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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세 Dec 09. 2020

울지 말라는 사람보다,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기억나지 않는 기억의 재구성

ㅇ 울면서 태어나다

추운 겨울이지만, 아궁이를 활짝 열어 놓아 방안은 펄펄 끓고 있다.

아기를 밀어내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느라 힘이 다 빠져가는 산모의 온몸은 

땀으로 점점 범벅이 되어간다.

아궁이 위에 얹어진 솥에서는 물이 용솟음을 치며 미역을 기다리고 있다.

1965년 1월 16일. 낮 한 시경.

산파가 갓 태어난 아기를 물구나무 세워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치자

응애라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사내아이는 자신이 세상에 나왔음을 알린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 외동 댁은 좋아불겄네. 고로코롬 갖고자픈 아들을 낳아부렀응께 ”

이 집의 가장은 외아들이나 다름없었고, 슬하에는 열두 살짜리 딸 하나만 있었기에 

11년 만에 낳은 아기, 그것도 그토록 기다리던 고추를 달고 나온 아기를 보며

모여든 모든 사람들이 축하의 말을 건네느라 정신이 없다.

산파는 아기를 받아 탯줄을 자르고, 닦아서 엄마 옆에 눕혀 주며 의기양양하다. 

마치 자신이 아들을 점지한 것처럼.

아기를 낳느라 너무도 힘이 들었을 산모도 아기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막 세상에 나온 사내 아기는 우느라 정신이 없다.

너무나 서럽게 울었건만 그 어느 누구도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우는 모습을 보며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다.

아기는 도대체 뭐가 그리 슬퍼서 즐거움에 함께 하지 못하고 울어 대는지.

아무리 멈추려고 해도 멈춰지지 않은 그 울음의 의미를, 당시에는 몰랐지만

자라면서 알게 되었다.

아기는 뱃속에서부터 너무 심한 고통을 당했고, 

그 고통을 이겨내고 드디어 살아서 세상에 나왔다는 안도의 울음이었다.

엄마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사라져 버렸을 위기에서 벗어나 

드디어 엄마를 보게 되었다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ㅇ 몸이 형성되기 전부터 당한 시련

아버지는 7년 반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소설 태백산맥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6.25 당시에는 공산당이 무엇인지도 모른 체 

오직 가족을 살리기 위해 가족 중 누군가가 공산당 가입을 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서자였다. 

당연히 서자인 아버지에게 공산당에 가입하라는 강요가 빗발쳤다.

이 강요를 이겨내기에는 너무 힘이 없던 아버지는 입당 서류에 지장을 찍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고, 군대까지 다녀왔건만, 대대적인 색출에 아버지는 결국 감옥에 가고 말았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

엄마가 즐겨 부르시던 노래이다. 

당시의 엄마 심정을 정확하게 표현해 놓은 노래. 

엄마와 같은 심정으로 함께 울며 이 노래를 들었던 많은 엄마들이 있었다.


이것 외에 다른 이유가 또 있었는지, 바로 위 누나와 내가 11살 차이가 난다.

감옥에서 나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임신을 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아버지는 엄마가 자신의 씨로 임신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날마다 싸움이 일어났다.


“ 대체 어떤 놈하고 놀아나서 얘를 가진 것이여 ”

“ 내가 놀아나긴 누구랑 놀아났다고 난리 랑가”

“ 그러면 내 씨란 말여?”

“ 당신 씨지 그럼 누구 씨여”

“ 못 믿것어.”

“ 그렇게 못 믿것으면 내가 지우믄 되제 ”

“ 지우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 부러 ”


난, 뱃속에 있어서 어떤 말을 하며 어떻게 살벌하게 싸웠는지를 알지 못하고,

물어볼 엄마는 지금 내 곁에 없으시고, 

이 상황을 날마다 겪어야 했던 누나 말에 의하면,

날마다 싸워서 집에 있고 싶지가 않았다고 하니까, 얼마나 살벌했는지는 짐작이 간다.     

결국 엄마는 유산시키는 한약을 조제해서 무려 한 달을 먹었다.

생기자마자 나를 죽이려는 약과 투쟁을 해야 했으니 이 얼마나 비참한 운명이라는 말인가.

입으로 먹이면 뱉어내기라도 하련만

탯줄을 타고 들어오는 약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다행인 것은 입으로 먹지 않으니까 쓴 맛은 보지 않았다는 것.

오직 약에 저항하는 것 외에는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지 살아야 했다. 기어코 살아나가서 내가 누구 자식인지 증명해야만 했다.


울고 싶어도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다.  엄마와 누나는 날마다 울었을 것 같다.

엄마와 누나는 나보다 먼저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었으니까.

나 때문에. 내가 엄마 뱃속에 만들어진 것 때문에,

아무 잘못도 없이 엄마와 누나는 하염없이 울었을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저항을 하였지만 점점 힘이 떨어져 '이제 영락없이 이대로 사라져 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있을 때 이상하게도 약이 흘러들어오지 않았다.

엄마가 약을 먹어버렸다는 사실을 안 아버지가 난리가 난 것이다.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노발대발할 때는 언제고,

자기 자식 아니니까 없애버리겠다는데 도대체 왜 성질을 내는 것인지.

결국, 약은 끊겼고,

이 끈질긴 목숨은 끊어지지 않고 생을 이어갈 수 있었다.

생명이 끊어 질만큼의 약을 복용했음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내어

아무런 기형적인 모습도 가지지 않고(모습은 기형적이지 않았으나, 속은 곯았을 것 같다) 

너무나 복스럽고 예쁘게 태어났다.

엄마의 표현대로라면 백옥같이 토실토실하고 태어날 때부터 오뚝 선 코를 가진 잘생긴 아들이 태어났던 것이다.      

태어날 때 그토록 서럽게 울었던 이유 중의 또 하나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온갖 역경과 죽을 고비를 넘겨 세상으로 나왔으니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을 것인가.

그 어느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감격이었다.     

엄마의 뱃속에서 그 독한 약을 먹었던 것이 훗날 큰 이득을 볼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세상사 새옹지마라는 것을 난 일찍이 깨닫게 된 것 같다.    

 

* 뒤집어 보기 : 

엄마는 잠깐 동안은 나를 지우려 하셨지만, 9개월 동안은 엄청난 역경을  딛고 나를 낳아주셨다.  

내가 나온 것이 기적이라고 여길 정도로 약을 드셨고 거의 매일을 싸우다시피 하시고, 

몸과 맘이 상하셨을 테니... 

나는 엄마의 고통, 엄마의 눈물을 함께 하지 못했었다.


엄마께서 잘 견뎌주신 덕분에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건강하게 태어났다.

만약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볼 때, 

내 부모님의 삶은 너무 힘들고 팍팍했을 것이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평생을 고생만 하다가 인생의 재미를 모른 체 돌아가셨을 것이다. 

최소한 내가 태어남으로 인해 엄마의 삶은 윤택해졌다. 

빚더미에 깔려 있었는데 그 빚을 다 해결했고,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부모님의 생활을 내가 다 감당했으니까.

게다가 그토록 아들을 원했던 엄마에게 아들 손자 둘을, 

'아들 아들' 했던 엄마가 아들 손자보다도 더 예뻐했던 손녀를 낳아드렸으니까.


엄마는 유언장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 말 잘 듣고 잘 자라주어서 감사하다고.’

온갖 역경을 잘 버티고 낳아 주신 엄마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함께 울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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