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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세무는 창업자의 언어가 아니다?”

스타트업 세무산책_00

에피소드: 어느 흔한 첫 미팅


수화기 너머 대표님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회계사님, 저희가 이번에 O2O 플랫폼 법인을 세웠습니다. 아이템은 확실하니, 이제 매출 올리는 데만 집중하려고요.”

법인 설립은 마쳤고, 첫 투자 계약도 앞둔 유망한 스타트업이었다. 나는 법인등기부등본과 사업자등록증을 검토하며, 마음속으로 수십 년간 수없이 반복했던 체크리스트를 그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혹시 첫 계약금은 법인 통장으로 수령하셨는지요?”

“직원분 급여 신고는 어떻게 진행하고 계십니까?”

“매입하신 비품이나 용역에 대한 세금계산서는 잘 챙겨두셨고요?”

짧은 침묵 끝에 돌아온 대답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첫 계약금 수백만 원은 법인 계좌가 아닌 대표 개인 계좌에 잠들어 있었고,

직원은 채용했지만, 4대보험은 물론 원천세 신고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며,

비용 증빙이라고는 카드 매출전표 몇 장이 전부였다.


의욕적인 시작과 달리, 회사의 세무 시계는 아직 첫 초침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다. 멋쩍게 웃으시던 대표님이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원래 그런 건… 나중에 회계사님이 다 알아서 정리해주시는 거 아닌가요?”


물론, 수습은 가능하다. 하지만 수십 년간 수많은 기업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전문가로서 나는 안다. 세무 리스크를 ‘나중에 정리’하는 데는 혹독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그것은 단순한 가산세가 아니라, 기회비용과 신뢰의 상실까지 포함하는 ‘세금폭탄’의 시작 신호임을 말이다.


해설: 세금, ‘나중’은 없다


아이디어, 기술, 팀 빌딩, 투자 유치… 숨 가쁘게 달려가는 스타트업에게 세무는 늘 성가신 뒷전이다. ‘매출도 없는데 무슨 세금’이냐며, ‘일단 벌고 나서 생각하자’며 미뤄두기 일쑤다.

하지만 세법상의 의무는 사업자등록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발생한다. 그리고 방치된 세무 리스크는 생각보다 빠르게, 그리고 훨씬 큰 문제로 창업자의 발목을 잡는다.

∙ 매출 누락으로 인한 부가가치세 및 법인세 추징과 신고·납부 불성실 가산세

∙ 대표이사 가지급금 문제와 인정이자 계산이라는 예기치 못한 복병

∙ 증빙 없는 비용으로 인한 법인세 부담 증가

∙ 창업자금 출처 소명 요구와 증여세 리스크

∙ 스톡옵션 부여·행사 시점의 세무 처리를 몰라 핵심 인재에게 안겨주는 세금폭탄

이 모든 것이 ‘나중에 정리’하려다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다.


‘세무는 전문가에게 맡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소중한 자산을 가장 빠르게 소진시키는 착각일 수 있다. 회계사는 장부상의 ‘과거’를 정리하지만, 회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창업자 본인이기 때문이다. 창업자의 기초 세무 지식은 회사의 미래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방패이자, 성공적인 투자 유치와 EXIT을 위한 핵심 레버리지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질문받고, 자문했던 내용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복잡한 세법의 숲에서 길을 잃지 않고, 절세라는 열매를 맺으며, 성공이라는 정상까지 안전하게 오르는 과정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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