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ISTJ부부의 결혼 25주년기념 스페인 자유여행기_05

III. Day 1서울에서 바르셀로나로_02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짐찾기


바르셀로나 공항. 

세관이나 입국심사를 할 줄 알았는데, 비행기에서 내려 통로와 계단을 따라 내려 짐 찾는 곳에 이를 때까지 아무런 절차가 없다. 왜 이럴까? 뭐 밤도 늦었는데, 복잡하지 않으면 우리야 좋지.


전광판에 표시된 짐 찾는 곳(baggage claim)에 서서 기다리는 데, 벨트가 멈췄다. 어 이거 뭐지? 하고 있는 데, 근처에 있던 어떤 아가씨가 – 고마운 일을 해줬으니, ‘여자’라는 객관적 지칭이나, 아주머니라는 현실적 지칭에서 격상할란다 – 파리에서 온 거면 뒤쪽 벨트로 바뀌었어요라고 알려준다. 



엥? 아직 전광판은 50번인데? 혹시하며, 그 아가씨가 가르쳐준 벨트를 보니 우리 캐리어가 나오고 있었다. 이런 고마울 때가. 이게 스페인식 친절함 (그리고 오지랖)인가?


여행의 즐거움 중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이렇게 생소한 장소에서 모르는 사람들과의 교류. 친절함의 경험일 것이다. 며칠 후 스타벅스에서 스친 한국인들끼리 서로 쌩을 깠던 경험과는 정 반대의 경험을 하게 된다. 외국에서 만난 한국인들끼리 마치 서울의 어느 스타벅스에서 줄을 서서 주문하고 커피를 받아가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무심한 상황처럼 행동하는 것이 참 어색하게 느껴졌다. 눈인사나 ‘올라’ 한마디 안하는 태도. 거 참. 하기사, 나도 마찬가지이긴 하지.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어디서 왔는 지 모를 노부부와의 짧은 인사와 대화도 이런 한국인들 간의 거리두기는 무척 대조가 되는 기억으로 남는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숙소까지


원래 계획은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까지 가는 것이었다. 시간이 늦기도 하고, 무거운 짐도 있으며, 초행길에 버스를 타고 가기도 조금은 우려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표지판을 따라 출구로 나가보니 택시를 타는 정류장과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냥 카드하고 현찰 있으면 다 해결 아냐? 길을 잃으면 택시 타면 되지. 뭐 이런 말도 있지만, 패키지 여행을 선택하지 않고 자유여행을 온 입장에선 가능하면 버스나 지하철도 도전하고 싶었다. 준비과정에서 세운 원칙 중 하나였잖아. 


게다가 우리는 그라나다로 가기 위해 다시 공항으로 와야한다. 국내선을 타야 하니까. 그래서 블로그 등에서 본 기억대로 공항버스(aerobus A1/A2)를 타기로 했다.


표를 키오스크에서 사고, 줄을 섰다가 A1버스에 올라탔다. 종점인 카탈루냐광장까지 가면 되니까 언제 내려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대략 노선도에 따라 잘 살펴보면 되지 않을까도 싶었다.


짐칸이 버스 아래가 아닌 버스안에 있었다. 짐을 가지고 올라가 짐칸에 얹고나서 짐들이 잘보이는 곳에 자리에 잡고 앉아 노선도를 찾았다. 엇? 노선도가 없네? 내릴 정류장마다 안내하는 전광판이 있는 데, 고장이 났는지 꺼져있다. 어느 정도 가다보니 ‘#$@#%!@#$%’ 전혀 알아듣지 못할 언어와 크기로 곧 정차할 정류장을 알려준다. 이런..


아내는 재빨리 구글맵을 켰다. 오, 구글맵! 참 편하다.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 내비게이션처럼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오케이!


그런데, 몇 정거장을 거치고 얼마 지나서 갑자기 “여기 내려야 해. 구글맵에서 내리래”라고 한다. ‘아직 카탈루냐광장 아닌 것 같은데?’ 생각했지만, 호텔을 목적지로 넣어서 추적하고 있었는지라 아마도 이 정류장이 카탈루냐광장정류장보다 더 가까운가보다 하고 그냥 서둘러 내렸다. ‘Pl Universitat’이라는 정류장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구글맵에서 알려주는 대로 방향을 잡아 호텔로 걷기 시작했다. 자정이 넘었지만, 거리는 들썩들썩했다. 만취까지는 아니게 보여도, 술 한 잔씩은 걸친 것으로 보이는 여러 형형 색색의 인간들은 소심한 우리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했다. 피곤해서인지 캐리어와 배낭은 무거웠고, 거리는 충분히 밝지 않았다. 그러나 짐을 끌며 열심히 걸었다. 기껏해야 500m도 안되는 거리였으니까.


그러나, 호텔이 나오지 않았다. 왜? 글쎄… 그 와중에 구글맵이 멈췄다. 호텔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 그래도 걷자. 구글맵이 정신을 차렸다. 다시 현위치 버튼을 눌렀다. 어라? 내렸던 정류장에서보다 호텔이 더 멀어져 있었다.


호텔이 있는 거리 아래쪽 블록으로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카탈루냐 광장을 가로질러 다른 길로 하염없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고.


“택시를 탈 걸 그랬나?” 아내가 말을 꺼냈다.

“아냐, 이것도 좋은 추억이야. 이 정도 헤매는 것 가지고 뭘 그래?”


여기서 잠깐. 나는 진심이었다. 자유여행의 본질적 특징 중 하나가 이렇게 예상치 않은 헤매기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그러나 아내의 머릿속에서 나의 이 말은 “그러게 말야. 밤도 늦었는데 괜히 버스를 탔구만. 구글맵은 왜 이럴 때 멎어서 우릴 헤매게 하냐. 짐은 왜이리 무겁지?”하는 불평으로 해석되고 있음을 나는 느꼈다. 이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결과를 보여주는 상대방의 조건 반사적 반응이었고, 정말 너무 미안했다.


“아니야. 이 정도 돌아가는 건 전혀 힘들지 않아. 당신탓도 아니고. 부담갖지마!”


이렇게 바르셀로나에서의 첫번째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just a..] Tribute to 민정원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