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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J부부의 결혼 25주년기념 스페인 자유여행기_02

II. 여행 준비 - 01

ISTJ 의 자유여행 준비


ISTJ에게 여행, 특히 자유여행은 가슴 설렘이기도 하지만, 걱정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신혼시절 회사 일이 바빠서 시간 났을 때 휘리릭 아무런 예약이나 준비없이 강릉이나 전주 같은 곳으로 떠났던 적이 있었다. 고작해야 1박 2일이나 2박 3일 여행. 그럼에도 불안해하던 아내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기본적으로 준비없이 어떤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내의 신조다. 그녀에겐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싫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잘 것인지, 이런 준비 없이 무조건 갈 곳만 정한 후 그곳에 도착해서 이런 것들을 결정한다? 이런 건 그녀의 머릿속에 없었다. 적어도 결혼 전까지는.


그럼 나는? 사실 나도 비슷하다. 카드와 현금 그리고 휴대폰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것 아닐까 계속 내 자신을 세뇌시켜보지만, 낯선 곳에 간다는 생각은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이번에 불안했던 점은 또 하나 있었다. 꼭 영미권이 아니라도, 사실 어디를 가든 영어로 상당부분이 해결된다는 경험은 있지만, 그건 비즈니스 출장이었고, 이번처럼 자유여행으로 스페인어 한마디도 못하며 스페인을 간다는 사실이 영 불편했다. 당장 기초 여행스페인어 책부터 샀다. 여행가기 2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올라! 바모스! 이게 나다. 역시 나도 ISTJ. 변명내지 핑계지만, 입장을 바꿔서 우리나라에 여행 온 외국인이 한국말로 인사나 감사를 할 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생각해보라. 적어도 표지판이나 메뉴판의 글자 읽는 법이나 간단한 인사, 감사, 숙박, 응급, 길찾기, 쇼핑을 위한 기초 회화 정도는 외우고 가야하지 않을까? 


하여간,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이 해외출장을 가서 그 나라 말도 못하고 메뉴판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데, 이것저것 과감하게 시켜서 맛있게 먹는 장면을 보면 솔직히 나와는 거리가 있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무척 부러워진다. 여행의 묘미는 도전, 시도, 실패를 포함한 성공과 성취감에 있을 텐데. 


어쨌든 이번은 젊은 시절 친구들과 중남미로 배낭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고, 결혼 25주년을 기념하여 아내와 함께 즐겁고, 유쾌하며 행복한 시간만으로 채워야 하니, 모험과 도전은 가능한 배제해야지. ‘자유여행’이라는 타이틀 만으로도 충분히 도전이니까. 오히려 ‘패키지여행’같은 ‘자유여행’을 만드는데 집중하자. 그렇다. 우리에게 ‘자유여행’은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에서의 ‘자유여행’이다. 패키지 여행을 한다면 다른 여행객과 가이드까지 함께 움직여야 하고, 일정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끌려다녀야 하는 ‘부자유’때문에 ‘자유여행’을 택했을 뿐이었다. 나머지는 ‘패키지여행’처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ISTJ 아닌가!



우리는 어떤 여행을 원하나?


우리는 어떤 여행을 원하나? 9박 11일의 길다면 긴 그리고 지금껏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집에서 아주 먼 나라인 스페인에서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 걸까?


일정을 고민하며, 이번 여행을 위한 몇가지 방향이랄까 주제 같은 것을 정했다. 명시적인 상의도 있었고, 지난 25년을 통해 알게 모르게 공유하게 된 습성이 반영된 그런 방향성이었다.


스페인이 아니라도, 여행의 주제 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냥 푹 쉬려고? 문화유적 답사? 자연을 즐기려고? 지금껏 맛보지 못한 음식을 찾아서? 아니면 쇼핑? 사실 목적 없는 마냥 자유로운 여행은 금방 싫증이 난다. 특히 우리 같은 ISTJ들에게 목적과 계획이 없는 여행이란 사실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여행책에 나온 모든 관광지를 주마간산격으로 깊이 없이 돌아보며 사진만 찍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다.


여러가지 주제를 정할 수 있겠지만, 은혼식 기념이라는 대전제 하에 이것저것 골고루 섞어야 겠지? 어쨌거나 집, 직장, 그리고 생활에서 아주 멀리 떠나는 것, 즉 잠시나마 현실과의 괴리 자체가 가장 중요하겠지. 집에서 멀리 떠나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먹고 마시며 놀고 쉰다는 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중요한 의미임을 잊지 말자며 서로를 다짐시켰다.


다시 돌아왔을 때 현실 상황은 아무 것도 바뀌거나 해결된 것은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편안하고 여유 있는 행복한 망각의 시간을 가져보자. 이 시간이 소중한 추억이 되어,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할 힘이 되어 줄 거야.


우리는 일정 계획을 세우며 몇가지 원칙을 세웠다.


체력을 감안하고, 이동거리를 최소화할 일정계획을 세우자


유럽은 젊을 때 가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유적지나 관광지에서 많이 걷게 되는지라 체력이 있을 때 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걷기를 좋아하고, 등산도 꽤 자주하는 편인지라 많이 걷는 것이 두렵진 않았지만, 피곤은 곧 짜증으로 이어진다는 걸 잘 알기에, 일정과 이동계획을 짤 때 지나친 이동거리를 배제하도록 짜기로 했다.


또, 전날의 피로가 다음 날의 늦잠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가능하면 빡빡한 일정으로 아침 일찍 서둘러야 하는 일정은 최소화하기로 했다.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피곤했다.)


이 원칙은 과거 패키지 여행의 경험에서 나왔다. 여러 곳을 구색 맞춰서 방문하도록 여정을 짤 수 밖에 없는 여행사의 패키지여행은 전세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자마자 버스에 타고, 1차 목적지로 이동, 내려서 사진 찍고 휘익 둘러보다가 승차. 2차 목적지로 이동. 다시 내려서 설명 들으며 둘러보고 사진 찍고, 다시 버스로 이동… 반복.. 버스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엉덩이가 아플 정도였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짜지 말자. 그래서, 바르셀로나에서 차로 다녀올 수 있는 몬세라트나 마드리드와 가까운 톨레도 같은 관광지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물론, 이동할 차편을 알아보고 예약하는 것도 번거로웠지만, 다녀오는 것 만으로 거의 하루를 쓰는 것도 아까웠다. 차라리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의 카페에서 상그리아에 타파스를 먹으며 여유를 즐기자고 결정했다. 


숙소의 위치는 방문할 관광지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하자.


비용이야 당연히 더 들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갈 곳에서 멀지 않은 – 걸어서 30분 이내? – 위치에 있는 숙소를 정하기로 했다. 방문할 곳을 정하기 위한 원칙에서 언급했지만, 이동거리가 길어질수록 길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아진다. 숙소에서 차를 타고 두세시간을 걸려야 하는 관광지는 과감히 포기! 차를 타러 스페인까지 온 건 아니니까.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세비야, 그리고 마드리드까지 우리가 가고자 할 주요 명소에서 멀지 않은 곳 그리고 교통이 편해 보이는 곳으로 숙소를 정했다. 결과적으로 너무나 잘한 결정이었다. 


짐은 최소화하고, 대중교통을 최대한 이용하자


9박 11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어쨌거나, 무조건 짐은 최소화하기로 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이동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싶어서였다. 다행히 늦여름 내지 초가을이라 두꺼운 옷이 필요하지 않았다. 슬리퍼 내지 샌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것마저도 포기. 정 필요하면 거기 가서 사자며 뺐다. 내의와 양말도 3-4일 분만 가져가서, 중간에 빨래방을 이용하든, 새로 사서 입자며 짐을 줄였다. 결과적으로 트렁크 각각의 무게가 15kg정도밖에 안되었으니, 짐을 줄이는 데는 성공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숙소에서 공항이나 시외버스정류장이나 기차역까지 찾아갈 때, 가벼운 짐은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이렇게 가벼운 짐은 마음도 가볍게 했다.


한편, 택시 타기는 최대한 억제하기로 했는데, 비용의 문제도 있었지만, 버스나 지하철 등을 이용하는 것도 여행의 재미라는 생각에서 가능하면 그 곳의 대중교통을 이용해보자 계획했다. 이것도 사실 대성공. 스페인이 생각보다 대중교통이 잘되어 있었다. 고속버스나 기차도 그렇고, 시내버스도 저렴하면서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스페인어를 전혀 못하는 데도 말이다. 게다가 공짜버스까지.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다.


식당은 현지에서 찾아 스페인 음식을 최대한 즐겨보자.


한국음식점은 가지 말자!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같은 곳도 가지 말자! 중국집, 일식집도 가지 말자!


꼭 먹어봐야 할 스페인 음식의 리스트를 마련했고, 갈만한 레스토랑이나 카페도 후보를 몇군데씩 마련했다. 


핀초, 타파스, 하몽, 이베이아 돼지고기 요리, 감바스 알 아히요, 빠에야, 뽈뽀, 깔라마리, 여러 해산물 요리, 츄러스, 상그리아와 다양한 스페인 와인 등 보는 것 보다는 먹고 마시는 것에 조금 더 비중을 두기로 했다. 


(물론, 즉석밥과 컵라면도 가져갔다. 결과적으로 너무나 소중한 간식거리가 되었다. 생각보다 우리는 컵라면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여행 중간 마주친 일본 라멘집이라도 갔을 것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짜놓은 계획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


꼼꼼하게 일정을 짜긴 하겠지만, 미리 짜놓은 일정을 지키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면 일정에 얽매이게 되어 피곤한 여행이 될 수 있다. 피곤한 건 싫다. 피곤해서 여행을 가는 건데, 여행이 피곤해서야 되나. 변수가 발생할 때마다 유연하게 대처하자. 


이번 여행은 즐겁고 행복하러 가는 거다. 고생과 피곤함은 절대 사양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박카스나 포텐시에이터가 아니라, 시원한 상그리아나 카바다. 



언제 갔다가 언제 오지?


전체 일정을 정했다. 9박 11일 2023.9.23 (토) ~ 2023.10.3(화) 

우리가 갈 수 있는 최장의 시간이었다. 


다음 단계는 당연히 항공권 예매다. 인터파크투어와 네이버 항공편을 통해 항공편을 알아봤다. 여행을 결심한 것이 너무 늦어 직항편이 없었고, 가격도 너무 비쌌다. 그럼에도 상당히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뭐가 좋을 지 영.. 


몇가지 기준을 세웠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같은 국적기를 이용한다. 

스페인까지의 직항편을 우선 검색한다.

직항편이 없어 경유할 수 밖에 없다면, 그 일부라도 국적기를 이용한다. 

경유시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어 다음 비행기를 놓칠 위험을 최소화한다.

총소요시간이 짧아야 한다.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음 해 달력이 나오자마자 여행계획을 세우고 항공권예매 등을 한다더니,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단순히 일정을 미리 짜고 다가올 여행에 대한 기대와 희망 때문만이 아니라, 부담하게 될 비용도 엄청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나름의 기준 하에, 고르고 골라 결정한 항공편은 이랬다. 가는 날에 밤 늦게 도착을 하고, 오는 날엔 이틀이 소요되는 일정이었다. 어쩌랴. 주어진 조건하에서 최선을 추구해야지.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볼까? 숙소는 어디로?


스페인 여행책 몇권, 블로그, 여행사 홈페이지 등을 참고해서 대략 중첩되는 도시와 관광명소, 즉 어디서 무엇을 봐야 할지 정리해 보았다.


스페인이 이렇게 가야 할 곳, 볼 거리가 많은 나라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하여간, 정리하고 보니, 도저히 열흘 동안 소화할 수 없는 리스트다. 이동 거리를 감안하면 시간도 그렇고, 체력도 감당이 안될 것 같았다.


열흘 정도에 유럽 여러 개 나라를 둘러보는 패키지 여행상품도 있던데, 미리 마련된 교통편과 식사, 정해진 일정에 따라 착착 진행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자유여행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패키지 여행이라도 여행 내내 정말 이동만 하다 판이 날 수도 있지 않을까?  ‘최근에 스페인으로 여행을 다녀왔어요’라고 했을 때, ‘거기 갔어요? 그건 봤나요?’라는 질문에 ‘네, 그럼요’라고 답하며 거기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방문 장소를 상당히 아니, 확 줄이는 게 맞다.


그래서 우리는 이동을 가능한 단순화한다는 전제로 ‘여기는 꼭 가보고 싶다’하는 곳을 각자 뽑고, 둘이 비교해서 정리하기로 했다. ‘이동의 단순화’원칙은 나중에 숙소결정에도 적용되었다.


선정된 곳은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세비아, 마드리드였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는 입국과 출국도시이기도 하고, 볼 것도 많아서 선택. 그라나다는 알함브라궁전 때문에 결코 빼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여러 곳 중에서 세비야 대성당이 선택되어 세비야가 추가되었다. 이동은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세비야를 거쳐 마드리드로.


몬세라트나 톨레도, 론다, 발렌시아 등도 가보고 싶고, 또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에서 그리 멀지 않다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버스나 자동차를 타고 두시간 이상 이동한다는 건 결국 왕복에만 네시간 이상이 소요된다는 말이고, 아침 먹고 출발하여 그곳에 다녀오면 하루가 다 간다는 계산이니, 그보다는 기점 도시에서 좀 더 여유있는 관광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다음 번 올 땐 이번에 못간 그곳에 가자’라는 비현실적인 다짐을 하면서…


방문할 도시와 관광지를 정했으니, 다음은 숙소를 정할 차례. 비용이 더 들더라도, 우리가 갈 곳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숙소를 정하기로 한 원칙에 따라 검색을 시작했고, 며칠동안 구글맵과 숙박앱, 블로그 등등과 씨름을 한 후 가까스로 결정을 내려 예약을 완료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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