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은 회사의 헌법이다.
스타트업 ㈜플라시보의 CEO 브라이언 최는 며칠 전 함께 회사를 창업하고 지금껏 동거 동락해 왔던 임원 중 한사람이 회사를 떠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고생을 같이 해왔던 사이인지라 그 임원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도 사주고, 퇴직금도 후하게 챙겨주려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공인회계사인 선배가 정관에 주식 양도나 임원 퇴직금 관련규정이 있냐고 묻는다. ‘정관? 왜 여기서 정관이 나오지? 법인 설립할 때 정관이 꼭 있어야 한다고 해서, 어디서인가 얻은 템플릿에 회사 이름과 주식수 등 몇 가지만 고쳐서 공증을 받아 제출했었는데...’ 브라이언 최는 어리둥절했다.
주식회사에겐 회사의 법, 즉 정관이 필수적이다. 주식회사는 자연인과 다른 별개의 법인격체다. 이는 주식회사의 주주가 한사람인 1 인 주식회사인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등기소에서 법인 설립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법인설립을 하기 위해서는 법인의 정관을 작성하여 제출하여야 한다. 정관 없이는 법인 등기 신청 자체가 안된다.
정관은 회사의 조직과 활동에 관한 기본규칙을 정한 서면으로서 최고 의결기관인 주주총회, 업무집행기관인 이사회나 대표이사 등에 관한 사향을 정하게 된다. 정관은 회사의 제반 규정 중에서도 최상위의 기본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의 목적, 상호, 회사가 발행할 주식, 주주총회, 임원 및 이사회에 관한 규정 등 주식회사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사항들을 회사 내부의 규정으로서 미리 정하여 두는 것이다. 상법상으로 공증인의 공증을 받지 않은 정관은 효력이 없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정관에 반드시 기재되어야 할 사항이 정해져 있다. 이들 사항은 하나라도 누락되면 정관 자체가 무효이므로 주의를 요한다.
상법 제289조(정관의 작성, 절대적 기재사항)
①발기인은 정관을 작성하여 다음의 사항을 적고 각 발기인이 기명날인 또는 서명하여야 한다.
1. 목적
2. 상호
3. 회사가 발행할 주식의 총수
4. 액면주식을 발행하는 경우 1주의 금액
5. 회사의 설립 시에 발행하는 주식의 총수
6. 본점의 소재지
7. 회사가 공고를 하는 방법
8. 발기인의 성명ㆍ주민등록번호 및 주소
물론 정관을 회사가 문을 닫을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야 하는 건 아니다. 정관은 주주총회의 특별결의(상법 제433조, 제434조)를 통해 변경될 수 있다. 하지만, 정관이 처음부터 잘 규정되어야 추후 회사의 업무가 절차적 하자 없이 진행될 수 있으므로, 인터넷에서 떠도는 샘플을 사용해서 대충 만들면 곤란하다. 정관의 조항을 하나하나 잘 읽어보고 각 규정을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다.
정관의 기재사항은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지만, 스타트업의 경우 신경을 써서 정관에 규정할 사항들이 몇 가지 있다.
주식회사에서는 원칙적으로 주식의 양도가 자유롭게 허용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지분양도를 통해 제3자가 주주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정관에 주식의 양도에 대해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해 놓을 수 있다.
상법 제335조(주식의 양도성)
① 주식은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다. 다만. 회사는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발행하는 주식의 양도에 관하여 이사회의 승인을 받도록 할 수 있다.
② 제1항 단서의 규정에 위반하여 이사회의 승인을 얻지 아니한 주식의 양도는 회사에 대하여 효력이 없다.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은 회사의 설립과 운영, 기술개발에 헌신한 자에게 부여되는 것으로서, 스타트업에서는 초기 자본금이 많이 부족하므로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주식매수선택권 부여에 대해선 정관에 규정하도록 상법에서 명시하고 있다.
상법 제340조의2(주식매수선택권)
① 회사는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제434조의 주주총회의 결의로 회사의 설립 · 경영 및 기술혁신 등에 기여하거나 기여할 수 있는 회사의 이사, 집행임원, 감사 또는 피용자에게 미리 정한 가액(이하 “주식매수선택권의 행사가액"이라 한다)으로 신주를 인수하거나 자기의 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 권리(이하 ”주식매수선택권”이라 한다)를 부여할 수 있다. 다만. 주식매수선택권의 행사가액이 주식의 실질가액보다 낮은 경우에 회사는 그 차액을 금전으로 지급하거나 그 차액에 상당하는 자기의 주식을 양도할 수 있다. 이 경우 주식의 실질가액은 주식매수선택권의 행사일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상법 제340조의 3(주식매수선택권의 부여)
① 제340조의 2 제1항의 주식매수선택권에 관한 정관의 규정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기재하여야 한다.
1. 일정한 경우 주식매수선택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뜻
2. 주식매수선택권의 행사로 발행하거나 양도할 주식의 종류와 수
3. 주식매수선택권을 부여받을 자의 자격요건
4. 주식매수선택권의 행사기간
5. 일정한 경우 이사회결의로 주식매수선택권의 부여를 취소할 수 있다는 뜻
실질적으로 회사의 경영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은 임원(이사)이다. 그런데, 주식회사의 이사는 근로자의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사와 회사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다. 법적으로 회사는 이사에게 업무를 맡아달라는 청약을 하고 이사가 이를 승낙함으로써, 회사의 경영진으로서 수임인의 지위에서 위임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사의 이사는 근로기준법상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대상, 즉 근로자가 아니다.
주지하듯이, 회사의 임원들은 종업원에 비해 우월한 위치에 있다. 그래서, 임원들의 업무집행기관인 이사회를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회사를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 상법에선 ‘이사의 보수를 정관에서 정하지 않은 때에는 주주총회에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상법 제388조).
정관의 규정에 따라서 이사의 보수를 정하는 방법은 달라질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에 대한 보수한도 총액을 승인한 후 구체적인 집행은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 임원(이사)는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위임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므로, 아무런 결의나 규정이 없는 경우 당연히 퇴직금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보통 주주총회에서 승인받은 임원퇴직금지급규정을 정하여 두고 임원이 퇴직하는 경우 이를 적용하여 지급한다
임원의 보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임원에게 과도한 퇴직금이 지급되지 않도록 다양한 견제장치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법인세법에서는 임원퇴직금이 회사의 정관에 규정되거나 아니면 정관에서 위임된 퇴직급여규정에 따라 처리가 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만 손금으로 인정하고 있다.
앞서의 사례에서 (주)플라시보는 창립에 공헌한 임원에 대해 퇴직금을 정관상 규정도 없이 지급하려 했다. 이 경우 주주총회의 의결에 따라 정해진 정관 등에 의해 지급되는 것이 아니므로 세법상의 규제를 받게 된다. 관련 예규를 보면 이러한 경우에는 손금에 산입하지 않고(손금불산입), 해당 임원의 상여로 본다고 하고 있다. 따라서 법인과 개인 모두에게 과세하는 방식으로 이에 대해 규제하고 있다.
한편, 임원퇴직금의 지급규정 해석 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정관에서 위임된 퇴직금 지급규정은 ① 당해 위임에 의한 임원 퇴직금 지급규정의 의결내용 등이 정당하고, ② 특정임원의 퇴직 시마다 퇴직금을 임의로 지급할 수 없는 일반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을 말하는 것으로, 당해 지급규정의 내용에 따라 ③ 임원 퇴직 시마다 계속 반복적으로 적용하여 온 규정이어야 한다.
만약 정관에 퇴직금 지급규정에 대한 구체적인 위임사항을 정하지 아니하고 “별도의 퇴직금 지급규정에 의한다”라고만 규정하면서 특정임원의 퇴직시마다 임의로 동 규정을 변경 지급할 수 있는 경우에는 법인세법상 손금으로 용인할 수 있는 적정한 퇴직금 지급규정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이렇듯, 정관은 회사의 기본적인 규칙을 담는 중요한 문건이므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세심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