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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J부부의 결혼 25주년기념 스페인 자유여행기_04

III. Day 1 서울에서 바르셀로나로_01

05:00 집에서 인천공항으로


지난 밤에 마지막으로 모든 짐을 점검하고, 새벽에 일어나자 마자 트렁크를 닫았다. 9박 11일이지만, 무작정 짐을 줄이기로 했다. 만약 옷이 더 필요하면, 현지에서 사기로 하면서 줄이고 줄여 각자 트렁크 하나씩이 되었다. 무게도 각각 20kg이내. 여기에 기내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배낭 하나와 슬링백, 크로스백 정도가 추가되었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11:55이다. 따라서, 3시간 전까지 공항에 간다고 하면, 9시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그런데, 토요일. 연휴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봐야 하니, 3시간이 반드시 넉넉할까 싶다. ISTJ & 지각은 용납 못하는 우리는 8시까지 공항에 도착하기로 했다. 가서 밥도 먹고, 쇼핑도 하자. 또 자리잡고 쉬기도 하고. 좋아!


헥, 그런데 공항버스 정류장에 사람이 너무 많다. 이 새벽에 공항버스를 타러 온 정류장의 그 많은 사람들. 남은 자리도 거의 없어, 다다음 정류장부턴 만석이 되었고, 여러 사람이 다음차를 기다려야 했다. 시내를 빠져나와 공항고속도로를 거쳐 공항 1터미널 부근에 도달했을 때 보게 된 다른 지역으로부터의 공항버스들도 거의 가득 차 있었다. 연휴를 앞두고 갈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예정보다 한 타임 이른 버스를 탄 덕에 한시간 20분만에 도착하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 체크인, 수하물도 부치고, 보안검색 통과한 후 출국 심사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키오스크에서 셀프체크인을 하니, 보딩패스가 발권이 된다. 그리고 나서, 수하물 접수(bag drop)카운터에서 여권과 보딩패스를 보여주며 수하물 접수. 예전에는 이 카운터에서 예약티켓과 여권을 보여주면, 자리를 정해주며 보팅패슬 발권받고, 연이어 부칠 짐을 올려놓으라고 하면, 무게를 단 후 화물접수증을 트렁크 손잡이에 붙이고, 접수확인증을 받았었는데, 이젠 이 프로세스가 분절이 되고, 항공사 직원이 직접 처리하는 부분을 줄여 놓았다. 나머진 알아서 기계를 통해 승객이 직접 처리하는 것이다.


좌석배정도 오늘 우리처럼 공항에서 어찌해보는 사람들은 적다. 거의 대부분은 인터넷이나 앱을 통해 온라인으로 체크인을 하며 좌석도 고른다. 사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공항에서 티켓을 발권한 이유는 이미 다른 이들이 좋은 좌석을 알아서들 예약한 터인지라 중간에 끼인 자리밖에 없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공항에서 직원을 통해 발권을 하며 자리를 옮겨 보려 했던 것이다.


시도의 성과는 별로 없었지만, 의미 있는 교훈을 얻었다. 이미 온라인과 키오스크의 시대는 본격화되었고, 이젠 흡수하지 못하면 이렇게 수백만원을 내고도, 아주 힘든 자리에 앉아 economy class syndrome에 걸릴 수 있다.


체크인 후 대한항공이 사용하는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으로 들어와서, 우선 아침 식사와 면세점 구경을 했다. 며칠 전 아웃렛에서 산 만다리나 덕 슬링백. 똑 같은 모델이 있다. 141불. 그럼 19.6만원. 하하하. 너무 기분좋다. 15만원에 샀는데.. 환율이 영 안좋다. 이게 뭐야! 면세점이 더 비싸면 어떻게 하나? 면세점 쇼핑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인데, 좋지 않은 한국경제가 즐거움을 빼앗아간 셈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 싸진 원화가 원망스럽다. 문득 환율이 너무 올라 (원화가치가 너무 낮아져) 아이들의 유학을 중도포기시킨 친구가 생각났다. 


경유지 파리로 출발


11시 55분 출발 비행기다. 11시 15분부터 보딩이 시작된다고 표에 나와있다. 하지만, 종종 15분을 넘겨서 보딩이 시작되곤 한다. 정각에 시작되더라도, 우선은 1등석과 비즈니스석부터 그리고 장애인 등을 먼저 태우고, 그 다음 일반석이다 좌석번호를 보니 41E와 F다. 큰 비행기니까, 중간 앞쪽이다. 그 말은 45번 이후 좌석들, 즉 비행기 후미쪽 좌석부터 채우고 나서, 앞쪽을 부르니, 그야말로 맨 마지막으로 타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11시 10분부터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한다. 엉덩이가 들썩이는 거다. 이것이 ISTJ 커플의 정수 중 하나 아닐까? 우린 준비없이 움직이지 않고, 또, 절대 늦지 않는다.  


드디어 경유지 파리로 출발!

..인줄 알았더니, 한시간의 출발지연. 

어쨌거나 이륙~ 


도합 15시간 가까이 이코노미좌석 중간자리에 갇혀왔다.

영화, 책, 메모, 잠.. 두번의 식사와 간식


놀라운 사실은 출발까지 놀라웠던 변화상과 상반되게 수년 전과 동일한 식사.. 오랜 시간 후에 다시 만난 대한항공의 한결 같은 기내식 서비스였다.


첫번째 식사로 비빔밥, 

간식으로 주먹밥과 샌드위치, 

두번째 식사로 매콤한 치킨 또는 소고기 요리


사실 이 메뉴는 아주 오래전부터 비슷했다. 사람들은 이 동일한 서비스에 대해 불만이 없을까? 글쎄, 별로 없는 듯..


어쩌면 entertainment 시스템을 통해 보게 된 다양한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의 서비스가 더 중요해진 것 아닐까? 최신 영화부터 드라마까지. 눈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한껏 보고 피곤하면 자고 그러다 보면 밥을 주고, 기회를 봐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이를 몇 번 반복하면 도착 아닌가! 변화가 없었던 부분도 있지만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영역도 있었던 셈. 


수백만원이 넘게 주고 탄 비행기 서비스라 보기에 썩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어쩌랴. 너무 늦게 예약을 한 우리가 자초한 결과이니 받아들여야지.


드디어 경유지 파리 도착! 한시간 지연 출발을 했지만 도착은 예정보다 많이 늦지 않았다.


파리 드골공항, 그리고 바르셀로나로~


파리 드골공항에 도착하여 터미널을 2E에서 2F로 이동한 후 2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파리 드골공항은 10여년 전 출장 때 방문한 이후 처음이었다. 공항 안에만 있었기에 프랑스 파리에 있다는 감흥을 느낄 순 없었지만, 이동하는 통로에서 우리를 맞이한 ‘Paris vous aime!’ (파리는 여러분을 사랑해요!)란 커다란 문구와 예술적 사진들이 ‘아 여기 파리 맞구만.’하는 느낌을 자아냈다.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를 탈 게이트로 이동 중 세관, 입국심사 직원에게 여권을 내미니, 문득 한국어로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어? 오! 탱큐~, 안녕하세요?”


BTS나 블랙핑크에게 탱큐!라고 해야 할까나? 그 직원 입장에서야 한국인 관광객이 아무리 많았어도, 굳이 한국말로 인사를 건낼 필요는 없었을 테니, 높아진(?) K-pop의 위상 덕분이 아닐까라는 막연한 추론을 뒤로 하고 게이트로 향했다.


그런데, 드골공항은 도떼기 시장 그 자체였다. 게이트 간 간격이든 항공편 간 간격 모두 무척이나 촘촘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용하고 있었다. 옛날에도 이랬던가? 프랑스의 대표공항인 드골공항이? 놀라웠다. 


우리가 탈 바르셀로나 행 비행기는 9시 5분 발. 도착은 10시 55분. 8시 35분에 게이트가 열리고 보딩이 시작되어야 하는 데, 그 전 제네바행 비행기탑승이 끝나질 않는다. 8시 45분이 넘어서야 겨우 게이트가 열린 듯한데, 사람들은 모여만 있고 타질 않는다. 불안할 수 밖에. 더 놀란 것은 그 많은 사람들이 결국 그 비행기를 다 탔다는 것이다. 크고 무거운 짐을 가지고 타는 사람은 왜 이리 많은지. 나중에 들으니, 짐을 따로 부치면 돈을 내야 해서라고 한다. 


비행기 문이 닫히고 출발한다는 방송이 나온 것이 9시 15분. 10분 지각. 그런데, 뜨질 않는다. 떠야 할 비행기들이 많아서 이륙이 지연되고 있다는 방송.


결국 30분이지나 9시 45분이 되어서야 겨우겨우 이륙.


자, 이제 진짜 스페인 바르셀로나다! 


[여행단상] 이연소비(펜트업 효과)로서 해외여행 폭증은 계속될까?


여행은 본능일까? 아니면, SNS홍수의 시대에 남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 

여행에서 무엇을 얻으려는 걸까?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왜 가지? 

멋진 서울의 호텔에 머무는 것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냥 이국적인 풍경을 느껴보려고? 


아 참, 우리도 지금 그 무리 중 하나구나.


이연소비 내지 펜트업 효과(Pent-up effect)란 억눌렸던 수요가 급속히 살아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억눌리고 있던 수요가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소비가 늘어난다는 의미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라는 외부 요인으로 인해 다양한 부문에서 펜트업 효과가 나타났고, 그 중 하나가 해외여행이라고 거론된다.


공항버스정류장의 그 많던 사람들, 공항에서 본 그 엄청난 인파, full booking된 항공편, 그리고 스페인 현지에서 목격한 수많은 한국사람들. 놀라울 따름이다. 코로나 이후의 여행붐은 붐(boom) 정도에서 더 나아가 열풍(frenzy)에 가깝다. 


이 열풍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몇 년간 못 나갔으니, 제약이 풀리자마자 한꺼번에 떠난다는 건데, 돌아오고 나면 좀 안정될까나? 뭐 용어 자체에 ‘이연’이 있으니, 이연된 것이 실현되면 정상화되겠지?


하지만, 내 느낌으로는 좀 꺾이기야 하겠지만, 추세적 전환이 있을 것 같진 않다. 이 머나먼 스페인에서 이렇게 많은 한국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 일시적 이연소비현상에 기인한다고 치부하는 것이 더 부자연스럽다. 무리를 해서라도 1년에 몇 번씩은 해외든 국내든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한국사회에선 이미 삶의 일부가 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거다.


주변을 둘러보면 결혼 25주년에야 이런 여행을 마련한 우리가 오히려 예외에 가깝다. 사실 우리의 경우는 이연소비라기보다,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 확 질러버리는 보복소비(revenge spending)에 해당할 것 같다만..


뭐든 어떠랴. 다행히 스페인의 날씨가 아주 좋았고, 타파스, 빠에야를 비롯한 음식은 입에 맞았다. 식사 때마다 곁들이는 상그리아와 카바는 너무도 맛있었다. 즐겁고 행복한 경험 속에서 위안의 시간을 갖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른 사람들도 뭐 대충 이런 마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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