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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J부부의 결혼 25주년기념 스페인 자유여행기_10

III. Day 3바르셀로나_05

원더풀 점심식사


금강산도 식후경. 그런데,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빠져 배고픈 것도 잊었다. 성당을 나오자 마자 고독한 미식가 고로상 처럼 “하라가 헷타~”를 외치고, “자, 식당을 찾자!”며 검색을 시작했다. 여기 어떨까? 근방에 있는 레스토랑 중 평점 높은 곳을 찍어서 이동. ‘어, 사람이 너무 많다.’ 


다른 곳을 찾자. 그 다음 후보식당을 찾아 골목을 따라 올라간다. ‘앗, 여기도 자리가 없어!’


아침도 간단히 먹었는 지라, 배가 고프다는 인식을 하고서부터 급격히 당이 떨어져간다. 찾아야 해. 잠시 멈춰서, 아내와 함께 식당을 검색. 그래, 이곳이다! 


식당을 찾아 갔더니, 여기도 줄을 섰다. 어쩌지? 이젠 포기할 수 없다. 이미 2시 반이 넘었다. 그냥 기다리자. 아내도 동의했다. 오케이. 대신 엄청나게 먹어주자.


그런데, 이 식당의 시스템이 재밌다. 일단 들어가기 전에 먹고 싶은 해산물을 고르고 주문을 하고 난 뒤에 자리에 앉는 식이다. 진열되어 있는 해산물을 고르고 얼마나 먹을지와 삶을 것인지, 구울지, 튀길지 등을 정해줘야 한다.

오징어가 스페인어로 뭘까? 영어로도 기억이 잘 안나는 데.. 거 참..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이가 없으면 잇몸이다.

일단 아내와 뭘 먹을 지 작전타임.

큰 새우는 6개 구워먹자.

갑오징어 2마리 튀겨 달래고, 굵은 문어다리 4개를 풀뽀를 해달래자.

가리비 12개를 구워달래자.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영어로 숫자를 말하고,

그런 다음 grilled, steamed, fried라고 조리법을 말한다. 


기다리는 동안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주문받는 아가씨가 친절하다. (인내심과 이해심이 많다는 게 맞겠지?) 주문을 받으면 필요시 큰 칼을 들고는 직접 손질도 한다. 키도 크지 않고, 예쁘게 생겼는데, 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팔뚝도 굵고 아주 건강해 보인다. 또순이 스타일? 하여간 무사히 음식 주문을 하고 나서 옆 카운터에서 상그리아와 클라라(레몬 맥주)를 한잔씩 추가한 후 결제를 했다. 번호가 쓰인 주문서를 준다. 


일단 자리를 잡고 있으면, 음식이 완성되는 대로 주방과 연결된 작은 창구에서 부를 거란다. (그렇게 이해했다.) 나는 상그리아, 아내는 클라라를 마시며 기다리다가 그 창구로 가봤다. 이미 음식이 나와 있었다. 콜을 했는데, 못 알아들은 거지 뭐.

자, 먹자. 식당 앞에 도달한 지 거의 40분이 넘어서 드디어 음식을 만난 것이다. 


“오!! 정말 맛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감탄 연발!


사실 난 해산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완전히 취향 변경이다.

특히 풀뽀(pulpo). 어제 처음 풀뽀를 먹었을 때, 약간 비릿하다 생각했는데, 그건 식당의 조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정말 너무 맛있었다. 가리비, 갑오징어, 새우 모두 최고였다. Two thumbs up!!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쇼핑실패 (Passeig de Gràcia) – 카탈루냐의 독립운동?


점심을 한 가득 먹고선 메트로를 이용해 카탈루냐광장쪽에 왔다. 스페인의 대중교통 이용 도전! 다행히 사그라다 파밀리아 근처 역은 그나마 깨끗했다. 티켓 자판기에서 표를 사고, 메트로를 탔다.

카탈루냐광장역에 내려서는 아침 일찍 가우디투어 집합장소로 가며 지났던 그 거리 Passeig de Gràcia 로 향했다.


그래, 티셔츠와 반바지라도 사자. 날씨도 더운데, 가벼운 차림으로 갈아입어보자.


엇.. 그런데, 모두 닫았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열지 않았던 게 아니었나? 오늘 월요일인데? 얘네들은 월요일도 쉬나? 그러고보니 아까 가이드투어 중 사그리다 파밀리아 남쪽면인가 설명해줄 때, 앞에 보이는 건물이 학교인데, 오늘은 휴일이라 닫았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며 속으로 ‘오늘은 휴일이라니… 맨날 관광객들과 있으니까 요일도 헷갈리는 걸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 닫았다.

산세바스티안에 있는 둘째에게 카톡.


“오늘 쉬는 날이니?” 

“아니? 방금 학교 다녀왔는데?”

“여기 쉬는데?”

“엥?”


조금 있다가 답변..


“거기 카탈루냐는 메르세 축제기간이라 다 쉬는 듯. 걔네는 스페인 쉴때도 쉬고, 자기네 휴일에도 쉬어.”


“@#$%!”


카탈루냐의 독립심이 한껏 느껴진 에피소드. 하지만, 내일은 또 이동인데 난 티셔츠를 언제 사냔 말이다. 


이번 여행은 특별하다. 결혼 25주년 기념에, 정말 어려운 상황 속에서의 결정이었다. 따라서, 사진에 찍힌 우리의 모습도 특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여행오기 며칠 전 옷 몇가지와 슬링백까지 새로 샀다.


그런데... 여긴 너무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서울에서 가져온 옷을 입으면 너무 덥고 튄다. 별로 좋지 않은 의미로 말이다. 아, 이런... 그냥 숙소에서 편하게 입으려 가져온 아디다스와 나이키 티셔츠와 츄리닝에 준하는 헐렁한 바지를 입고 다니고 있다. 꼼꼼한 계획 덕분에 모든 게 순조로운데, 의상만은 완전 실패다. 아이고..



저녁 대신 사발면, 메르세축제의 불꽃놀이!


쇼핑에 허탕을 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도 많이 걸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점심도 늦게 먹은 지라 배도 별로 고프지 않아 일단 쉬기로 했다. 


하지만, 8시 정도 되자 출출해졌다. 그리고 국물이 필요했다. 이럴 땐 사발면이지. 아내가 챙겨서 가져올 땐, 뭘 이런 걸 다 싸가야 하냐고 불평했던 그 사발면말이다. 프런트에서 전기포트를 빌려 물을 끓여서 사발면에 붇고, 후루룩.


흐흐흐, 맛있다. 뭔가 부족한 2%를 확실히 채워준다. 고맙다! 역시 한국인에게 사발면은 여행필수품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사발면을 먹고 흡족한 마음에 미소지으며 무작정 잤다. 그런데, 얼마 안되어 언뜻 아내가 깨어 창을 연다. 무슨 소리가 났다는 거다. 뭐지?

불꽃놀이다. Merce 축제의 마무리.


너무 아름답다. 우리 호텔방이 905호. 창 밖으로 피어오르는 불꽃들이 훤히 보인다. 6층만 되었어도 안보였을 광경이었다.


예약을 알아볼 때, 우리나라는 추석 연휴기간이었고, 바르셀로나는 하필 메르세 축제기간이었다. 덕분에 숙소 가격이 너무 비쌌다. 정말 울며 겨자먹기로 예약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마드리드에서 여행을 시작했다면 약간 달라졌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모두 잊혀졌다. 오히려 행운이다.


오늘은 정말 멋진 선물이었다. 바르셀로나의 멋진 밤이 저물고 있다.


내일은 그라나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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