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50권을 목표로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30권 수준에서 마무리했다. 독서는 어느 한 시점도 목표였던 적이 없고 순수한 취미이기에, 몇 권을 읽었는지는 성취라기보다는 기록의 목적에 가깝다.
영어를 엘레강스하고 문어체적으로 구사하는 북클럽 멤버가 부러워 영어 원서를 더 읽기 시작했고, 다소 속도는 느리지만 취미의 반열로 올라왔다. 아무도 실제로는 쓰지 않을 것 같고 GRE 시험에나 나올 법한 단어들이, 책 속에서는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었다. 여기에 ChatGPT의 시대가 더해지며, 영어 문장을 바로바로 교정해 쓸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영어 읽기와 쓰기에 드라이브를 걸게 되었다. 이 여전히 낯선 언어를 계속 읽고, 쓰고 싶다는 욕구가 분명히 생겼다.
내게 올해의 소설은 단연 『동물농장』이다. 어느 조직에 가져다 놓아도 이 구조가 딱히 어색하지 않다는 점은, 권력과 계급 구조가 얼마나 본능적인지를 느끼게 한다.
에세이로는 타라 웨스트오버의 『교육의 발견(Educated)』이 오래 남았다. 옥스퍼드에서 바람을 묘사한 장면을 포함해, 거의 모든 장면이 너무도 아름답다. 한글로 읽었을 때 느끼지 못했던 타라의 감수성이 영어로 쓴 원글에 눈부시게 담겨있다.
J.D. 밴스의 『힐빌리 엘레지(Hillbilly Elegy)』는 주인공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개인의 서사를 넘어설 수는 없다는 점을 입증한 책이다. 어린 밴스가 흙수저의 지위를 뚫고 성인이 되어가는 이야기는, 그가 트럼프 산하에 있든 아니든 충분히 감동을 주는 이야기다.
경영서로는 『The Power Law』가 있다. 실리콘밸리 VC 업계의 구조와 논리를 보여주며, 그 세계에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책이다.
『크래프톤 두 번째 이야기』는 회사가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시즌 2가 오히려 시즌 1보다 더 우당탕탕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인 교훈을 준다. 스토리라인의 구성과 밀도가 압도적이다.
『실패를 발견하는 일』은 소령의 강연이 책의 감동을 넘어서는 서사를 지니고 있었다. 험블하고 솔직한 메시지로 많은 사랑을 받은 올해의 책이었고,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아쉬움이 남는 지점도 분명하다. 올해는 한국 소설을 거의 읽지 못했다. 그만큼 아름다운 우리말과 함께한 시간이 줄어들었고, 내 글에서 반짝이는 문장을 써내는 능력이 쇠퇴해 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내년에는 다시 한국 소설로도 돌아가, 서사와 문장력, 그리고 감수성을 되살려보고 싶다. 읽고 싶은 책들을 잔뜩 쌓아두고, 이야기 속에 푹 잠겨 보내는 최고의 휴가를 떠나는 시간도 함께 상상해 본다.