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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a Jan 28. 2024

여성들의 대하드라마, 영혼의 집

청소년기에 맞닥뜨린 어른들의 자기 확신은 참 폭력적이었다. 본인이 경험한 세상에 근거한 판단이 늘 옳다는 걸 버리는 것이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세상은 한정적이고, 매일매일 변하고 있고, 옳고 그름은 쉽게 결판나지 않으니깐. 그렇다면 내가 과오를 저질렀음을 빠르게 시인하는 것이, 어른의 모습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평생 완고했던 에스테반 트루에바는 처음으로 과오를 인정하고, 이는 대 화해의 포문이 된다.

에스테반 트루에바는 그들이 정치가를 배제한 어마어마한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는 에스테반이 블랑카와 알바와 함께 그 상황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독재의 위협을 제거하고자 했던 군인들이 나라를 더욱더 혹독한 독재로 몰고 갔으며, 돌아가는 상황으로 볼 때 그 독재가 한 세기 동안 이어질지도 모른다며 한탄했다. 트루에바 상원의원은 난생처음으로 자신이 과오를 저질렀음을 시인했다. 그는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노인처럼 팔거리의자에 몸을 맡기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권력을 잃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조국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었다.


대하드라마를 좋아하는데, 여성들의 대하드라마는 더더욱 좋아한다. 여성들의 삶을 그릴 때는 정치적 격변의 한가운데 있었던,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경향이 더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정치적 서사가 개인의 서사를 넘어설 만큼 중요해? 이 주제의식이 여성들이

주인공인 대하드라마에는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영혼의 집은 2022년 사랑받았던 파친코처럼,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갔던, 4세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본다.

클라라 외할머니는 정신을 집중시켜 개집에서 살아나갈 수 있도록, 종이나 연필 없이도 생각만으로 글을 써보라며 알바에게 권했다. 그러고는 한술 더 떠서 알바가 지금 아무도 모르게 겪고 있는 그 끔찍한 고통을 언젠가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글을 써보라며 권했다.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의 평온하고 정돈된 삶 한편으론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만방에 알려야 한다고 했다. 정상적인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환상에 빠진 사람들과 자신들이 뗏목에 몸을 싣고 슬픔의 바다 위를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그 참상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행복에 겨운 그들의 세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어두운 곳에는 방황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나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야기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여자였다. 자신의 인생을 거쳐간 남자들에게서 자식을 한 명씩 낳았으며, 그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이 버린 아이들과 찢어지게 가난한 친척들, 엄마나 누나, 이모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다 받아주었다. 다른 사람들의 기둥이 되어주고, 아이들을 키워서 떠내 보내는 등 사랑 말고도 당장 더 시급한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에 한마디 원망도 없이 남자를 떠나보내는 그런 여자들 중의 하나였다. 내가 그 여자에게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나를 구해 주신 거라고 얘기하자 말없이 웃었다. 나는 그제야 가르시아 대령이나 그와 비슷한 사람들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이런 여자들의 정신까지 파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성들의 시선뿐 아니라 가부장적인 남성인 에스테반 트루에바가 화자가 되어 그의 시각에서 중간중간 풀어놓는 이야기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위대한 점이다. 그가 과오를 인정하면서 풀어놓는 그의 이야기와 그가 손녀딸을 구하기 위해 한 행동이 없었더라면, 알바의 이야기도 불완전했을 것이다. 즉, 위대한 화해의 실마리를 남성 화자를 중심에 놓으면서 끄집어 내었고, 완성해 내었다.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과도 같이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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