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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a..] 경연은 이제 그만...

슬픔이여 안녕 & 행복이여 안녕!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알려지지 않은 재야의 고수나 옛날에 잠깐 잘나가다 이제는 잊혀진 가수 등 무명의 가수들이 심사위원들과 대중 앞에서 다시 노래를 부르며(sing again) 다시 한번 더 기회(one more chance)를 얻고자 경연하는 프로그램이다.


아내가 거의 항상 본방을 사수할 정도로 이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오디션프로그램의 특성상 참가자들의 스토리(대부분 안타까운!)도 있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 심사위원과 관중들, 다른 참여자들의 반응 교차편집, 심사평, 이어지는 평가, 가슴 졸이게 하는 승자와 패자의 결정. 아내만큼 즐겨보진 않아도 맥주 한잔- 사실 한잔으로는 많이 부족하다-과 더불어 보기에 부족함 없는 쇼다.


그런데, ‘싱어게인’의 더 중요한 매력은 앞서 언급된 경연프로그램의 일반적 구성요소에 더해서, 참가자들이 정말 노래를 잘한다는 점이다. 그렇다. 가수 1호, 2호, 3호 등으로 불리우는 이름없는 가수들이 정말 잘한다. ‘무명가수’들의 실력과 열창이 아랫집에서 연락이 오지 않을 최대한의 볼륨을 유지하며 밤늦은 시간까지 채널을 고정하게 만든다. 


“야, 진짜 노래 잘하네. 도대체 어디서 뭐하던 사람이야?”

“와, 이거 뭐야. 심사위원들보다 더 잘해서 심사평하기 부끄럽겠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이런 멘트가 절로 나온다.


그래서일까? 심사위원들의 심사평도 많이 겸손하다.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오디션프로그램에선 심사위원이 독설에 가까운 냉혹한 평가를 내리고, 이것이 그 프로그램의 인기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지만, ‘싱어게인’에는 그런 독설은 없다. 오히려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둘 다 잘하는 데, 그럼에도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괴로워하는(?) 심사위원들의 고뇌가 관전포인트 중 하나다.


그런데, 얼마 전 에피소드를 보다 마음을 흔드는 심사평을 만났다. 

회가 거듭되고, 단계가 올라갈수록 말 그대로 실력자만 남는다. 당연하지만, 정말 참가자 대부분 엄청난 실력을 보여줬다. TV를 통해 보던 나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참가자의 공연이 끝난 후, 심사위원의 멘트가..


“이제 경연 그만 나오세요!”였다.


그렇다. 경연을 통해 실력을 검증받기에는 너무 뛰어난 프로의 수준. 무엇을 더 평가받으려 하나? 이런 수준의 실력을 누가 점수를 매기며 평가할 수 있겠는가? 수십년간 음악을 해오고 최고의 위치에 올라간 사람이 이를 테면, ‘내가 감히 평가한다는 게 조심스럽다’라는 의미의 극찬이었다. 


맞다. 나도 동감한다. 하지만, 그 심사평 – 진심으로 극찬인 그 심사평 - 을 들으며 좀 슬펐다. 아니 많이 슬펐다.


참가자들은 대중예술가로서 살아왔다. 꼭 대중예술분야가 아니더라도, 모든 예술분야도 비슷하다. 타고난 재능과 엄청난 노력을 통해 쌓아 올린 실력만으로 부족하다. 대중의 사랑이 없이는 그림이 완성되지 않는다. 


재능, 욕망, 노력, 노력, 노력... 어쩌면 그리고 운? 모르겠다. 

대중의 사랑.


그 오랜 시간동안 결국 대중의 사랑을 얻지 못했고, 그 대중의 사랑을 위한 또 한번의 기회를 위해 ‘싱어게인’에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심사평이 ‘이 정도면 실력 충분합니다. 이제 하산하세요.’라니...


보고 있는 내가 ‘나도 내 실력이 충분한지는 안다구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 분야의 진정한 실력자이고, 구루이며, 슈퍼스타이기도 한 심사위원이지만, ‘왜 이런 실력을 가지고도 십수년간 경연프로그램을 전전하고 있느냐?’는 심사평이 나를 슬프게 했다. 


‘싱어게인’에 참가한 참가자뿐이겠는가! 취업절벽 앞에서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한 분야의 자격증까지도 취득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이며 과도한 스펙 쌓기를 하고 있는 청년들은 어떤가?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한 줄을 더 쓰기 위해 온갖 경험을 하고, 인턴생활을 하고, 자격증을 취득하며 노력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수준의 스펙을 가져야 취업에 유리한지 갈피 잡지 못하는 청년들 말이다.


수십년간 한 직장을 고집하며,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이사나 상무 같은 임원이 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집에 가란다. 부사장, 사장, 부회장... 오너가 아닌 사람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위치가 어디까지는 몰라도, 너무 덧없다. 무엇을 잘못했지? 어떤 부분이 부족했을까? 부장정도에서 짤린 사람도 있으니, 이 정도면 감지덕지 생각해야 한다며 마음을 다스리는 직장인은 어떤가?


‘싱어게인’의 XX호 참가자들 모두 지난 세월 동안, 노력을 하지 않은 게 아니다. 아니, 죽도록 실력을 갈고 닦았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만을 고집한 것도, 대중이 원하는 음악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런 수준의 실력인데, 왜 뜨지 못했을까? 솔직히 아무도 모른다. 


옛날노래 The Smiths의 ‘How Soon is Now’의 몇 소절이 생각났다.

When you say it's gonna happen "now", when exactly do you mean?

넌 "지금" 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언제라는 거지?

See I've already waited too long, and all my hope is gone.

난 너무 오래 기다렸어. 모든 희망도 사라졌구.


하지만, 난 그들이 무엇인가 잘못해서 지금 이 모습이 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도 그렇게 믿기 때문에 이런 도전에 나섰다고 믿는다.


You shut your mouth! 

입 다물어!

How can you say I go about things the wrong way?

너는 어떻게 내가 잘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

I am human and I need to be loved just like everybody else does

난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처럼 사랑받고 싶어.


모두가 다 이길 순 없으니, 경연에서 탈락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패배와 무명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싱어게인’같은 기회가 다가왔듯이 말이다. 


끝내 사랑받지 못할지는 끝나봐야 아는 거다. 심지어 경연에서 탈락하더라도 말이다. 목표는 사랑이다. 경연 1등과 상금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은 다하고, 갈 데까지 가보자.


새해엔 ‘싱어게인’ 참가자분들 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슬픔이여 안녕(Goodbye Sadness) & 행복이여 안녕! (Good Morning Happiness!)을 기원한다.


쓰고보니, 나에게 쓴 편지가 되었네. 아,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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