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미국 제련소 투자와 제3자배정 유상증자 논쟁을 보면서
삼성, 현대, LG, 한화… 트럼프 정부의 관세 부과 소식과 더불어 미국으로의 직접투자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며칠 전 또 하나의 소식이 전해졌다. 고려아연이 ‘Project Crucible’로 명명된 미국 테네시 통합제련소 건설 사업을 위해, 미국 정부 중심으로 구성한 Crucible JV LLC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해 19억 달러를 조달하고, 여기에 고려아연 자체출자금 5.8억 달러를 더해 총 25.2억 달러를 들여서 사업주체인 Crucible Metals Holdings LLC를 고려아연의 100% 자회사 설립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Crucible Metals Holdings LLC를 설립한 후에는 미국 전쟁부 및 금융기관 차입금 47억 달러와 미국 상무부의 CHIPS Act 보조금 2.1억 달러를 추가로 확보해 총 투자비 74억 달러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통합제련소는 Crucible Metals LLC라는 회사가 운영을 맡게 될 텐데, Crucible Metals Holdings LLC는 이 운영회사를 관리하고, 신규투자 등도 하게 된다고 한다.
한편, Crucible JV LLC는 미국 전쟁부가 최다의결권(40.1%)을 보유한 회사로서, 고려아연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고려아연 보통주 10.59%를 취득하게 된다. 공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보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번 유상증자 직전에 1320억원을 들여 Crucible JV LLC의 지분 9.99%를 취득할 예정(2025. 12. 22.)이기 때문에 상호주를 형성하게 된다고 한다.
처음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투자 그리고 제3자배정 유상증자 뉴스를 접했을 때, 이 또한 ‘한·미 공급망 재편’이라는 시대적 흐름 위에 놓여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명분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미국이 핵심광물과 방산 소재의 공급망을 ‘동맹 내부’로 끌어들이려는 정책 방향이야 반복적으로 확인돼 왔고, 한국 기업 입장에서도 미국 내 생산기지를 통해 시장 접근성과 정책 레버리지를 확보할 유인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상장회사의 투자나 자금조달 의사결정의 적정성을 평가할 때, ‘명분’은 어쩌면 출발점일 뿐이다. 필자는 상장회사는 항상 두 가지 질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거래가 회사 가치에 유리한가? 둘째, 그 의사결정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한가? 이 두 가지는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는 더 엄격해질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같은 행동이라도 ‘자금조달’로 보일 수도 있고 ‘의결권 조달’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확실한 숫자(공시된 숫자)부터 살펴보자. 이번 투자와 유상증자의 핵심 사항 중 하나는 제3자배정 유상증자라는 방식을 통해 고려아연의 ‘새로운 10%대 주주’를 만든다는 사실이다. 당연하지만, 경영권 분쟁에서 10%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캐스팅보트’가 되기에 충분한 크기다.
유상증자가 진행되면 Crucible JV LLC가 고려아연 전체 주식의 약 10%를 확보하게 되고, 영풍·MBK 측 지분은 희석돼 40% 수준으로 내려간다. 반대로 최윤범 회장 측 지분은 희석으로 낮아지지만, Crucible JV LLC 지분을 우호지분으로 합산하면 39% 수준으로 오르게 된다. 사실 회계·재무 실무에서 이같은 장치는 상당히 익숙하다. 돈을 넣어주는 대신, 표를 얻는다. 그것이 백기사 구조의 본질이니까.
따라서 이번 거래에 대한 비판의 정확한 문장은 이렇다. 미국 투자 자체는 경영상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10%대 우호 지분을 새로 만드는 방식은, 그 자체로 최대주주·경영진의 지배력 경쟁에 유리한 구조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납입일이 2025년 12월 26일로 잡혔고, 이는 12월 31일 주주명부 폐쇄일 직전이다. 당연히 ‘연말 주주명부에 Crucible JV LLC 를 올려 내년 주총 표 대결에 활용하려는가’라는 질문이 이어진다.(주주명부에 올라감에 따라 배당금을 수령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덤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아무리 명분이 크더라도 거래는 ‘지배권 방어’로 읽힐 수 밖에. 경영권 분쟁에서 투자 프로젝트라는 명분이 방패로 쓰이는 순간이다.
다른 한편으로 필자의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언론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미국 전쟁부와 대출 계약을 맺으면서 고려아연의 종속회사이자 사업 운영 주체인 Crucible Metals LLC의 지분을 사들일 수 있는 권리(워런트)를 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1주당 인수가는 0.01달러이며, 최대 14.5%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하고, 만약 미국 제련소 기업가치가 150억달러(약 22조원)에 달하면 추가 20% 지분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도 부여한 불평등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도 이들 조항은 투자자 판단에 중요하지만, 관련한 구체적 내용이 공시로 확인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선 논란이 되는 계약서 세부 조항을 ‘팩트’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조항은 누가 보더라도 ‘중요’해 보인다. 투자자와 이해관계자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장회사인 고려아연의 투자자 관점에선 “조항이 불평등하냐” 이전에 “투자자가 판단할 정보를 받았느냐”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감독당국이 신속히 확인하고 필요 시 정정공시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인회계사(그리고 여러 상장회사들의 기말회계감사를 앞둔 외부감사인)의 입장에서 이 대목은 단순한 공시 논쟁에 그치지 않는다. 만약 워런트가 사실이라면, 그것은 기업 결합이나 연결 범위, 지배력 판단, 잠재적 지분희석, 옵션/파생상품 회계(공정가치 측정), 관련 당사자 거래 공시, 약정·우발사항 공시 등 여러 회계 이슈를 동반할 수 있다.
추가하여 필자의 주의를 끄는 사항이 있다. 총 투자비 중 약 7.2조 원이 외부 차입이고, 그 보증(포괄적 채무보증) 규모가 8.4조 원으로 고려아연의 자기자본(7.6조 원) 규모를 상회하거나 육박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이 사실인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지만, 공인회계사(그리고 외부감사인)의 관점에서 구조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에서 모회사가 자기자본급 보증을 서는 순간, 그 위험은 ‘미국 법인’이 아니라 ‘한국 본사’의 숫자로 돌아온다. 이런 형태의 우발채무는 평상시에는 주석에만 존재하지만, 디폴트가 발생하는 순간 대차대조표에 실체로 나타난다. ’공멸 구조’라는 표현이 무작정 과장된 표현만은 아닌 이유다.
이쯤에서 오해를 끊어야 한다. 필자는 ‘미국 투자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솔직히 그런 판단을 할 지식도 역량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미국 투자라는 산업적 명분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상장회사에서 명분은 면죄부가 아니다. 특히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는 더더욱 아니다. 제3자배정 유상증자는 주주 신주인수권을 제한하는 예외적 수단이며,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증이 따라야 한다.
질문은 이렇게 압축된다. 경영권 분쟁이 없었더라도, 고려아연은 동일한 방식(제3자배정으로 Crucible JV LLC에 10%대 지분을 부여)으로 자금을 조달했을 것인가?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려면, 고려아연은 단호하게 보여줘야 한다. 왜 주주배정이 아니었는지, 왜 다른 조달 수단이 비효율적인지, Crucible JV LLC에 지분을 주는 것이 왜 회사가치에 유리한지, 핵심 조건은 무엇인지, 그 조건이 왜 공정한지, 그리고 이사회가 이해상충을 통제하며 어떤 자료로 의사결정했는지를 ‘숫자’로 제시해야 한다. 즉, 핵심 조건의 완전 공시가 우선이다. 워런트, 수수료, 성과보수, 이사 지명권, 보증 범위와 트리거는 투자판단의 본체다. ‘알려졌다’가 아니라 ‘공시로 확인된다’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국익은 중요하다. 그러나 상장회사의 국익은 ‘국익이라는 말’이 아니라 ‘국익이 회사가치로 귀결되는 구조’에서 완성된다. 그 구조가 불투명하거나, 경영권 분쟁의 표 대결을 유리하게 만드는 설계로 읽히는 순간, 국익은 방패가 아니라 의심의 증폭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