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Day 4그라나다_01
그라나다로 이동하는 날이다. 10시 40분 비행기.
ISTJ답게 아무리 늦게 잤어도, 일찌감치 일어나 씻고 짐을 챙겨서, 7시도 안되서 호텔을 나선다. 공항버스를 탈 카탈루냐 광장의 정류장 위치도 이미 완벽하게(?) 파악해놨다. 터미널1로 가야하기 때문에 공항버스는 A1.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오던 밤에 왕복승차권을 사놨기 때문에 버스표도 준비완료.
공항버스에 타고 보니, 7시가 약간 넘었다. 버스 아래쪽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짐칸에 트렁크를 넣고 자리에 앉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탄다. 물론, 한국 사람들도 있다. 한 가족이 눈길을 끌었는데, 두 딸과 함께 여행하는 부부였다. 딸들이 적어도 고등학생 이상으로 보여서 부부의 나이가 우리 나이대가 아닐까 싶다. 모두 비슷하게 생긴 일가족. 특히 딸들이 아버지를 닮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상당히 꼼꼼한 성격인 듯했다. 약간 늦게 타서 트렁크를 넣을 공간이 부족했는데, 테트리스를 맞추듯 세웠다 눕혔다 돌렸다를 반복하며 어떻게든 정해진 공간에 짐을 넣으려 노력했다. 그리고도 남은 가족들의 트렁크와 배낭은 한데 모아 버스가 움직일 때 여기저기 밀리지 않도록 단속을 하는 모습이었다. 미소가 지어지며, 왠지 같은 비행기로 그라나다에 함께 갈 듯. 어쨌거나 ‘즐거운 가족여행 되세요~’
아침 일찍이라 길도 막히지 않아 7시 반을 약간 넘어 공항에 도착했다. 그래도 부엘링 체크인 카운터에는 이미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줄 서기 싫어서 셀프 체크인을 시도했는데, 기계고장. 하는 수 없이 수동 체크인 줄로 갔다.
우리나라 항공권은 20kg내의 캐리어(수트케이스) 하나는 추가 비용없이 수하물로 부칠 수 있는 데 반해, 부엘링 항공권의 기본옵션은 부치는 짐이 없는 경우였다. 만약 수하물로 부치려면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 비용이 만만찮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기내로 가지고 타려고 온갖 짐을 한껏 몰아넣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탑승하기 전에 승무원이 보고 너무 크거나 무거워 보이면 무게를 재서 다시 비용을 물리는 경우도 있었다. 복불복이라고 해야 하나.
항공권을 살 때, 짐을 부치는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 데, 써 있는 설명에 따르면 같은 짐을 탑승 전에 무게를 재서 추가비용을 부담하고 부치는 경우보다 50%가 싸단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옵션을 선택해서 예매를 했다.
짐을 부치고 보안검색을 통과한 후 게이트쪽으로 이동. 시간이 일러서 아직 어느 게이트인지 정해지지 않아, 아침 식사나 간단히 하고 면세점을 둘러보기로 했다.
EAT. 카페테리아 이름이 ‘EAT.’다. 그래 먹자.
난 이베리아식 햄치즈샌드위치, 에그타르트 그리고 맥주를 아내는 치아바타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켰다.
“아침부터 무슨 맥주?”
“여기는 스페인이야. 물보다는 맥주, 클라라, 상그리아, 와인을 마셔야 하는 스페인!”
“아, 네~”
이미 아내도 스페인화 되어 있었다. 커피라 교환이 안되서 할 수 없이 마시는 것이리라.그런데, 아내의 치아바타가 제대로 데워지지 않아 치즈가 녹지 않았다. 당연히 맛이 없지. 반 이상 남겼다. 맥주만 있었어도. 그렇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러 온 게 아니야. 여행의 즐거움을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알코올 농도가 항상 유지되어야 해!!
간단한 식사와 음주 후 공항 면세점을 둘러봤지만, 바르셀로나 공항 면세점도 별 게 없다. 비싸기도 했지만, 일단 구매욕을 불러일으키는 품목이 없었다. 한바퀴 돌다가 샐러드, 샌드위치, 커피 등을 파는 다른 카페테리아에 들어갔다. 카페콘레체를 한잔 시켜 시간을 보냈다. 카페콘레. 맛은 있지만, 역시 내 스타일은 아니다. 적어도 스페인에 있는 동안에는...
10시 즈음 나와보니 게이트가 결정되어 전광판에 표시되고 있었다. 자, 게이트로 가자.
하하하. 한국사람들이 가득. 그라나다에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이리도 많을 줄이야. 아침 공항버스에서 봤던 그 가족도 와 있다. (당연한가?) 가우디 투어때 그 사람들 아닐까? 물론, 다들 서로 완전히 모르는 척, 한국어가 안들리는 듯 행동한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재밌다.
탑승을 하고 1시간 40분을 날아 그라나다 공항에 도착했다.
올라! 그라나다!
짐을 찾아 나오니 공항버스(Alsa버스) 타는 곳이 보인다. 사람들이 벌써 대기를 하고 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건데, 참 재빠른 사람들이 많다. 그라나다 공항에 도착하는 항공편이 많지 않아, 공항버스도 항공기의 도착시간에 맞춰 운행을 하고 놓치면 택시를 타거나 다음 비행기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걸까?
줄을 서 있다가 버스 아래쪽에 짐을 넣고 탑승시작. 그런데, 정말 맨 뒤 몇 명은 자리가 없어서 버스에 타지 못했다! 아, 이런 일이 진짜 있구나. 우리도 조금 늦었으면, 한시간 이상 기다릴 뻔. 다행이다. 물론, 기다리기보다 비용이 좀 더 들어도 택시를 탔겠지만 말이다. 그라나다 공항에서 그라나다 시내의 숙소근처 정류장(Granada. G via Colon.catedral )까지는 대략 50분이 걸렸다.
정류장에서 숙소까지는 도보로 5분거리. 생각했던 대로 숙소위치가 좋았다.
숙소는 아파트형이라 거실과 주방도 있단다. 바로 앞은 누에바 광장이었다. 위치가 예술이다.
창 밖으로 누에바 광장이 훤히 보인다. 오호!
그리고, 아파트형 숙소라 조리기구와 더불어 세탁기까지 있다. 그러지 않아도 내의와 옷을 최소화해서 가져왔는데 잘되었다. 당장 세탁시작!
밖으로 나와 슬슬 산책하며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았다. 바르셀로나의 햇볕도 강했지만, 그라나다의 태양은 더 장난이 아니다. 지금은 9월말이다. 그럼에도 선글라스 없이 움직이기 힘든 태양이라니. 물론, 습기가 없어서 한국의 여름과는 성격이 좀 다르지만, 대단한 태양이다. 태양의 나라, 정열의 스페인! 말 그대로다.
몇 군데 찾아 돌아다니다가 결국 누에바 광장으로 돌아와 찾아낸 식당, La Espera.시간이 시간인지라 빈테이블이 보인다. 언뜻보면 섹스앤시티의 미스터 빅 같이 생긴 선 굵은 사람이 주인장인지,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는다. 친절하기도 하고 명랑한 성격의 기분 좋은 사람이다.
맥주, 클라라, 돼지고기와 감자튀김(carrillada en salsa라는 메뉴였는 데, 웨지감자를 함께 줬다.)을 시켰다. 그런데, 맥주와 클라라를 먼저 주면서 생선튀김을 함께 준다. 이거 뭐지? 우리 이거 안시켰는데? 공짜란다. 그라나다에선 맥주를 시키면 타파스를 무료로 준다더니, 이게 그거였다. 마치 가정식 백반집에서 처음 깔아주는 반찬 중 계란말이나 소시지부침 같은 느낌이랄까. 한두개 집어 먹으며 본 메뉴를 기다리듯, 여긴 타파스를 이렇게 주는 것 같다. 어쨌거나 다른 지역에선 모두 돈을 받는 건데, 여긴 그냥 주는 것이니 그라나다에 대한 좋은 인상을 주는 데 아주 효과적인 관행 아닐까 싶다. ‘환대’받는 것 같잖아.
맥주 한 잔을 다 마시고 나니, 본 메뉴인 돼지고기와 감자튀김이 나온다. 오, 맛있다. 특히 웨지감자튀김이 감동이었다. 스페인은 감자가 맛있나? 찾아보니 스페인 감자가 맛있단다. 하여간 맛있었다. 맥주와도 근사하게 어울리는 감자튀김. 맥주 한 잔 더!
창밖으로 보이는 누에바 광장과 그라나다 관광열차에서 내리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바르셀로나와는 조금 다른 관광지의 느낌을 확 준다. 기분이 아주 느긋해지는 동네다. 시원한 맥주가 배경화면 같은 그런 동네.
식사 후 그냥 좀 걸었다.
조금 걷다가, 계속 아무 목적 없이 걷기는 좀 거시기해서 내일 아침과 알함브라 궁전투어 때 먹을 것을 사러가자며 슈퍼마켓을 검색했다. 엘 코르테 잉글레스라는 쇼핑몰의 지하가 슈퍼마켓이다. 멀지도 않았다. 가자!
가는 동안 그라나다 시내 구경을 했다. 바르셀로나와 건물의 모양 자체가 좀 다른 듯.
재밌는 광경은 버스가 아주 좁은 거리를 아주 잘 지나다니고 있었다. 운전기사분들이 운전을 아주 잘한다. 나 같으면 엄두 내기 쉽지 않을 거리를, 한번도 아니고 노선버스들이 다니고 있다. 허허.
한가지 더. 가로수가 오렌지나무네? 오렌지 원액이 들어간 환타에 이어, 스페인의 오렌지 사랑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엘 코르테 잉글레스 쇼핑몰에 도착. 1층부터 위로는 쇼핑몰이고 지하가 슈퍼마켓이었다. 우리의 오랜 습관이랄까. 어디론가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시장이나 마트에 가본다. 같은 이마트라도 서울의 이마트와 지방의 이마트는 비슷하면서도 지역의 특색이 있다. 그런 차이를 살펴보는 것도 은근 재미가 있다. 엘 코르테 잉글레스 슈퍼마켓도 느낌은 스페인 그라나다의 이마트 식품관 같은 느낌? 특색이라면 신선식품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와인 생산이 많은 나라답게 와인 코너도 다양하고 많은 종류가 비치되어 있었다. 사과, 맥주, 스타벅스 커피, 물, 초콜릿, 그리고 와인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가 위치한 누에바 광장 근처는 레스토랑과 바가 밀집되어 있었다. 갈만한 식당이 많았다. 굳이 검색하지 않고, 그냥 별 생각없이 걸어보다 맘에 드는 식당에 앉았다. 더위도 좀 가셨길래 안쪽 말고 바깥쪽 자리에 앉았다.
카프레제 샐러드, 피자, 카바 한병을 시켰다. 우리 테이블 담당 여종업원이 명찰을 차고 있다. 이름이 소피아. 저녁 손님들이 몰려들어 바쁜 가운데도 미소지으며 친절하다. 낮에 들렸던 식당도 그랬지만, 바르셀로나로나 보다 더 여유있다. 관광객들이 주로 오는 곳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좋은 게 좋은 거지.
해 저문 길 거리 파티오에 앉아, 주위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쓰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식사하기. 은근 매력있다. 맛있는 카바(스파클링와인) 두어 잔을 하고 나니, 이런 저런 이야기가 절로 나온다. 주위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이라는 사실도 뭔가 더 진솔한(?) 대화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바르셀로나에선 여행에 집중했다면, 오늘은 한국에 놓고 온 생활이나 가족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해결책을 도출하기보다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좀 풀어지는 것 같다. 이것 또한 여행이 주는 선물 중 하나겠지.
9시가 넘어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서, 맥주 한잔 더. 피로가 밀려든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새벽부터 움직인 긴 하루였다.
창 밖에 보이는 아직 불야성의 누에보 광장을 좀 구경하다 잠자리에 들기로 한다. 내일은 그라나다 여행의 하이라이트 알함브라궁전이 기다리고 있다. 아침 일찍부터 많이 걸어야 하니, 체력을 비축해야지.
4일차 밤이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