 달에 50만 원씩 쓰레기통에 버리는 셈이 되지요. 계절, 날씨, 기온, 주변 이슈 등등을 고려하고 온갖 머리를 굴려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왜 매일 아침마다 눈이 침침해지고 머리에 쥐가 날 때까지 분석하고 계산을 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