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웬 Oct 05. 2022

너희들, 배가 불렀구나

이러니 내가 꼰대 소리를 듣지

딸아이와 아내가 연이어 코로나 확진이 된 이후 모처럼 주말에 바람을 쐬러 나가는 길이었다. 차 안에서 아내가 뜬금없이 딸아이에게 "쩡아, 너도 동전받는 게 부끄러워?"라고 물었다. 무슨 말인가 물어보니 요즘 청소년들은 버스를 탈 때 거스름돈으로 동전받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기사를 봤다는 것이다. 그런 문화(?)가 생긴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새삼스럽게 왜 그러나 싶어 관련 기사(아래 링크 참고)를 읽어 보았다.


관련기사 클릭


기사를 읽다 보니 오래전 내가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몇 년 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둘이 나란히 들어와 사이좋게 같은 삼각김밥을 하나씩 구매하고 결제를 할 때의 일이다. 1,400원짜리 김밥을 사며 각각 2천 원을 낸 아이들은 할인카드와 적립카드를 내밀며 할인과 적립을 했고 5% 할인을 해서 70원씩 받아간 아이들은 시식대에 나란히 앉아 김밥을 먹었다. 


얼마 후 다 먹은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날 무렵 쓰레기통을 비우기 위해 시식대 쪽으로 가는 내 눈에 띈 것은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동전들이었다. 소지품을 챙기는 아이들을 보며 당연히 알아서 챙기겠거니 생각하고 하던 일을 하려는데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전을 그 자리에 두고 문을 나섰다. 급히 아이들을 불러 돈을 그냥 두고 가면 어떡하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맹랑했다.

"그거, 아저씨 그냥 가지세요."


애써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할인이며 적립까지 하는 그 알뜰함은 온 데 간데 없이 거금 140원을 버리다시피 하는 모양새가 너무 어이없어서 적립한 포인트라고 해봐야 겨우 14원이고 보유하고 있는 통신사 포인트를 써가면서까지 할인받은 70원은 왜 챙기지 않냐고 되물었더니 갖고 다녀봐야 무겁기만 하고 쓸데도 없는 걸 왜 챙기냐고 반문했다. 할 말을 잃어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두고 아이들은 그대로 가게 문을 나섰다.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적립한 금액의 10배나 되는 돈을 버리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버릴 돈을 왜 할인까지 받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할인받은 그 금액의 절반을 내가 부담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 리 없겠지만 그렇게 할 바에야 차라리 제 돈 다 주고 사 먹고 차후에 다른 곳에서 크게 할인을 받을 때를 생각한다면 본인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오히려 나을 텐데. 


언젠가 한 번은 친구에게 이 일을 얘기했더니 내가 통신사 포인트의 절반을 부담하는 게 불쌍해서 통 크게 전액을 돌려준 것으로 좋게 좋게 생각하라며 웃었다. 멀쩡히 눈앞에 놓여 있는 실물 자산을 두고 언제 쓸지도 모를 가상 자산과도 같은 포인트 적립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내게 또 다른 친구는 그런 얘기를 했다. 


"그게 말이지. 아이들 입장에선 눈앞에 있는 귀찮은 돈 몇 푼보다는 휴대폰에 차곡차곡 쌓이는 숫자가 더 크게 느껴지는 거 아닐까? 어릴 때부터 온라인상에서 게임이나 쇼핑몰 포인트에 익숙해진 애들에게 쓸모도 없는 동전이 귀찮게 여겨지는 건 당연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적어도 동전을 갖고 다니다가 저금통에 넣는 행위보다는 휴대폰 화면에 자동으로 쌓이고 올라가는 숫자를 보는 게 쉽잖아."


물론 물가가 상승하여 10원짜리 동전은 갖고 있어 봐야 쓸 곳이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환경에다가 현금보다는 카드 사용이 보편화된 현실까지 더해져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자면 이해를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렇지만 귀찮다고, 갖고 다니기 무겁다고, 넣을 데가 없어서,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부끄러워서라는 이유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굳이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을 끌어오면서까지 적은 돈의 소중함과 가치를 설파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아이들이 하나만 생각하는 단순함에서는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전을 갖고 다니기 귀찮고 힘들면 포인트로 적립을 할 수도 있고 카운터에 놓인 저금통에 넣어서 기부를 하는 등 다른 방안도 있는데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가거나 심지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나들이를 다녀온 후 딸아이에게 이런 얘기들을 늘어놓자 딸아이는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면서도 밖에 나가서는 절대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은근슬쩍 꼰대 기질이 있는 아빠가 확실하게 꼰대 인증을 받는 것은 보고 싶지가 않다는 말과 함께.


여전히 우리 가게를 찾는 아이들 중에 동전을 버리고 가는 아이들이 있다. 너무 자주 봐서 익숙해졌는지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며 따로 챙긴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아 저금통에 넣은 동전들을 연말마다 지역 복지관에 기부를 한다. 일정하진 않지만 평균적으로 10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금액이니 적은 금액은 아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쓰여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매번 동전을 챙길 때마다 씁쓸함은 감출 길이 없다.


'야 이놈들아. 예전에 과자 한 봉지에 10원, 20원 하던 시절이 있었어. 너희들이 그걸 알기나 해?'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이 계속 입에서 맴돈다. 이러니 어딜 가도 꼰대 소리를 듣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