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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a..] Tribute to 민정원장

어느 진정한 전문가 이야기

온 가족이 다니는 미용실이 있었다. 프랜차이즈 미용실 중 하나였는데, 좀 더 정확히는 그 미용실에 소속된 ‘민정원장’이라 불리는 헤어디자이너에게 온 가족이 머리손질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평소 다니던 다른 미용실이 있었다. 그런데, 동료 미용사와의 불화, 잦은 보조미용사의 이탈로 스트레스를 받은 미용실 원장이 그냥 혼자서 다하기로 결정한 후 감당가능한 수준에서 예약만을 받아 운영하기로 한다. 여기에 자신의 워라벨을 위해 휴일엔 확실하게 쉬기로 했단다. 그러니, 받을 수 있는 고객이 확 줄어들 수 밖에. 당연히 기존 고객으로선 편한 시간대에 예약이 힘들어졌다. 


몇번의 예약 실패 후 하는 수 없이 다른 미용실을 찾다가 만나게 된 것이 이 민정원장이었다. 민정원장이 그 미용실의 주인은 아니고, 여러 명의 ‘원장’들 중 한명이었고, 아내는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무작위로 지명을 했단다.


여자들에겐 헤어스타일이 워낙 중요한지라, 단골 미용실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모험(?)이었으리라. 그런데 천만 다행으로 첫 모험에서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다. 민정원장의 새로운 고객 확보보다 아내의 새로운 전담 미용사 발견이 더 축하할 일이었다고 해야 할까나.


아내의 호평으로 첫째 아이도 옮기고, 얼마 후 둘째도 민정원장의 팬이 되었다. 헤어스타일에 별 신경 쓰지 않지만, 높은 미용비용에는 마음 쓰는 내가 민정원장을 만난 것은 다른 가족들이 단골이 된 후 몇 년이 지나서였다.


퍼머를 하러 간 아내를 픽업하러 갔다가 아직 손질이 끝나지 않아 기다리던 막간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내 머리를 다듬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달랐다. 평소에 다니던 바리깡을 주로 사용해서 머리를 손질해주던 저렴한 미용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머리를 깎은 지 며칠이 지나고 나니 더욱 그 차이가 느껴졌다. 나이가 들며 자꾸 줄어드는 머리 숱을 기술적으로 커버해주는 커트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말이 많은 고객에겐 끊임없는 피드백, 말이 없는 – 하기 싫은? – 고객에겐 적절한 과묵함으로 대응해야 한다. 고객이 말이 없다고 자신도 아무 말없이 머리 손질만? 글쎄, 그건 답이 아니다. 


여기에 일전에 스쳐가듯 말했던 파편 같은 이야기를 잊지 않는 것도 ‘민정원장’의특기였다.  “지난 번에 스페인으로 여행가신다고 하셨는데, 잘 다녀오셨어요?”, “첫째 따님이 런던으로 교환학생 간다고 했는데, 돌아왔나요?” 이런 자잘한 고객의 신변잡기적 이야기를 기술적이면서도 진정성 있게 떠올리고 질문한다. 


고객에 대한 주의집중 그리고 진정성 있는 관심. 아무리 기억력이 좋다고 해도, 이런 기본자세 없이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의 자잘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살아남겠는가? 헤어만 디자인해주는 게 아니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니 디자인된 헤어도 마음에 드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다. 전문가다. ‘헤어디자이너’란 기술적인 용어만으로는 온전한 의미전달이 안되는 그런 전문가. 남자 커트야 대략 30분 정도지만, 여자의 경우 커트나 염색, 퍼머 등등 보통 한시간 이상을 함께 할 수밖에 없으니, 이런 심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공장 같은 시스템을 갖춰 찍어내듯 머리를 손질하되 가격을 화끈하게 낮춘다 해서 시장싹쓸이가 될 것 같진 않다. 


바리깡으로 대략 휘리릭 깎고, 머리는 알아서 감고 말려라. 대신 기존 미용실의 반값! 머리에 신경을 덜 쓰는 남자들을 겨냥한 커트 전문 프랜차이즈 미용실도 엄청나게 성공적이지 않은 것을 보면, 단순히 hair care를 넘어선 심적인 면이 이 비즈니스에선 필수적 요소인 것이다.


어쨌거나, 자연스레 나까지도 단골이 되어 이후 수년간을 온 가족이 ‘민정원장님’께 주기적으로 머리손질을 부탁하게 되었다. 


그런 민정원장이 몇 달 전 그 미용실을 관두고, 자신의 헤어샵을 차린다고 알려왔다. ‘앗, 어쩌지?’ 청천벽력까지는 아니지만, 순간 든 생각이었다. 물어보니, 나뿐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아니, 그럼 내 머리는?’하고 생각했다나.


정말 다행으로 멀지 않은 곳 – 물론, 상도의상 기존 미용실과는 충분히 떨어져 있는 곳 – 에서 미용실을 새로 차린다는 소식에 모두 안도(?)했다. 아내를 통해 들은 바로는 초보 시절부터 21년을 그 미용실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한 곳에서 그렇게 오래 일한 것도 대단하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충분히 안정적인 자리를 떠나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려는 그녀의 용기가 가상했다.


그 후 오픈까지 세 달. 준비를 꾸준히 해왔지만 기존 미용실을 인수하는 게 아니고 새롭게 미용실을 꾸미는 지라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 기간동안 우리 가족 모두 기꺼이 머리 손질을 포기했다. 생각보다 우리의 머리는 잘 자라는 것 같다. 몇 달 동안 미용실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건지 새삼 깨달은 시간이었다. 진정한 팬덤(!)이었다.


드디어 오픈. 예약해! 하며 네이버 예약페이지를 들어갔는데.. 빈칸이 없다. 

앞으로 두 달간 full-booking! 하하하. 우리만 팬이 아니었다. 우리같은 민정원장의 찐팬들이 새로운 헤어샵의 오픈만을 기다리며 머리손질을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전화를 걸어 민정원장과 통화를 했고, 예약 취소된 자리가 나는 대로 연락을 주기로 했다. 결국 오픈하고 열흘이 지나서야 드디어 머리를 하게 되었다. 나는 여기에 숟가락을 얹듯이, 막간을 이용해 머리를 다듬어 달라는 데 성공.


예약된 시간에 맞춰 새로운 미용실을 찾아가던 날. 솔직히 놀랐다. 혼자 차린 것은 아니고 동료와 함께 차린 것이라고는 했지만, 그 규모가 기존 미용실보다 더 컸고, 인테리어도 훨씬 고급스러웠다. ‘아니 이 정도를 투자할 만큼 돈을 모았다는 건가?’싶었다. 여기에 ‘오픈빨’과 상관없는 두 달 이상의 대기예약까지. 


축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진심으로 부러웠다. 주위를 둘러보라. 편의점이나 커피전문점, 치킨집만큼이나 삼지사방이 미용실 천지다. 미용실은 말 그대로 완전경쟁이다. 게다가 그저 위치가 좋다고, 다른 곳보다 좀 싸고 많이 준다고 해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업종이 아니다. 한번 머리를 맡겨보고 맘에 안들면 다시는 가지 않는다. 친하고 아는 사람이라고 단골이 되는 게 아니다. 오직 자신의 실력 – 미용기술 뿐 아니라 대인술까지 복합된 고도의 전문가적 실력 – 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냉혹한 시장이다. 민정원장은 그 실력만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21년 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성공할 것 같다. 아주 탄탄하게. 덕담차원이 아니라, 안정적인 예견이다.

건승을 빕니다. 민정원장님!


그나저나, 나도 공인회계사/세무사가 된 지 20년도 넘었는데.. 아이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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